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소년의 생각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옛날에는 모든 꽃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편리한 계절에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벌과 나비들이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언제 필지 모르는 꽃을 위해 늘 날개를 다듬고 건조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 대표인 민들레와 벌대표인 일벌이 협상을 벌였습니다. 수개월간 거듭된 회의결과 벌과 꽃 모두에게 편리한 시기와 기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꽃들은 봄에 꽃을 피우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벌들도 이때를 맞추어서 부지런히 꽃을 날아다니며 꿀을 따먹고 그 과정에서 꽃은 씨앗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꽃들이 동시에 피면 벌들이 바빠 힘들 것이므로 일부는 나중에 피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꽃은 이른 봄에 피고 중간에 피고 초여름에 피는 꽃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목련은 잎새를 먼저 내보낸 후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느긋하고 통통한 벌들이 가끔 들어서 꿀을 받아갑니다.

 

가을이 다되어 피는 꽃도 있습니다. 국화옆에서라는 시가 그래서 탄생한 것입니다. 겨울에는 흰 눈꽃이 피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설화라고도 합니다.

사실 꽃이 예쁘게 하늘을 향해 피는 이유는 벌들이 착륙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부 꽃들은 땅을 향해 피는데 이때는 누렁이 벌들이 틈틈이 다니면서 씨앗맺기를 도와줍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꽃이 피는 것은 벌들에게도, 나비에게도 편리한 일입니다.

 

나무와 식물의 꽃이 봄에 일시에 동일하게 피는 것은 아마도 벌들과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그 증거는 나무뿌리입니다. 뿌리는 눈이 녹기 전부터 몸을 움직입니다. 뿌리에 힘을 주어서 흔들어 줍니다.

그러면 쌓인 눈이 녹아 내리면서 뿌리에 영양을 줍니다. 이 과정의 운동에너지가 땅속 벌집과 땅위 벌통에 전해집니다. 벌들이 날개를 말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여행을 위해 힘을 비축합니다. 이것을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땅속에서 이루어진 텔레파시는 열흘 후 하늘에서 연결됩니다. 나무의 뿌리는 손과 발 끝에 힘을 줍니다. 하늘로 뻗은 가지위에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산고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힘이 다시 벌들에게 전해집니다.

즉 나무와 벌은 그들만이 통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꽃이 피는 날에 맞추어 벌들이 하늘에 나타나난 것입니다. 그리고 벌들에게도 출발 조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 예선전처럼 출발조가 정해져 있어서 벚꿏이 피면 나가는 조, 호박꽃조, 싸리조가 있으며 좀 늦게 아카시아꽃 조가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꿀벌을 채취하면서 싸리꿀, 아카시아꿀, 유채꿀 합니다만, 꿀벌들은 1조꿀, 2조꿀, 3꿀로 부릅니다. 벌들마다 태어나면서 자신이 먹어야 할 꿀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벌들 간에도 자신이 활동한 영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업용 택시의 영업구역을 정해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영역을 벗어나면 택시의 경우 단속 대상이 되겠지만 벌들에겐 생사가 갈립니다.

요즘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지하에서는 벌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지하와 지상이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플라타너스는 그 모양으로 자신의 지상에 내민 몸 크기의 10% 규모뿌리를 땅속에 내립니다.

 

그래서 과수에 거름을 줄 자리를 나뭇가지 끝을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내려 정합니다. 그 위치에 실뿌리가 자리한 때문입니다.

나무와 풀들이 대화를 나누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벚꽃이 핀 후 봄바람을 맞아 흐드륵 떨어지는데요 이때의 진동이 땅속으로 전해지는 언어가 됩니다. 수억개의 벚꽃 떨어지는 소리는 다음 꽃을 피우라는 명령어가 되어 지구상 자연시스템에 전달됩니다.

 

중앙컴퓨터인 태양은 다음 꽃에게 명령하는 빛을 보냅니다. 네 차례가 되었으니 나가서 꽃을 피우라고 지시합니다.

그 사이에 벌들은 하늘을 날면서 동료에게 가는 길을 전하는데요 그 방법은 말이 아니고 냄새입니다. 자신들이 먹은 꿀에 다른 성분을 합해 향료로 쓰는데 그 냄새를 더듬이로 만져서 그 벌들의 가는 길을 알게 됩니다.

벌통이나 땅굴 집으로 돌아온 벌들이 피우는 향을 만져보고 어느 방향에 꿀을 가득 담은 꽃들이 만화방창 피어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벌들의 대화는 꽃망울에도 전해집니다. 마치 25미터 수영장 릴레이 경기와 같습니다. 양쪽에 서있던 선수는 자기편이 터치하는 순간 점프를 하듯이 벚꽃이 지는 순간 민들레가 피고 민들레 뿌리를 통해 전해진 명령어는 곧바로 냉이에게 알려집니다.

이렇게 해서 풀들은 수많은 언어를 전달하면서 봄계절 내내 다양한 꽃이 순서를 지켜 피도록 합니다. 그 순서는 지난 5천년간 한 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단군 할아버지 앞에서 핀 순서가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 순서를 바꾸려고 버들강아지,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 집안 화병에 두는 경우 한나절 정도의 차이를 두기는 합니다만 다시 가지 꺾어온 그곳에 가보면 역시나 순서를 잘 지켜서 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벌의 군무가 내는 소리를 사람들은 윙윙 정도로 표현하지만 벌들은 수천수만이 내는 소리를 모두 각각의 대화처럼 이해합니다.

 

사실 벌을 관리하는 신은 지금 몇 마리가 날고 있고 몇마리가 꿀과 새끼벌을 관리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절대로 밖에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코끼리나 새앙쥐나 평생 동안의 심장의 박동수를 똑같이 타고난 것과도 같습니다.

벌들이 채취하는 꿀은 기억장치입니다. 모든 일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저 꿀 속에 저장합니다. 다음해에 태어난 벌들은 부모 벌들이 꿀 속에 저장해둔 언어를 냄새와 촉감으로 이해합니다.

 

수년후에 예상되는 일들도 저 꿀 속의 작은 칩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 많은 벌들이 충돌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꽃을 찾아서 꿀을 따고 그 꽃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벌들의 꿀 기억장치는 마치 느티나무 작은 씨앗에게 발아한 작은 나무가 저 거대한 3층 높이의 나무로 자라는 그 과정을 기억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도대체 인간이 만든 USB저장장치에 느티나무의 이야기를, 벌들의 대화 내용을 얼마나 저장할 수 있을까요.

 

2기가의 저장장치는 단풍잎 단 1개의 기억도 저장하지 못할 것이며, 8기가의 저장장치는 꿀 한 방울도 담지 못할 것입니다. 꿀 한통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 수억대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 앞에 나약하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살면서 가능한 것은 봄에 꽃을 감상하고 어디선가 날아와서 모든 식물의 씨앗을 만들어 내는 벌들의 윙~~소리만 듣고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 속의 그 많은 일과 과정과 대화와 기록을 우리는 도저히 알지 못한 채 매년 봄을 맞아 꽃을 즐기고 벚꽃놀이에 가서 입을 아하고 벌릴 뿐입니다.

 

왜 벌들이 윙하고 지나가는지 알지 못한 채 또 한해의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땅속과 나무속과 입새들 틈새에서는 무궁무진한 언어와 기록이 저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 생각과 상상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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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