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부산방문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012. 4. 15(일). 오전에는 천국이요 오후는 인간 세상이었다고 평가해야 할까보다. 보름 전에 예약한 KTX표를 들고 수원역에 가니 아직 30분은 족히 여유가 있다. 지난번 경북 방문때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수원역 오픈식 서점에 들러 15,000원짜리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남자의 물건.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학심리학. 김정운 저, 21세기북스. 독일 유학파인 저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만년필을 소개하고 이어령 선생의 책상, 소주병 상표 ‘처음처럼’을 쓰신 신영복 선생의 벼루를 소개한다. 그리고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수첩’과 차범근 선수의 ‘계란 받침대’도 나온다.

 

모두가 본인들을 만나 장시간 인터뷰하고 쓴 글이다. 앞부분 저자의 글에서는 깊이 있고 공감가는 평가가 나오고 유명인의 인생사에 함께하는 물건 편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한다.

KTX 예약석에 앉아 커피한잔과 함께 좀 비싼 도너츠를 사 함께 먹으며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서 아주아주 편안하게 동대구를 거쳐 부산역에 내렸다.

 

30대 여자들은 머리를 묶을 때 그 머리 묶는 고무줄을 꼭 입에 물고 시작을 할까? 전에도 여러 번 사용한 고무줄인 것 같은데. 저러다가 할머니 되면 숟가락 손잡이로 머리 득득 긁고 나서는 곧바로 고추장 찍어 드실라. 부산 도시철도를 타고 남면역에서 환승하여 동백역에서 하차하여 박 선배님을 만나 웨딩타운에 갔다.

방향을 잘못 잡은 관계로 해운대 바닷가로 가게 되었는데 이건 뭐, 여기가 뉴욕인지, 중국 푸동인지? 부산은 다시한번 국제도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빌딩이 있는데 거리는 한산하고 주차도 편안해 보인다. 지상에 보이는 만큼의 지하세계가 존재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나무를 보면 거의 그만큼의 뿌리가 있어 지탱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수에 거름을 칠 때 잔가지까지의 수직지점에 땅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치는 것이다. 소나무는 넓게, 미루나무는 깊게 뿌리를 내린다고 하였다.

 

예식장은 1층이고 피로연은 3층이다. 요즘 신랑 아버지는 청년이다. 회갑노인이라는 말이 어디 있나. 칠순잔치에도 젊은 분이 주인공이 아니던가? 부산등 영남지방은 결혼식 답례로 식권 또는 1만원 노자를 준다. 우리는 식권을 받아 3층 뷔페장으로 갔다. 1시반이니 시장한 시간이다.

 

뷔페장은 러시아워다. 그런데 그런데... 꼭 코스 첫머리에서 큰 접시를 들고 기다리라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 꼭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규정도 못 보았다. 왜 사람들은 뷔페장에서 조차 줄을 서고 볶음밥에 미역국을 수북이 퍼올까.

 

우선 인파가 적은 야채 코너와 접시판이 ‘펄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떼’처럼 스쳐지나간 회 코너를 돌며 남은 이삭을 주웠다. 그리고 과일전에서 붉은 것, 노란 것 몇 가지 채집했다.

그래도 한 접시, 十匙一飯(십시일반)이다. 자리에 와서 맥주와 함께 1식을 하였다. 박 선배님이 오시기에 2식에 들어갔다. 물론 맥주에 소주 두잔내기 말아서 건배했다.

 

두 번째 접시에는 삭스핀, 버섯, 새로 나온 회, 또 다른 과일을 담았다. 옆 테이블의 소주 한 병을 더 가져왔다. 그리고 박선배 말씀대로 고속버스 타고 귀가하는데 맥주마시면 위험하다.

버스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3-4시간 자리를 지키려면 소주가 제격이라는 말씀이다. 3식에는 과일을 중심으로 담았다. 국수와 볶음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에 보자.

 

올 때는 헤맨 길이지만 돌아가는 길은 대략 알겠다.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신랑 부모님을 만나 축하인사를 다시 건네고 도시철도 동백역으로 갔다. 거기서 남면역으로 가서 환승하여 부산역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박 선배님은 고속버스를 타야 하므로 남면역에서 부산역 반대방향의 철도를 타셔야 하는데 그냥 동행하여 부산역 3전 쯤에서 '아차' 하신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 자체에서 상행하행을 바꾸어 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선배는 기차를 내려 다시 반대방향으로 가실 것이다. 이제 혼자다.

부산역은 여유롭고 건너편 산은 꽃의 축제다. 지금 부산은 꽃박람회를 여는 중이다. 앞산 스스로 계절에 맞춰 축제를 열고 있는 것이다. 고양꽃박람회는 고양시에서 여는 것이고.

 

그런데 부산역 인터넷은 난리다. 일단 수원가는 표가 매진이고 서울가는 표도 없다. 줄줄이 매진이다. 22:00이면 밤 10시가 아닌가? 22시에 출발하여 3시간을 더하면 새벽 1시에 수원에 내린다는 계산이다.

기계를 바꿔가며 십 여차례 검색해 보아도 수원가는 자리가 없다. 근처에 김포공항 가는 비행기가 있을까? 하지만 김포공항에서 수원 오는 것도 쉬운 일 아니다. 부산역까지 3시간 안에 도착하였으나 시내에서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천안까지 가서 어찌할 요량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동대구까지 KTX, 천안까지 무궁화에 표가 있어 급한 맘으로 카드를 긁었다. 표가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 출발시간을 보니 한 90분 이상 남아있다.

다시 부산역 광장으로 나가 비둘기를 바라보다 책을 보다 경치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22:00 출발 KTX를 예매하는 것이 나았나 생각도 들었다. 남은 시간 부산영화제의 현장에서 영화한편 보는 것도 좋을 것인데.

 

30분전에 역사에 들어서니 아직도 인산인해.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출산이라니. 맞구나 고령화는. 이분들 매년 1살씩 나이를 먹을 것이다. 정말로 그 많은 사람 중 젊은이, 어린이는 적고 50대 어른들만 보인다. 경제권이 있는 분들이겠지. 등산이나 구경을 다녀오는 듯 하니 모두가 소비층이기는 하구나.

일단 KTX를 타고 부산을 출발했다. 4시30분에 출발하여 재빠르게 동대구역에 내려준다. 평균시속 295㎞인데 열차는 방금 엔진오일 바꾼 승용차처럼 부드럽게 달린다. 기차길 옆 전봇대는 팡팡팡 하면서 지나가고 저 멀리 펼쳐지는 봄날의 경치는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40분만에 동대구에 내려준다.

 

이제 동대구에서 천안까지 가면 전철을 타고 수원역서 내리면 집으로 가는 51번 버스가 반겨줄 일만 남았다. 그런데 동대구역에서 만난 무궁화호 입석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4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 책을 읽기에는 조명이 약하고 흔들리고 오가는 승객의 발에 채이고 등산 가방에 밀려 이리저리 휘둘린다.

새마을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차량 구조도 그렇게 운행하는 흔들림에서도 한 급 낮은 느낌이 든다. 더구나 등산객과 봄놀이 인파가 한데 어울려 좌석만큼의 입석 손님으로 열차 안 열기가 와글와글이다.

 

입석이니 까페차에 가도 좋을 것이라는 역무원의 안내에 감사하며 올랐으나 이것은 뭐 피난열차다. 게임기 자리는 물론 식당의자마다 인파로 가득하고 대부분 젊은 이들이다. 안락의자는 1인당 10여분씩 근육피로를 푸는 곳 같은데 어느 중년 어르신이 코를 고신다.

바닥에 자리 잡은 등산객들은 특석손님이다. 통로까지 자리 잡은 인파로 도저히 빈곳이 없다. 6호차 입석표지만 5호차에서 머물렀다. 어디로 가나 내 자리,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만 남았다. 그냥 서서 4시간을 기다리면 수원역에 도착할 것이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보이므로 좌석의자 손잡이를 잡고 열차의 진동과 회전에 대응해야 한다.

1시간여가 지나 역무원을 만났다. 십 여차례 예매검색을 하다 보니 천안역까지 입석 표다. 그래서 수원역까지 연장해달라니 즉석에서 표를 끊어주면서 추가요금을 받는다.

 

사실 수원역에서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다른 역도 표 검사가 없다. 하지만 KTX 동대구역 하차 직전에 키 175cm정도의 여성 역무원이 내 표를 보자고 했다.

미국 LA 전철도 표 검사가 없는데 한 달에 한 두번 검사해서 걸리면 1년 치를 물어야 한다. 물론 부산에서 천안까지 기차표가 있지만 천안을 지나 수원까지 가는 길에 표 검사를 하면 걸린다. 걸릴 가능성 1%, 표 검사 안할 가능성 99%이지만.

 

오전에 부산가는 KTX에서 넥타이맨 젊은이(40대중반)가 역무원과 싸우는데 참 이상한 점이 있다. 역무원은 표를 보자 하는데 승객은 자기에게 막말했다고 반발한다. 핵심에서 벗어난 대답이다.

그렇다. 표를 보여주면 될 일인데 표가 없거나 분실했으니 엉뚱한 말로 대응하는 것이다. 왜 반말이냐?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다 또 걸렸다. 다음 역에서 철도경찰이 모셔갔다.

 

결국 천안역에서 신문지 신세를 졌다. 열차와 열차사이의 승객수가 줄어들면서 자리가 생겼다. 출입문 계단을 의자삼아 신문지를 깔고 앉아 책을 펼쳤다. 묵직한 쇳덩이의 한기가 꼬리뼈를 타고 올라온다. 우지직하는 기름기 마른 쇳소리가 갈비뼈를 자극한다.

그래도 책이 눈에 들어온다. 3시간이상 서있던 발목의 피로가 풀리니 온몸이 사우나에서 나온 듯 개운하다. 휴식은 기차안에서도 필요하다.

 

사실 무궁화호 객차안은 조선시대 사회상이다. 한번 양방은 영원히 양반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은 아버지의 호부호형 허락을 받았지만 새벽길을 나선다. 정말로 입석은 다음역에서 내려 더 늦은 밤시간이라도 좌석표를 사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역마다 정차할때마다 빈자리가 나는데 앉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앉아보아야 30초다. 이내 주인이 나타나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엉덩이를 텅하고 던지고는 이내 잠이 든다. 눈을 감고 인상을 쓰면서 몸을 움추린다. 입석 손님들이 등받이에 손을 올리는 것도 안 된다는 듯 용을 쓴다.

 

입 벌리고 자는 입석은 더욱 밉다. 누구 골 지르는 짓이다. 3시간을 서서 왔는데 금방 차에 올라서는 피곤하다고 인상을 쓰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역에 정차하는 것조차 입석에게는 스트레스인데 잠시 빈자리 보다가 다음 손님이 개선장군처럼 들이닥쳐 자리를 잡고 눈감고 잠드는 것을 수차례 보아야 한다. 오죽하면 새로운 손님이 오면 입석들은 자리를 뜬다. 꼴 보기 싫다는 말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지 결국 평택을 지나 병점 간판이 보인다. KTX에 앉아서 보는 수원지역 간판과 입석표 들고 기차바닥에 앉아서 고개를 들어야 간간이 보이는 수원 간판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묘하다 그 느낌이.

수원이 발전하는 100만 도시인 것은 맞나보다. 엄청 많은 이들이 수원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시내버스와 택시를 타고 스르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진다.

 

육교를 지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렇게도 그리던 51번 버스가 온다. 텅텅 비었다. 오늘 오후에 만난 유일한 행운인가보다. 물론 무궁화호 기차안에서도 조금 나은 공간과 시간은 있었다.

그러니 세상사라는 것이 무역의 원리다. 비교우위라는 말이다. 전보다 나으면 좋은 것이고 지금보다 힘들면 나쁜 것이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평가이니 삼자는 알 길이 없고 평가해줄 수 없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