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處(자처)한 苦行(고행)길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007년과 2012년에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장기과정 교육을 받은 바 있어 연수원과 친숙한데 연수원이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시대를 마감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이전한 이후 새로운 건물에 입주한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아보고 싶었던 차에 교육 수료생을 대상으로 하는 토론식 1박2일 교육일정이 개설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즉시 교육신청을 하였습니다.

 

 

연수원 담당 사무관께서 2012년 교육시 후반기 총무를 담당한 것을 아시고 관리하고 있는 교육수료생 전화번호를 이용하여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달라 하시므로 카피하여 올리면서 총무 아무개가 보낸다고 첨언까지 하였지만 늘 그러하듯 50대 교육동기들은 전혀 리엑션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너명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연수원에서 보내온 전자문서를 열어보니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 바쁘게 일하시거나 나이가 좀 들어 교육받으시기가 즉각 수락하는 분위기가 아닌 줄 생각하였습니다. 경기도 교육생도 많은 편인데 2명이 신청하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교육받기가 힘들었던 것이었나요.

 

오산시는 평생학습을 위한 여러 가지 시책을 추진하여 정부기관의 상을 받고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부응하고자 교육을 신청한 것입니다. 가서 배우고 벤치마킹하고 그 내용을 업무에 반영할수록 시의 평생교육에 보탬이 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교육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신청을 하고보니 교육전날 저녁에 식사약속이 있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대로 진행을 하고 그날 저녁에 기차를 타고 전주에 와서 1박하고 연수원에 등록하기로 하였습니다.

 

1982년경에 한계령을 나홀로 걸어서 넘어간 이래 홀로 장거리 산행이나 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으므로 더 나이 들기 전에 재미있는 이벤트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싸우나탕의 이벤트 탕도 그런 의미인가 생각합니다.

일단 약속한 대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공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의 생각들을 교환하고 남은 공직을 수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문제를 풀어가고 민원에 응대하고 해결책을 강구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산역으로 함께 걸어갔습니다. 지금 아내와 두 아이가 오산역으로 오고 있습니다. 미국 이민가는 것도 아닌데 역에 나와서 환송을 하겠답니다. 오산역 앞에서 버스를 타면 곧바로 수원 집으로 갈 수 있다며 늦은 시간을 마다하지않습니다.

아이들이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21:51 오산을 출발하여 천안에 22:22분 도착하고 잠시 계단을 걸어가 천안에서 22:35분에 출발하여 전주에 12:44분에 도착하는 기차편을 예매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주에서 7,000원짜리 찜질방에 들었습니다. 고행의 시작입니다.

 

아이들은 천안, 전주 도착상황을 실시간 확인합니다. 마치 철도 상황실을 차린 듯이 하차 예정시각에 문자를 보내고 카카오톡을 보내옵니다. 그래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전화를 걸어 알려줍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전주역에 내리니 새벽 1시 입니다. 시내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아이들이 찾아준 찜질방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이버상의 상황이 실제로 전개되는 순간입니다. 아이들은 화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과학자처럼 즐거워합니다.

 

사실상 고행은 지금부터 입니다. 우선 갑자기 날이 추워졌습니다. 오늘이 수능시험일 입니다. 찜질방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손님이 적은 편이고 불 때는 보일러공은 바깥의 찬바람을 알지 못합니다.

철부지란 철이 바뀐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곳 찜질방 사장님은 철부지 입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찬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치와 세수, 손발을 씻고 일단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이 시각 이 추위에 샤워를 하면 감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휴식실'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누웠습니다.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옵니다. 바위를 베고 자는 느낌입니다. 10여분 버티다가 위층에 2명이 편하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갑니다. 2층 바닥재는 돌이 아니라 나무일 것입니다. 역시나입니다.

하지만 새벽 찜질방 소음은 다양합니다. 한잔 하신 분들이 서너명 단체입장하면서 웅성거리고 1시간 후에는 노숙자급 손님이 카운터 아저씨와 실랑이를 합니다. 물건 옮기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가 이렇게 큽니다.

 

옆자리 아저씨는 1시간 이상 잘 자다가 코를 골고, 핸드폰 알람이 정기적으로 울립니다. 7천원짜리 저가 숙소의 한계 입니다. 그래도 눈을 눌러 감고 잠을 청해야 합니다. 버티고 버텨보았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시각은 새벽 3시30분. 2시간 정도 누워서 설 잠을 잔 것입니다.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니 이 시각에 깬 것이 정상이라 할 것입니다. 탕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몸을 따스하게 한 후 찬물에 들어가 식히고 달구고 줄 잡아당겨 찬물 洗禮(세례), 더운물 샤워를 돌아다니니 몸이 개운해 집니다.

 

뜨거운 국물 먹으면서 시원하다는 한민족 입니다. 냉탕 온탕을 반복하면서 시원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역시 새벽 찜질방이 제 맛입니다.

찜질방에서 1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고 밤새 시간과의 싸움, 취객과의 충돌로 힘들었을 카운터 아저씨에게 지방행정연수원 가는 길을 물으니 일단 연수원이 완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십니다.

 

지난해 완주로 이사왔으니 찜질방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는 분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전주역에서 72번 버스를 탄다는 것을 아이들이 적어준 '지령서'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저씨의 밤샘 피로를 풀어줄 힐링을 통해 나 자신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생각을 하였나 봅니다. 사람들은 친구의 사례라면서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남을 위로 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위로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콩나물해장국을 먹을 시간입니다. 여성 손님 3분이 대화를 하는데 들이는 말은 '언니가... 언니가....' 입니다. 한술 하신 듯 합니다. 아침 5시반까지 한잔 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제 밤부터 소주와 맥주를 드시며 대화를 하시는 것이 분명 합니다.

참으로 체력있게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맞은 편 4명의 남녀는 큰소리 작은 소리 대화를 나누다가 남자가 "이제 가자!!!"한마디에 스르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건너편에 60대 초반 부부의 조용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부부가 직장을 퇴직하고 이도시 저산 이 바다로 여행을 다니시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좀 부럽기도 한 모습입니다. 희망하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입니다. 세 여성의 대화속에 이제 곧 나갈 것 같은 단어가 들어옵니다. 카드가 있네 없네 누가 낼까 계산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금방 마무리 될 것은 아닙니다.

1962년생, 1958년생, 1959년생이랍니다. 하하, 저 연세 이 나이에 밤새워 술드시고 저리도 열정적으로 취중 방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이제 대부분 손님은 조용히 떠나고 건너편 마루방에 20대 1쌍이 맥주 한 병을 세워놓고 대화의 톤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조신하게 콩나물국밥을 먹던 여성 처자가 손가락을 올리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신나게 이야기 합니다. 남자는 손을 턱에 괴고 열심히 들어주면서 박자를 맞춰갑니다.

요즘 남자들은 모두 남을 위해 박자를 맞추고 가족을 위해 힘들어도 춤을 춰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생존전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러 그렇게 세상이 변한 줄 모르는 이들이 걱정입니다. 국가가 나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72번 버스는 참으로 여러 곳을 돌아 돌아 달려갑니다. 혁신도시를 지나고 마을 부락을 돌고 돌아 여명이 밝아 올 무렵에 허허벌판 신 개발지의 농촌진흥청을 지나 버스 종점인 지방행정연수원에 7시30분경 내려 줍니다. 요금은 기본 1,300원에 추가 400원입니다. 그럴만도 한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쌀쌀한 날씨 속 지방행정연수원은 거대한 용모습의 머리와 꼬리를 늘어트린 채 인근 김제시의 지평선 축제에서 만난 대나무로 만든 용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숙직 근무자가 눈을 비비면서도 반갑게 맞아 줍니다. 공무원이 변했습니다. 더구나 중앙기관중 하나인 연수원이니 말입니다.

 

커피 한잔에 찜질방 피로를 풀고 연수원 교육 시작을 기다립니다. 우선 등록을 하고 숙소 키를 받아 516호에 들어가니 원룸 방이 호텔급입니다. 1년 내내 교육만 받아도 즐거울 것 같은 시설입니다. 책상도 좋고 인터넷 선도 있고 복도에는 10대 이상의 PC가 손님을 기다립니다.

나이만 조금 젊었으면 한 번 더 장기 교육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갔고 이렇게 단타 교육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교육 전날저녁에도 이 숙소를 개방한다고 합니다. 찜질방 고행이 더더욱 힘든 추억으로 남는 대목입니다만 그래도 이미 겪은 아름다운 고행의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이미 운명적으로 코골이 아저씨, 술주정 아줌마, 목소리 큰 아저씨 일행과 함께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전북 완주군의 지방행정연수원은 드넓은 터전 한가운데에 마치 용의 중간토막을 형상화한 듯 평온하게 누워 있습니다.

 

수원 파장동의 연수원이 산속에 포근히 자리한 1970년대 건축이라면 완주의 지방행정연수원은 21세기를 이어가는 크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건물의 배치와 기능이 돋보이는 교육의 장입니다.

더구나 1인1실의 숙소는 1년을 넘어 2년 동안 연수를 받아도 불편함이나 지루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근무하는 공무원 모두가 친절합니다. 용역사 직원일 것으로 보이는 분들도 친밀하게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인사를 합니다. 이런 분위기 자체가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층층마다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분임토의 시청각 강의를 하고 공무원들의 사무공간도 넉넉해 보입니다. 강의동과 숙소는 3층에서 곧바로 연결되어 편리하고 식당은 2가지 메뉴에 가격도 저렴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을 다 불러 교육을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단 2일만 교육을 받아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변화와 혁신의 싹이 틀 지경입니다. 참으로 잘 지어진 연수원 건물입니다.

 

서울과 수원에서 멀다는 점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거리를 줄일 수 없으니 강사들을 빠르게 편하게 모시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헬리콥터 2대를 사서 운영하는 것인데 대부분 공감하지 않습니다. 과거 수원 파장동 시대에는 강사들이 하루에 3건의 강의가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완주군으로 이사 온 이후 2시간 강의를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이점이 과제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번 추가 교육을 통해 새로움을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집나가면 o고생이다’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매일매일 퇴근해서 들어가는 우리집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한번 더 확인하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