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이전의 생각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에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업고 있는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목욕을 시켜주거나 머리를 감기거나 약을 먹이는 기억이 날 것입니다. 어려서 소화불량으로 토한 후 무엇인가를 먹여 주던 분이 어머니일 것이고 그때 입안에서 느낀 맛은 엿기름이었습니다.

엿기름이란 보리알갱이를 따스하고 습하게 해서 싹을 틔운 후 그 싹이 6mm정도 일때 볕에 말리고 싹싹 비벼낸 후 알갱이만을 맷돌에 갈아 명주망에 걸러낸 흰 가루를 말합니다. 이것이 엿기름이라는 효소인데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칙 뿌리가 쓰겠지만 끈기 있게 어금니를 움직이면 언젠가는 달달한 맛을 느끼게 되는데 이 역할은 침샘에서 나온 프티알린 성분이 칙 뿌리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체한 아이에게 엿기름을 먹이면 위에 남아있는 녹말을 소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당분이 되어 체력에 보충이 되는 것이고 그 전에 밀린 음식이 소화되어 차분히 장으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어린 기억중에는 자장면집 수타장면이 있습니다. 자장면집 창문넘어로 수타장면을 구경하였는데 아버지는 말리십니다. 이리와서 앉으라 하십니다. 어린 아들이 수타 구경하는 것이 창피하셨나 봅니다.

시골의 산에 토막집이 있었고 쌀이나 부식을 들고 심부름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산, 태행산에서 장작불에 밥을 하였고 나무주걱으로 퍼준 밥에서 느끼는 보리밥 냄새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쌀이 귀했던 1962년경으로 생각합니다. 5살이면 냄새는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산속은 10대에도 여러번 갔던 곳입니다만 어느날 나무가 빼곡히 자라나서 그 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후에 태행산 치바위에 인삼을 캐겠다고 가보았지만 발견한 것은 자갈과 잡풀, 떨기나무의 허리굽은 뿌리였습니다. 어려서 선친께서 인삼씨를 3되정도 치바위 인근에 뿌렸다는 말씀을 보물섬 지도처럼 머리속에 간직하였던 터이고 10년이 지난 어느날에 기억을 살렸던 것인데 실패로 마감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던 1965년에 아버지께서 어쩌만 마지막으로 입학식에 오신 모습이 기억납니다. 지꾸머리 빗어넘기고 폭 좁은 넥타이를 맨 학부모 몇명이 앞중에 앉았으니 이분들로 말씀드리면 학교측에서도 약간은 모셔야하는 유지급이거나, 발전기금 30원정도를 내신 분들인듯 기억합니다.

이후 초등학교 국민학교 2학년 3학년때 운동회날이면 소사 아저씨는 필요치 않은 곳에 빨래줄을 매두었고 오전 10시부터 동네 유지, 학부모들이 모이시면 한분 두분 기금을 내시고 그 금액과 내신분 존함을 먹물로 크게 쓴 후 국밀이 질질 흐르는 시멘트 종이를 빨래줄에 내걸었습니다.

 

자안리 이길동 선생 20원. 貳拾(이십)원이라 적으시니 한자가 참 어려운데 이제는 알 수 있는 20원이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기성회비 50원, 연구회비 20원을 선생님 선창에 따라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해인 1964년 가을에 집앞 논에 쌓아둔 한해농사 짚까리 근처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바싹 마른 봄날에 불이 번져서 모두 태워먹은 기억도 생생한지라 여기 기록하고자 합니다.

 

불을 끄지 못하고 무서워서 뒷산으로 도망갔고 점심도 굶은 채 저녁까지 기다려 어둠을 틈타 집으로 가니 누구도 야간치지 않는데 앞 논은 그냥 검은 바다가 되었고 그나마 동네 청년들이 건져낸 20개 정도의 타다 남은 짚단이 덩그라니 누워있었습니다.

나중에 안일인데 그해 우리 집 지붕을 수리하지 못하였고 봄내 여름동안의 각종 농사일에 필요한 집단을 얻어 쓰는 불편과 아픔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사물이 순환을 하는데 짚이라는 중요한 소품을 몽땅 태워 먹은 터라 할아버지, 어머니, 고모님, 머슴 아저씨의 불편이 컷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스라한 기억은 이른바 '경기'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눈을 감고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을 경기, 경끼라 합니다. 딱한번 경기라는 것을 만난 것 같은데 기억은 나리마리 하는데 그 당시 함께 사셨던 고모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경기라는 것을 하였고 코를 비틀고 찬물로 진정을 시켜서 잘 넘어갔다고 전하는 바입니다.

한 사람의 기억의 양은 참으로 많을 것이지만 그냥 현재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생각 이전의 기억들, 기억 이전의 생각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고민하고 번뇌하고 상상하고 추억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날 때마다 적어두고 정리하는 것은 새 삶을 창조하는 것이라 자부하면서 늘상 생각을 강하게 하고 나오는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고 수집해서 한편의 글로 올리고 관리하고 끊임없이 보강하는 개미들의 열정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