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글을 쓰려하나 키보드가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붓으로 책을 집필하고 해방 전후에 잉크를 찍어 펜촉으로 원고지를 메워갔다고 하는데 요즘 작가들 중에는 키보드를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들어보면 아직도 만년필로 12,000장의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는 맛으로 글을 쓰시는 김홍신 작가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과학계가 조금 노력하시면 키보드를 이용하여 마구 생성되는 글과 문장을 빠르게 정리하시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눌러쓰는 글씨에서 오는 문장의 깊은 소고기 국물 같은 무게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키보드는 펜글씨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더 나가면 우리의 생각을 읽어 타자해 주는 첨단 기기와 스마트폰 어풀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혹시 작가님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이 들어있는데 이를 연도에 맞추고 주변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내어 놓으시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평소에 나기 보다는 키보드를 잡고 있으면 어느 정도 집중이 되고 승용차 한겨울 예열을 마친 후 부드러운 엔진소리를 내듯이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글을 쓰는데 집중하는 엔돌핀이 돌거나 홀몬이 생성되면서 뇌속의 여러 가지 기능과 성분이 하나의 글이라는 문장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날에는 글을 쓴 후에 다시 읽어보면 이런 생각조차 한 것 같지 않은데 공감되는 문장이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나의 까페에 내손으로 쓴 글인데 이런 마음먹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술을 먹은 것도 아닌 그날 저녁이나 석양이 서해바다 시화호를 건널 즈음에 참으로 앙증맞은 생각을 하고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이용하여 문장으로 완성한 것을 보면서 가끔은 타자를 잘 배운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고 내년 봄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이처럼 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풀리면 눈이 내리고 쌓여야 내년 봄 농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뉴스에 보니 미국에서는 6년 만에 폭설이 내려 직장에 출근을 못하는 등 어려움이 있지만 크게 보면 6년간의 가뭄을 극복하는 자연의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세상사가 모든 것이 모두에게 이익을 주지는 못하지만 양지의 이면에 음지가 있고 주식으로 돈을 버는 재벌이 있으면 깡통계좌를 날리는 개미도 있는 것이지요. 모든 이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이 계속되는 것만도 아니고 언젠가는 기쁘게 웃을 날이 온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사는 것입니다.

또는 풍선효과라고 해서 이 세상의 파이는 늘 같은 양이 나오고 그것을 나누는 과정이 경제라고 합니다. 저승의 주방은 한곳에서 반찬을 준비하는데 왼쪽으로 내보내는 지옥방의 식사는 10명 정원에 11그릇이 나오고 천당 방은 10명 정원에 9그릇이 나간다고 합니다. 늘 주방장이 헷갈려서 천당에 한 그릇 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옥에 사는 이들의 식사모습을 보면 더나온 한 그릇이 자신의 몫이라면서 밥그릇 싸움을 벌이다가 나머지 10그릇과 반찬을 바닥에 흘리므로 이리와 여우와 사자가 다 먹어버리고 지옥사람들은 야위어 간다 합니다.

반면 천당에서 밥을 받는데 한 그릇이 덜 나오므로 서로 자신은 배고프지 않다면서 옆 사람에게 서로 양보를 하니 十匙一飯(십시일반) 조금씩 덜어서 한 그릇을 식탁위에서 만들어내어 고르게 먹는다고 합니다.

더더욱 재미있는 모습은 지옥이나 천당이나 식탁에는 1.5m길이의 젓가락과 같은 크기의 숟가락이 놓여있다고 합니다. 지옥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식탁위에 업어지고 남은 밥과 반찬을 주워 먹으려 하나 자신의 입가에 가져오기에는 불가능하다 합니다.

 

그래서 옆 천당 방을 들어다보니 흰 수염이 멋진 어르신들이 식탁에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반찬을 집어 상대방에게 먹여준다고 합니다. 직장인들이 가끔 술 한잔 하다보면 천국주라는 것을 시도합니다. 러브샷이야 늘 팔 걸어 술 마시면서 1단계 2단계 3단계를 연호하지만 천국주는 술잔을 들어 상대방에게 먹여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술잔을 들어 상대의 입에 대고 마시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흘리면 다시금 한잔 더 받게 되는 참으로 어려운 술 마시기의 종착역입니다. 이때에도 상대방이 먹여주는 자신의 술은 그냥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오로지 내가 권하는 상대방이 편안히 흘리지 않고 마시는가에 집중하면서 잔을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천당에서는 긴 젓가락으로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음식, 반찬을 집어서 먹기 좋게 입안에 쏙 넣어 주는 것처럼 술잔도 상대방이 편하게 권하면 됩니다. 내가 집어서 먹으나 상대방이 먹여주나 몸에 들어와 영양소가 되고 힘이 되고 혈류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술은 과하면 안 될 일입니다.

 

옛날에 머리가 2개 달린 괴물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왼쪽머리가 잠든 사이에 오른쪽 머리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자 혼자서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왼쪽머리가 깨어나서 보니 오른쪽 머리의 입가에 음식자국이 남아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으면 왼쪽머리를 깨울 것이지 오른쪽머리 너 혼자 다 먹다니.

“고얀 것!!!”

그리하여 왼쪽머리가 길가에서 독초를 발견하고는 오른쪽 머리에 복수를 하겠다며 마구마구 뜯어 먹었습니다. 결국 ‘두 머리 한 몸’ 괴물은 독초로 인해 신음을 하며 쓰러졌고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두 머리 괴물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가 우리 조직 가정 회사 국가 어디에서나 투쟁이 벌어지고 있나봅니다. 정치도 경쟁하고 기업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고부갈등도 역시 두 머리가 마주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입니다.

 

공직에서 무두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서의 책임자, 즉 과장님이 출장 가셨거나 1박2일 워크숍을 가신 날을 무두일이라고 합니다. 無頭日(무두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날이 살맛나는 날입니다. 이날은 2번계장이 주무계장에게 6시 10분 퇴근을 제안합니다. 오늘 나가서 한잔 하자는 말입니다.

老婆心(노파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랜 경험, 다양한 상황을 겪으신 분으로서 혁신하지 않고 모험을 피하고 안전 제일주의 입니다. 그리고 늘 실패한 사례를 바탕으로 모든 일에 걱정을 하십니다.

그리하여 잘되고 있는데도 간부들은 "노파심에서 이야기 하는 것인데 물놀이 가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불조심해라", "차조심해라", "밤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이래서 노파심입니다만 그래도 참 중요한 일임을 공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 퇴직기념으로 네 식구가 군산에 왔습니다. 출발 할 때는 섬으로 가려 했는데 가족모두 사전 준비가 부족 하다는데 공감하고 군산으로 목적지를 변경 하였습니다.

 

200km를 달려와 유명한 자장면-짬뽕집에 줄을 서고 호떡집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침 07:00에 아들 직장에가 픽업하여 준비한 김밥과 과일을 차안에서 먹으며 달려왔습니다.

매콤하다는 자장면과 짬뽕 대기표 76번을 받고 50분 기다려 정오 1200시에 젓가락을 잡고 15분 만에 맛나게 먹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줄서는 이유는 맛, 멋, 많은 양, 저렴한 가격, 그리고 희소성이라 생각했습니다.

호떡도 맛있습니다. 7명이 계속 반죽을 밀어서 호떡을 구워내는데 맛있습니다. 재료가 좋은 것 이라 소개하는 안내문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추억의 철길은 아마도 1930년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양쪽에 늘어선 집을 가게로 삼아 소품을 팔고 교복을 빌려줍니다. 큰돈은 아니겠으나 직업현장이고 경제의 일부로 보입니다. 예산을 들이면 조금더 깔끔하게 꾸밀 수 있을 것이지만 보조조건을 맞추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점주들의 재정부담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게스트룸은 가옥을 개조한 것인데 2층 침대 3개가 있고 화장실이 딸린 통방입니다. 그리고 복층으로 다락방이 있습니다. 이정도면 15만원인데 10만원에 들었습니다. 4명을 받는 것이 경제적인가 봅니다. 손님이 안 들면 공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함바집 비 오는 날 달력에 동그라미 그리는 것을 "공친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공사일도 없고 다른 거래가 없으니 식사도 안하므로 함바집에서 아무 일 없다는 말입니다.

늘 일찍 깨는 공무원의 습관으로 3시에 기상하여 다락에 올라왔습니다. 수직사다리를 오르기 전에 물과 폰을 계단에 키 보다 높은 발판에 올리고 이불을 어깨에 감싸고 올라와서 다시 중간계단에 미리 올린 폰과 물을 집어올린 후 수평으로 설치된 문을 닫았습니다.

깜깜절벽 옥탑방에서 20분간 면벽을 한 후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이불을 반으로 접어 방석으로 삼고 절을 올리는데 움직임마다 뼈마디 외마디 소리치듯이 방바닥 나무판자가 아드득거립니다.

그리고 깜빡하여 다락방인 것을 잊고 몸을 높이 세우는 순간 머리가 천정에 충돌합니다. 천정은 피하거나 양보하는 설계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바로 아랫방 2층 침대 윗층에 딸이 잠자고 그 아래 칸에 아들이 코골고 그 옆 칸 침대 1층에 아내가 잠자고 있습니다. 125배가 요즘 절하기 기본인데 108배로 마감하고 나머지 17배는 가족이 잠에서 깬 이후에 올리고자 합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집에서 바닥에서 소리 지르지 아니하고 천정이 짓누르지 아니하는 여건에서 절하기를 게을러 했던 바른 반성하게 됩니다. 군산에서의 125배 절하기를 마치고 아직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부부가 밖으로 나가 식당을 찾았습니다.

아침 7시 군산시가지는 참으로 조용하기만 합니다.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기에 옛것을 많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저런 현장을 방문하면 볼 거리가 참으로 많습니다. 어제 다녀온 철도길이며 먹거리도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특히 1945년에 시작한 빵가게 '이성당'은 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갓 구워낸 빵을 받아 갑니다. 두 번 방문한 그 빵집 앞에는 사람들이 長蛇陣(장사진)입니다. 2개의 건물에서는 기성제품 빵을 팔고 있어서 수시로 드나드는 손님들이 많습니다만 가게 앞에서 장사진을 친 손님들을 1시간 2시간을 기다려 빵을 사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군산에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세 가지 입니다. 짬뽕 짜장면을 먹기 위해 기다린 곳은 지린성, 중동호떡, 그리고 제빵으로 유명한 이성당 입니다. 철도길에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도 빼곡한 사람들 틈새에서 사람을 피해가며 걸어야 하고 달고나 2,000원짜리를 받기 위해서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절 동국사에서 일본을 느끼고 일본식 주택에 들어서니 마치 일본에 온듯합니다. 오래된 건물이 이처럼 긴 세월 보존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건물과 명소들이 군산시내 일정지역, 3km반경에 다 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시에서 투자를 해서 골목길을 깔끔하게 정비했습니다. 넓은 골목길에 주차선이 그어졌는데도 양차로 교차하는 차량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빌딩 벽면을 장식한 100평은 됨직한 원고지 1매에 고은시인의 시가 적혀있습니다. [다릿집] 학교 가서 가만히 앉아 있거라. 그래야 배 안 꺼진다.[고은]

[간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찻집 광고입니다.

[연탄재]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거리에 벽면에 적혀있는 글에 정감이 갑니다.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낭만입니다. 건물주나 입주 시민들의 작은 정성이 느껴집니다. 스스로 낭만스럽게 꾸미고 있습니다.

한석규·심은하 출연,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 사진관이 그대로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사진관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새만금 뚝 방을 건너 멋진 교량 위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섬까지 연결되지 않아서 되돌아옵니다. 우리 가족처럼 새로운 곳을 보기 위해 달려온 차량들을 되돌려 보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일요일 오후에 근무 중이십니다.

이제 점심시간이 지났습니다. 전주에 가서 한정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오후 1시20분에 도착한 ‘마실밥상’입니다. 수제떡갈비정식 전문점인데 반찬도 맛있습니다.

 

네 식구가 숨을 멈추고 먹었습니다. 접시를 비우고 금방 뜸들여온 밥솥에 물을 부어 누룽지까지 싹 비웠습니다.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고 글을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SNS에 대한 감사로 음식 값 할일은 해 주십니다.

달리고 달려서 논산을 지나 평택을 건너 오산으로 들어 왔습니다. 오산에서 집으로 다니던 동탄을 달려 5시에 도착하니 온몸이 개운합니다. 이성당에서 사온 야채빵과 단팥빵과 그제 실업자 기념으로 담근 알타리 김치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제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여행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장거리 운전이라서 여러 차례 휴게소에 들러 쉬고 운동으로 몸을 풀어낸 후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대형 사고현장을 보면서 안전운전을 더더욱 강조합니다. 공직 40년 안전운전 한 것은 아내와 가족과 부모와 친지와 동료 공무원 여러분 덕택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십시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