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器(사기)의 사기(詐欺)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0년대 농촌에는 머슴제도가 있었습니다. 봄부터 시작된 머슴의 농사일은 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 추수를 다하면 끝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해 이른 봄에 다시 구두계약을 할 때까지는 휴가기간을 갖습니다.

머슴살이는 오늘날 일부 기업과 행정기관에서 볼 수 있는 연봉제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을 잘하는 일꾼을 상머슴으로 쌀 12가마니를 받았습니다. 4가마는 선불로 받을 수 있고 나머지 8가마는 가을 추수를 마치면 주어집니다.

 

 

머슴 다음으로 중요한 농사일꾼은 소(牛)입니다. 8살 전후의 소가 가장 일을 잘하고 주인이나 머슴과 호흡도 잘 맞았습니다. 강성범 코미디 버전으로 말하자면 “소가 10년 정도 묵을 라 치면 주인집 논밭의 위치를 모두 알게 됨다. 머슴이 바뀌어도 주인은 논밭의 위치를 알려줄 필요가 없었슴다”는 농담을 했습니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농사일은 두엄(퇴비)을 논밭에 나르는 일인데 소등에 싣고 고삐만 쥐고 있으면 1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온 소는 주인집 논의 가장 깊은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신참 머슴은 두엄 실은 망태의 막대기만 당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논을 팔려하면 미리 소와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짐승도 기억을 하게 됩니다. 이 소는 주인집 제삿날도 안다고 시골 노인들은 말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비지와 두부국물은 소에게 먹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시골집에서 농민과 함께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소는 설날, 추석, 주인의 생일이나 조상의 제삿날을 모두 합치면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맛있는 두부국물을 먹게 됩니다.

 

소가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받는 것 이상으로 머슴도 대우를 받았습니다. 늘 주인과 함께 생활하고 아침식사는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습니다. 둥근 상에 된장찌개와 김치, 장조림을 올리고 갓 시집온 며느리의 숭늉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했습니다.

방안에서 상을 받아 주인과 마주앉아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치면 사랑채 마루까지 상을 내어 놓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오늘의 영농계획을 보고하고 의논합니다.

 

그런데 밥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과 머슴이 함께 먹는 겸상의 밥그릇이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먼저 머슴의 밥은 사기그릇에 담았습니다.

요즘도 시골동네 산소 많은 곳에 가면 이른바 사금파리라는 것이 있는데 그릇 아래 부분에는 모래가 촘촘히 박혀있어 청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옅은 청자색에 짙은 색의 난초그림 문양이 성의 없이 새겨진 그릇입니다. 흔히 사금파리라 합니다.

 

이 그릇의 특징은 아래쪽에 불필요한 턱이 1.5㎝가량 있고 그릇의 두께가 최소한 1㎝이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래쪽은 좁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조금 넓어집니다. 따라서 여기에 밥을 퍼주게 되면 그릇 속에 든 밥보다 그릇위에 올라간 밥의 양이 더 많습니다. 외형상 밥의 양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반면 주인은 놋쇠주발을 쓰다가 나중에 스텐레이스 그릇으로 바뀌었는데 머슴의 주발과 모양이 정 반대입니다. 그릇 위 테두리는 작지만 아래로 갈수록 넓어집니다. 또 그릇의 두께도 머슴의 밥그릇과 비할 바가 아니게 아주 얇습니다. 외형상 보기에는 밥의 양이 적어 보이지만 실속이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사를 논하는 말 중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사모삼이라는 말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겉으로 들어난 머슴의 밥이나 속에 숨겨진 주인의 밥이나 그 양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밥그릇을 다르게 한 것은 시각적 효과를 노린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삼모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과식으로 인한 비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고 어린이 과식에 의한 과체중도 사회적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쌀이 부족하고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아서 우선 시각적으로 밥이라도 많아 보이게 하려고 그릇을 차별화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시골동네에 머슴을 둔 주인이 있다면 머슴 밥그릇과 주인의 그릇에 차이가 있다면 그릇은 같은 것으로 준비하고 식사량에 따라 밥을 퍼주었으면 합니다. 보여주기 위해 감추고 부질없이 포장하여 沙器(사기)를 가지고 상대편을 사기(詐欺)하는 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이니 말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