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경기도청 과장님 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80년대 공직사회의 課長(과장)은 중앙부처이든 도청, 시청, 군청 어디에 근무하든 2016년 오늘날보다 심히 誇張(과장)되었습니다. 일단은 머리에 기름을 번지르르하게 발라서 반짝 거립니다. 늘 양복을 입고 8시 이전에 출근하여 국장님실에서 매일매일 회의를 합니다.

 

 

국장실에서 회의를 마치면 과장님들을 국장실에 남겨둔 채 시장실에 가서 30분 정도 회의를 하고 9시경 다시 국장실에 돌아와 기다리던 과장들에게 시장님의 지시사항을 전달합니다.

당시의 소통방법은 口頭(구두)로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더러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지만 복사기 사정도 어렵고 컴퓨터 워딩도 없었으므로 말로 지시하고 수첩에 적는 방법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공무원들이 출장이나 구내식당 행사시에 커다란 수첩을 들고 몸의 중심을 잡는 이유일 것입니다.

 

20대에 공직에 들어와 30년 동안 수첩을 들고다닌 50대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수첩을 들어야 걸음이 편합니다. 예식장이나 칠순잔치에 양복입고 그냥 걷자면 영 불편합니다. 어느 손 하나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듯 보이는데 거기에 결혼기념품으로 종이 포장된 수건이나 화과자를 들려주면 몸이 편안해 합니다.

수첩과 친밀한 우리의 존경하는 과장님들은 아침 업무를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계장님들과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오전 10시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잠시 자리에 돌아가 업무를 보시다가 11시50분이 밖으로 나가십니다.

 

1980년대 기억으로 대부분 부서의 공무원들은 과장님을 위해 존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업무의 진행이 과장님 중심이고 결재를 받으려면 과장님을 이해시켜 드려야 하는데 대부분 잘못되었다는 지적 일색이고 칭찬을 듣는 경우는 없습니다.

야단을 맞지 않으면 잘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늘 군대에서 고생하신 선배들의 말씀 중에 새벽 1시에 ‘빠~따’ 50대를 맞고 나서야 편안하게 발뻤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과장님 모시고 일하면서 칭찬을 듣는 것은 사치이고 한 두 건 야단을 맞아야 오늘은 평년작이구나 하면서 안도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공직문화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기안이 올라오면 차석이 손대고 계장님이 두 세글자 수정하고 과장님은 중요 키워드에 밑줄 좍~하신 후 굵게 싸인하신 후 날짜나 예산액 등에 체크(‘, ^, V)를 해서 국장님이 보실 때 심층(!)검토 한 것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장님 결재서류에는 절대로 검토표시를 하시지 않습니다. 국장님 전결의 경우 과장님은 이리저리 줄을 그어주시지만 시장님까지 받는 기획결재 서류에는 절대 연필조차 대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시장님의 방침을 받기 위한 서류는 늘 과장님 책상위에서 보완과 보강을 반복합니다. 오늘은 결재를 받을 수 있을까 전화문의를 합니다. 어느 날 결재된다고 급전이 오면 밖에 나가신 과장님께서 그 서류 가지고 비서실로 오라 하십니다.

비서실 앞 복도에 나와서 서류를 기다리시던 과장님의 그 급하신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평소에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걸어 다시니던 우리의 스타 과장님께서 저리도 급하신 경우가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잠시 후 시장님의 결재를 받으신 과장님은 이 세상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으신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로 進軍(진군)하시고 담당 계장님은 황송한 자세로 결재서류를 받아옵니다. 송구스런 마음으로 결재서류를 넘기며 시장님께서 수정하시거나 첨삭하신 말씀이 있는가 살핀 후에 차석에게 명하여 즉시 결재인(파랑 스탬프)을 받아오라 합니다.

내용에 관계없이 시장님 방침결재 하나를 받으신 날은 사무실이 평온합니다. 다른 과장님 전결 결재도 잘 돌아갑니다. 엔돌핀이 돌아서인지 과장님이 서무를 칭찬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쯤되면 차석들은 경쟁 모드로 들어갑니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6시가 가까워지면 과장님은 퇴근준비를 하십니다. 과장님이 저녁 6시 이후에 사무실에 남아있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과장님이 나가셔야 직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야근을 시작하고 고참은 2시에 도착한 석간신문을 펼치기도 합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의 과장님은 7시40분에 사무실에 오십니다. 그래서 서무담당은 7시30분 이전에 사무실 문을 열어야 하니 조기 출근을 해야 합니다. 주무계 직원들이 회식을 하는 날에는 한명을 정해서 내일아침 일찍 출근담당을 정해둡니다. 서무담당이 사무실 문 여는 역할을 펑크내면 차석이나 선임이 과장님으로부터 야단을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존경받는 과장님 한분이 사무실 키를 복제하는 당시로서는 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에 차키와 집열쇠, 사무실 쇳대를 고리에 걸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유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柳(유)과장님께서 당직실에 비치되는 사무실 키를 복제하여 본인이 허리에 달고 다니면서 이른 아침 출근하여 열쇠로 열고 들어가 수첩을 꺼낸 후 국장실 회의에 참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복도를 타고 온통 청사내에 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후 몇 분이 벤치마킹(bench-marking)하게 되었고 결국 총무과에서는 방호원 아저씨에게 추가 임무를 부여하였으니 6시 경에 사무실키를 출입문에 꼿아 두도록 용단을 내린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음으로는 이미 여러 부서가 키를 복제하여 화분 아래, 문틈, 창틀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번호키, 카드키가 발전하는 계기가 된 듯 보입니다.

 

강물을 막을 수 없으니 우회시키려 노력하는 것이고 허리케인 등 태풍을 피할 수 없으니 미국에서는 다용도 기능을 겸비한 지하실을 준비합니다. 행정에서도 흐름을 거부하지 말고 따라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공무원증에 사무실 키 기능을 추가한 것도 잘한 것이고 이제는 구내식당에 가서 공무원증으로 결재를 합니다. VIP행사가 있으면 자신의 회사에 들어가면서 공무원증을 보여야 하고 지금도 중앙부처에 가면 공무원증과 신분증을 동시에 제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984년경 이야기이니 이제 33년 전 스토리입니다만 가끔 당시의 어르신을 뵙거나 전화 통화가 되면 요즘에도 자택에서 사모님과 ‘과장님 놀이’를 하실까 상상을 하면서 미소 짓습니다. 아마도 과장님 대부분은 사모님 앞에서 서무담당처럼 앉아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간부로 근무하시다가 60에 정년퇴직하신 공직자들이 1년새에 늙은 모습을 보이시는 이유가 50대 초반부터 이발소에서 염색을 하시며 젊음 모습을 堅持(견지)하기다가 퇴임후에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복을 입으신 모습에서 점포나 캐주얼 패선을 하시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합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속의 자신감, 자부심 부족이라고 합니다. 공직자로서 60세에도 당당하셨는데 어느 날 나이로 인해 퇴직을 하시니 몸은 젊으신데 마음이 스스로 60을 넘었다고 결정해 버리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면 토큰 내야하고 식당가면 주문해야 하고 현관에서 자신의 구두를 닦으시면서 나이 들었음을 절감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인생의 과정입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은 청소년들에게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안겨주는 말일 것입니다만, 현직에서 權威(권위)와 權威主義(권위주의)를 많이 발휘하시면 퇴임 후에 어깨 떨림이 심할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공직에서 피해야 할 업무에 3골이 있는데 骨材(골재), 納骨堂(납골당), 골프(golf)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직에서 성공하려면, 골프에서 좋은 타수를 기록하려면 딱 한 가지 비책이 있으니 그것은 ‘어깨의 힘을 빼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