수원역에서 서울역까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아침 7시30분 수원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25분을 달리면 수원역에 도착하고 상행선 출구로 가서 기다리면 열차는 힘찬 쇳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오늘이 시작됩니다. 일단 열차에 오르면 계단을 찾게 됩니다. 정기권 패스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오른쪽 출입구는 안양, 영등포를 거치는 동안 열리지 않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왼쪽 문으로 내립니다. 그래서 편안한 의자가 오른쪽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계단이 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등산용 방석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추위를 피해 객차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러면 늘 항상 인간의 삶과 인생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앉아있는 손님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표정으로 보아 아예 깊은 잠에 빠진 분들도 많습니다. 젊은 손님들은 왜 자면서 인상을 쓰는 것일까요? 입석 손님이 의자 등받이를 잡아서 불편하신가요.

 

150명 정도의 승객이 앉거나 서거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객차 1량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볼 수도 있고 삶의 단계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부산에서부터 앉아옵니다. 수원역에 7시30분에 당도하여 서울로 향하게 되는 것으로 계산하면 부산발은 이른 새벽이었을 것입니다. 새벽 2-3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허둥지둥 뛰어나와 기차에 올랐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아서 대구에서 좌석표를 구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대전에서 내린 자리에 다시 올라타는 손님도 있고 평택역에서 좌석표를 구한 행운아도 있습니다.

물론 며칠 서두르면 수원역-서울역간 좌석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수원역에 내리는 손님이 꽤 되거든요. 그래서 수원역 KTX정차를 금하다가 민원이 늘자 몇차례 정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차 손님들은 신분사회처럼 서로의 차이를 온몸으로 말합니다. 표를 예매한 좌석 파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거나 사념에 잠겨있고 돈이 있어도 예매를 하지 않아 표를 구하지 못한 승객들은 통로 중간에 서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 봅니다. 동작 빠른 앞순위 입석파는 뒷편 끝자리 의자뒤에 쪼그리고 한살림 차린 듯 합니다.

차라리 객차 연결고리의 굉음이 울려퍼지는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승객도 많습니다. 쇳덩어리의 굉음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심하게 요동치는 열차 앞뒤부분의 연결고리 위에서 '타이타닉'명장면을 마음속으로 연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등포역에서 남은 손님의 1/3을 내려드린 열차는 서울역사에 들어섭니다. 수원역에서는 그렇게도 깊은 잠에 빠져 앞으로도 3-4시간 더 주무실 것 같았던 손님들이 모두들 부시시 일어나 짐을 챙깁니다. 물론 일부는 정차이후에도 무심하게 무념하게 잠을 즐기십니다.

역무원이 다니면서 깨워드립니다. 참 좋은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뭐 그리 바쁘신지 열차통로에 긴 줄이 즐어섭니다. 장사진입니다.

 

그래서 빈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귀족스럽게 부산에서 대구에서부터 쿨쿨 잠자며 오신 분들의 기분을 조금 느껴보려 함입니다. 참으로 편안합니다.

하지만 곧 일어나야 하는 편안함은 온 몸속까지 편안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면 동해바다 넓은 바다만큼 편안할 것인데 수 초 후에 일어서야 하는 의자의 포근함은 그 깊이가 얕은 시냇물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출구를 빠져나가 서울역사 드넓은 광장으로 나서면 누구도 입석으로 왔는지 좌석 손님인지 묻지 않습니다.

모두가 긴 여행에서 서울역 광장에 도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직장, 집, 가족을 향해 바쁜 발거름을 옮깁니다.

 

여유로운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서울역에서 이어지는 지하철 역사에서 만나는 노숙자들의 여유가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을 위한 서울시의 행정이 밤낮으로 이곳에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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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