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전은 초보입니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필요하면 찾게 됩니다. 화성군 팔탄면 사무소에서 회계업무를 보다가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전근되어 또다시 서무회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구매가 있고 강사님 수당을 드리기 위해서는 경기은행에서 공금수표를 현금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철물점도 가야하고 약국에서 구매할 것도 있습니다. 식품은 매일매일 배달차가 와서 신선한 야채와 곡식, 육류, 생선 등을 가져옵니다.

매일 오전에 한번 시장과 은행에 가야하고 가끔은 경기도청 총무과 회계과 지방과를 들러야 하는데 차량은 4대, 운전하시는 분은 3명으로서 통근버스 운전자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매번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공무원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만 서무 회계와 달리 운전업무는 늘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우리 공직의 업무구조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참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는 불필요한 책임소재로 인해 조직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더 많아 보입니다.

농기계 교관들은 운전면허가 있으므로 급할 때 부탁을 하였지만 이 또한 3년1개월을 근무한 사업소 생활 내내 가능한 일이 아닌 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기 놀고 있는 차를 면허가 있으면 운전할 수 있는가 물었더니 그리된다 합니다. 그리하여 수원 비행장 인근에 신진자동차학원에 등록을 하고 필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공직 초임 당시 오도바이 면허시험에 낙방한 경험이 있으므로 1종 보통 운전면허 필기시험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코스와 주행연습을 하고 인천에 있는 면허시험장으로 출전했습니다.

지금은 안산, 용인, 의정부 3곳에 경기도경찰청이 운영하는 면허시험장이 있고 최근에는 지정 학원에서 면허시험을 대행하고 있습니다만 1982년 당시에는 경기도와 인천지역에 딱하나 인천 면허시험장이 있습니다.

새벽에 선수들이 모여서 봉고차를 타고 달리면서 아침으로 김밥을 먹고 8시50분경에 면허시험장에 도착하여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이어서 코스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마지막 관문은 주행시험입니다. 2단부터 4단까지 기어변속이 있고 비탈길에 멈췄다가 출발하기, 돌발에 대처하기, 방향지시등 켜기 등 난코스가 있습니다.

시험 중에 긴장한 나머지 4단 기어를 넣고 바르르 액설레이터를 밟으면서 클러치를 떼자 차는 출발하는데 그 힘이 연약하므로 다시 3단으로 갔다가 2단을 거쳐서 3단으로 나가서 마지막에 4단으로 정신없이 주행을 하였습니다.

 

경찰 시험관은 옆자리에 앉아서 농담을 던집니다. "이 양반은 4단으로 출발하고 마음대로 기어를 바꾸시는구먼." 아마도 출발해서 시동이 꺼지지 않으면 별 문제는 없었나 봅니다. 긴장을 하였지만 비탈길 정차 후 출발, 신호등 지키기, 방향지시등 처리 등을 어렵게 통과하였습니다.

요즘 면허시험장에서는 주행을 마치면 곧바로 합격 불합격이 방송으로 나옵니다만 당시에는 동승한 경찰관이 채점을 해서 넘기면 나중에 몰아서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린바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고입합격, 9급 공무원 합격, 전입시험 합격에 이어 인생에서 4번째 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60세이 이르도록 합격한 일은 기억나는 바가 없습니다.

 

일주일 후에 등기우편으로 면허증이 왔습니다. 지금은 신용카드 크기와 그 모양으로 면허증이 세련되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종이인쇄에 비닐커버를 한 면허증입니다. 국가면허를 받았다며 주변에 자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우선은 차가 없고 관용차량을 임의로 운전하기에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면허임에도 수개월을 무면허 시절로 보냈습니다.

어느 날, 선배 한분이 말씀하시기를 운전을 제대로 배우려면 일단은 덤벼야 한다며 그냥 운전대를 잡아보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병점 국도1호선까지 2km를 운행하기로 했습니다. 전방과 후방에 차량이 거의 없는 길이니 기어체인지만 잘하면 덜덜거리지 않고 차량은 앞으로 갔습니다.

 

사실 운전을 잘한다는 말은 기어체인지를 잘한다거나 핸들을 잘 돌린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운전을 잘하는 것은 그 지역 지리를 많이 알고 주차에 능숙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틱차량이라 해도 운전할 때 3단으로 가야지, 4단 기어를 넣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기어체인지를 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지금 가는 방향으로 막힘이 없는지 생각해야 운전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이 더 빠를 수 있다는 생각과 판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무실에서 병점까지 운전하고 조수석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잡아 국도 1호선으로 핸들을 잡고 진입하였습니다. 그 순간의 공포는 지금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뒤에서 오는 차는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뒷 편에서 빵빵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내 앞길을 개척하면 되는 것인데 초보 운전자는 뒷 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고가 나도 뒤에서 추돌하면 내 책임은 아주 적습니다. 앞차가 급정거했다 해도 내가 추돌하면 자신의 책임 비율이 아주 높은 것입니다.

매교동 3거리에서 '비보호좌회전'을 해야 경기은행으로 진입하는데 그 3차로를 건너가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우측으로 차를 대고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주행에서 용기를 내어 옆 사람의 코치를 받아 비보호 좌회전을 성공하고 경기은행 주차장에서 힘차게 싸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답니다.

日就月將(일취월장)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서 수원시내는 혼자서 운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운전을 나가서 영화동 집에 내리시라 하고 혼자서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와 나머지 업무를 처리한 후 다음날 아침에 차키를 넘겨드리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제 장거리 운전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서울로 강사님을 모셔드리는 차가 있으므로 동승하여 서울방면 운전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운행한 차량은 영국제 랜드로바입니다만 이번 차량은 휘발유차입니다. 잘 아시는 1993년 전후에 히트한 포니1입니다. 짚차보다 기어, 액설레이터, 브레이크가 예민하고 핸들이 작지만 부드럽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한 차량을 운전하면서 숙달을 하였지만 도청 새마을지도과 서무담당자로 발령 나면서 운전면허증은 1984년에 책상 서랍안으로 들어가 또다시 ‘장롱면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1년 가을에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집앞에서 부부가 두 아이를 안고 택시를 잡았는데 엄마가 택시를 타려고 가고 이어서 아빠가 아이를 안고 다가서자 택시는 스르르 도망을 갑니다.

 

두 아이 타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장거리는 아닐 것이라 판단을 하신듯 보입니다. 근처 병원까지 가면 기본요금 정도 나올 것입니다. 수차례 경험을 한 택시기사님이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원 가는데 어려움을 겪은 아내는 다음번에는 전봇대 전화번호를 걸어서 자가용 영업 차량을 불렀습니다. 아마도 택시요금의 2-3배 내야 할 것입니다만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하는 어미의 심정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비도 공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토요일 오후에 퇴근을 하니 집앞에 포니엑셀 중고차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4725번입니다. 스틱기어에 핸들은 뻐근합니다. 파워핸들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참 좋은 차입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저 모래시계에 나오는 각진 그렌저는 멋지지 않고 포니엑셀 4725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렌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워주지 않는데 4725 엑셀 승용차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우리 가족을 태워주니 큰 차보다 더 멋지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든 살림살이든 필요할 때 옆에 있어야 합니다.

 

굽은 소나무가 동네를 지키고 부족한 자식이 종신(부모가 돌아가실 때 옆을 지킴)한다고 했습니다. 삐까번쩍하는 서울의 큰 차량은 우리 가족을 태워주지 않습니다. 허름한 반트럭, 중고 엑셀 승용차가 급할때 병원까지 가고 처가방문에 동행합니다.

1996년에 크레도스 6085를 만납니다. 2016년 지난해에 떠나보내도록 20년을 함께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弔針文(조침문)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弔車文(조차문)이 있습니다. 6085를 떠나보내면서 그 심정을 적은 글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3월에 K5 53보06** 기아자동차 중급 차량을 맞이합니다. 차키가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키라 해서 주머니에 지니고만 있으면 차문이 열리고 시동이 걸린답니다.

파워핸들이라서 손만 얹고 있으면 차량이 가고 서며 원터치로 창문을 열고 왼발로 싸이드브레이크를 잡고 풀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핸들에 전기장판이 깔려있고 시트에도 뜨거운 온돌, 차가운 선풍기가 돌아가는 첨단 시설입니다.

 

크레도스는 1998년 동두천 근무할 당시 침수피해를 입은 이후에 에어콘이 고장나서 한여름에 차문을 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53보0632는 에어콘이 잘 나옵니다. 자동으로 하면 알아서 조정하고 수동으로 하면 춥다고 아내가 줄이자 합니다.

특히 연료양으로 얼마를 주행할 수 있는가를 늘 알려줍니다. 연료가 부족하면 주변의 주유소 위치를 알려주는 인공지능이 가동됩니다.

26년 동안 차량 3대를 만났습니다. 그 차들이 고맙습니다. 4725엑셀은 아이들 병원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처가에 갈 때 짐을 실어주고 명절에 시골길을 함께 했습니다. 6085년 20년을 함께하면서 6급 공무원에서 시작하여 5급 4급 3급 2급에 이르도록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리고 06** K5는 이제 1년 동안 함께 하면서 매주 남양주시청을 오가고 수원에서는 농산물시장을 같이 가서 열무를 사오고 알타리를 실어왔습니다. 어제는 농민마트에서 11만원어치를 싣고 집으로 왔습니다. 트렁크 뒷 편에 8초간 서있으면 퉁하고 열어줍니다.

최근에는 안산 사무실을 오가는데 지금길이 있어서 참으로 시원하게 소리없이 달려갑니다. 차량은 가족입니다.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입니다. 차량은 더 이상 쇠덩이 고무바퀴가 아니라 인공지능이고 알파고이고 생각하는 가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집안에 들이고 싶은데 아파트 설계는 1900년대 외국의 것을 빌려온 것이라서 차량은 늘 밖에 세워둡니다. 과학적으로 모든 주택에 차량이 들어올 수 있다면 소품 용품 대부분을 차량에 두고 꺼내 쓰고 외출할 때 차를 타면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불편없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러는 트럭을 개조해서 여행을 다니는 부부가 있습니다. 캠핑카를 보면 자동차와 인간의 깊은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와 인간이 공생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차량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현대에 불가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5년 내에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면허증이 필요없고 차안에서 음주가무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 합니다.

자동차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줍니다. 하지만 초보운전 당시의 그 아찔하고 힘들었던 기억은 늘 간직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소중함을 알고 위험성도 함께 인식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는 안 될 일이고 음주운전은 더더욱 근절해야 할 일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