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우리가 자주 행복하게 만나는 김밥은 분석적 시각에서 보면 "밥김'이라고 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맞을 것이다. 밥, 계란전, 맛살, 연근, 시금치 등이 들어있고 들기름, 참깨, 소금등이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팥죽도 외형은 초콜릿 색이지만 그 내용물은 밥이 70%를 넘을 것이다. 나머지는 물과 양념이 차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외관을 보고 팥죽이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밥의 재료를 보면 제조자에 따라 비율이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대략 밥 60%, 계란 12%, 시금치 5%, 연근우엉 10%, 맛살 9%, 참깨 1%, 김 2%, 기타 양념 1%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밥계란찬김'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오너의 주식 지분이 10%를 넘지 않는것 처럼 밥이 많아도 김이 외관을 담당하고 밥알을 잡아주는 김의 기능성을 강조하여 김밥이라 부른다. 분석적으로 보면 이는 마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 할 것이지만 그 제조과정에서 주부가 김밥이라 생각하면 김밥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대락 2%에 못가는 김이 밥과 그 재료들을 감싸고 있다는 이유로 김밥이라 부르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금괴를 노랑 보자기로 쌓았으니 '금보자기 금괴'라 불러 줄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이미 그런 형태의 이동식 호화 식사메뉴를 김밥이라 부르고 큰 도시에서는 김밥을 테마로 한 2만원짜리 메뉴가 호황이란다. 그래서 김밥은 인간의 인생사 만큼이나 그 레벨이 다양하다 할 것이다.

 

우선 국민학교 시절(50세 전후)의 김밥의 영원한 파트너는 단무지와 시금치이다. 단부지를 나무젓가락보다 조금 굵은 크기로 썰어 베보자기에 쌓아 남아있는 수분을 꼭 짜준다. 시금치는 거친줄기가 조금 무를 정도로 살짝 삶아서 두 손으로 꼭 짜준다.

그리고 밥을 보울그릇(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전선에 '펀치보울'(Punch Bowl)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 모습이 '보울'모양(화채그릇)이라 해서 취재하던 외국기자가 작명함)과 들깨가루를 첨가한 후 펼쳐진 김의 2/3면적에 밥을 고르게 펴준 후 준비한 단무지, 시금치, 그리고 계란전을 올린 후 탱탱하게 말아준다.

 

어느 김밥에서도 꽁댕이가 남게 마련인데 양쪽에서 나오는 2개를 합하면 온전한 김밥 1개 몫이 되지만 그 내용물은 빔과 계란, 시금치 등 부재료가 많으므로 인기가 높다. 상대적으로 밥의 양이 적으니 반찬에서 나오는 기름향이며 조미료가 많이 포함되었으니 미각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밥의 생명을 옆구리다. 옆구리 터지면 사망한 '김이 새어버린' 김밥이 된다. 따라서 김밥을 말아줄때 모든 재료의 물기를 제거해야 하며 물기가 적다해도 남아있을 것이므로 김위에 밥을 넓게 펴서 모든 재료를 펴진 밥이 한바퀴 돌아 감싸도록 해야 김밥의 옆구리를 보호 할 수 있다.

 

그리고 김밥 재료를 만들때 소금간을 피하고 밥과 깨소금, 참기름을 비빌때 약간의 소금간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당근볶음 등 재료에 따라서는 소량의 소금간을 하는 경우도 권장한다.

김밥을 마는 요령이 중요하다. 초기에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말다가 김밥말이 발(대나무로 엮은)을 이용하고 손가락 힘이 고르게 퍼지도록 하여야 한다. 맨손으로 힘을 가하면 김의 장력이 밀리면서 함몰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김밥말이 발로 한번 앞부분을 말고 중간쯤에 다시 감아 말면서 눌러준다. 밥이 올려지지 않은 반대편 김의 끝부분에 물을 칠하거나 계란 흰자를 바른 후 말하주면 접착력이 높아져서 김밥이 탱글해 진다.

김밥을 말아준 후 곧바로 썰지 않고 일단 김의 끝단부분이 아래로 가게하여 잠시 숙성시키는 기분으로 기다렸다가 밥알의 습기로 적당한 접착이 되었을 즈음에 김의 끝단부분이 도마에 접하도록 한 후 칼끝으로 썰어준다. 밥알이 잘라지면서 칼끝에 붙으니 수시로 행주에 칼을 닦아내면서 김밥썰기를 이어간다.

 

김밥집에서는 미리 썰어두지 않고 김밥말이 상태로 전시한다. 들기름으로 한껏 멋을 내서 몸통에서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그 위에 통깨를 뿌려주니 시각적 식감이 극도에 다다른다.

썰어낸 김밥을 그릇에 담은 후에 통깨를 솔솔 뿌려주면 부가가치가 올라간다. 연근, 시금치, 계란전 등 남은 재료는 김밥그릇 사이에 끼워넣는다. 반찬으로 김치를 밀봉 그릇에 담아 곁들이는 것도 좋다.

 

옛날부터 김밥은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손으로 집어먹어도 지적할 일 아니다. 하지만 고급 식당에서 은은한 향료까지 곁들이는 도자기 접시에 나오는 김밥은 반드시 지정 젓가락으로 먹어야 할 것이다.

오늘 점심에는 탱글탱글 윤기가 흐르는 김밥을 먹을 것이다. 야외라서 쉽지 않겠지만 혹시 보온병에 담겨진 '계란탕'이나 '어묵국'이 함께 한다면 이야말로 금상첨화 김밥천국이 될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