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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2017. 10. 11에 경기도인재개발원 역랑개발지원과를 방문했습니다. 인재개발원이 3과였다가 2과로 축소되어서 과장님 인사발령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을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차 한 잔 하고 돌아왔습니다. 1991년4월24일에 6급으로 근무하고 5년만인 1996년4월3일에 5급 요원으로 다시 발령받은 저로서는 승진의 현장입니다.

 

 

이후에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07년에 1년간 지금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자리한 건물에 있었던 행정자치부 지방혁신인력개발원에서 1년 장기교육을 받았고 이후 연수중에 배운 골프연습을 위해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시청에 근무한 후 2012년에 이곳에서 조금 다른 장기교육 1년을 연수했습니다.

자료집 2권을 내고 국내여행, 해외여행, 그룹 활동 등 공직 후반에 보람찬 일들이 많았던 장기교육을 받은 곳이어서 늘 이곳에 오면 기분 좋은 추억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르르 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추억도 있지만 오셔서 보시는 분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이곳 경기도인재개발원 주변은 ‘가을전어’처럼 가을경치가 특히나 아름답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단풍의 초입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채색화를 보이는데 10월말 경 제대로 잔치를 벌이면 가을 나무들의 축제는 모든 이를 황홀경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우리가 금강산을 계절별로 달리 부르는 것처럼 인재개발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을의 모습으로만 찬양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으므로 저라도 금강산 4계절 호칭에 맞는 작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봄에는 金剛山(금강산), 여름에는 蓬萊山(봉래산), 가을에는 楓嶽山(풍악산), 그리고 겨울에는 皆骨山(개골산)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인재개발원의 사계절 풍경을 봄에는 廣敎園(광교원), 여름에는 修德園(수덕원), 가을에는 淸心園(청심원), 그리고 겨울에는 茶山園(다산원)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과거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당시에 간부 공무원들의 장기교육은 군사훈련에 버금가기에 나이 50대 후반의 당시로서는 어르신들을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스파르타’ 교육을 했습니다. 요즘 콘도미니엄 급의 숙소가 이곳 경기도인재개발원 뒤편에 건립되어서 하루 종일 강의와 실습에 참여한 군수, 시장을 하신 서기관 간부들이 개인 숙소에 들어가 야간학습을 하고 정시에 불 끄고 취침을 했을 것입니다.

 

이분들 중 일부는 다시 바라고 고대하는 현직에 복귀하여 군수, 시장, 국장을 하였고 일부 간부들은 퇴직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교육대상을 뽑을 때 다시 현직 복귀를 전제로 심사하였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그분들만의 애환이 지금도 그곳 수덕관, 청심관 인근 이곳저곳에 뿌려져서 철지난 아픔으로 녹슬고 있겠습니다.

그래서 수덕원과 청심원이라는 이름을 지어본 것이고 봄 이름 ‘광교원’은 금강산처럼 인재개발원이 광교산 산기슭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으니 작명한 것입니다.

 

다산원은 교육을 받는 모든 공무원들이 다산 정약용의 牧民心書(목민심서)를 따르고, 겨울에 이르러 천자문에 나오는 ‘秋收冬藏(추수동장)’처럼 그동안 연마한 지식을 저장하여 공직발전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다산은 정조의 부름을 받아 이곳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였습니다. 擧重機(거중기)를 이용한 것은 물론 공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이름과 급여, 작업일지 등을 정확히 관리해서 훗날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다산이 태어나고 출퇴근하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여생을 마감하시면서 저술에 힘쓰신 남양주시에서 공직자로 근무한 것 또한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인재개발원 내외의 風光(풍광)을 민간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금강산 4계절의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 건물의 1층과 반 지하실 강당을 빌려서 신규 공무원 교육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4층 건물 전체를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쓰고 있으니 참으로 폼 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건물이 초기부터 당시 내무부 예산으로 지어진 것이고 이후 보수 보강을 위해 정부예산 따기가 어려운 당시로서 경기도에 교부세를 보내고 이 돈으로 공사를 하다 보니 계약은 경기도교육원(당시명칭)이 하고 감독은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당시명칭)이 하더라는 조금 모호한 일도 발생했다 합니다. 권한은 연수원에서 발휘하고 책임은 교육원 담당자에게 넘어오니 이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했습니다.

교육생을 위한 구내식당도 식당 운영단이 있는데 연수원 직원이 한 직급 높은 경기도 사무관을 지휘했다 해서 경기도교육원에 가는 것은 다수 공무원들의 희망사항이기는 하겠으나 보직에 따라서는 연수원의 ‘선생님’과 일해야 하는 경우 힘들다 하였습니다. 그 당시부터 이후 최근까지 우리는 행정안전부 주무관(6급까지)을 ‘선생님’이라 호칭했습니다.

 

아름다운 인재개발원에서 공무원으로서 公務員證(공무원증)을 속주머니에 넣고 자긍심은 가슴에 담고서 교육을 받으시는 젊은 우리의 공무원들에게 拍手(박수)를 보냅니다.

선배들이 이곳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공직과 인생과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실천하고 이룩했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가 자신이 꿈꾸는 것 이상의 成果(성과)에 이르시기를 所望(소망)합니다.

 

### 경기도 인재개발원 신규반 160명을 모시고 공직경험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공직 선배들이 강의를 하셨는데 공직을 떠난 지 10개월이 되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기에 한 달 반 동안 자료를 준비하여 강의시작 1시간반전에 미리 강의실에 도착하여 목을 가다듬고 이리저리 가을의 단풍나무 사이를 돌면서 마음을 정돈한 후에 3시55분 211강의실에 다시 당도하였습니다.

 

160명이라는 인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는 시그널인가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총 105분(5분 초과)동안 메모를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목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00분 동안 혼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군요.

준비한 PPT보다는 서두에 하고 싶은 말들을 메모를 중심으로 이어간 것은 잘한 전략으로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화면에 매이지 않고 메모를 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조금은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자평합니다. 그리고 20분을 지난 후에 화면을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공직의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서두에 국립 현충원에 다녀왔고 공직자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자는 대목에서는 공감을 얻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교육 3주의 첫날 첫 강의가 어렵습니다. 서로 옆자리 동료 공직자들도 서먹한데 웬 강사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와서 이런저런 옛날 자료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가는데 도대체 40년전 이야기가 지금 평균 29세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별이 5개 전략으로 '여우와 물개'이야기로 조금 미소를 끌어냈습니다. 여우가 동해바다를 향해 '아우~~'하니 바닷가 검은 돌 위에서 쉬고 있던 물개들이 '형헝~헝형'했다는 대목과 워드프로세서 파일을 저장하면 '새 이름으로 저장?'이라 물을 때마다 꿩, 참새, 촉새, 기러기 등 주변의 ‘새(鳥) 이름’으로 파일명을 저장하였으므로 50개에 이르자 더 이상 아는 새가 없어서 비서관에게 어려운 새의 이름을 물었다는 대목에서는 7명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결국 신규공무원, 강의 첫날이라는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혼자서 자가 발전하는 소리만 무성한 실속없는 말잔치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강의를 끝내고 9급신규 교육생들과의 소통을 더 이어가기 위해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과정담당 공무원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의정부시청에서 온 공무원들 5명이 맨 뒷 편에 서있고 그래서 그 다음에 서서 10분정도 식사 줄이 빨려들어 가기를 기다리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3주동안 교육을 왔으니 같은 시의 공무원과는 주말에 회식을 3번 하시고 교육 중에는 다른 시군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타산지석이고 온고이지신입니다. 타산지석은 다른 시군의 직원들이 일하는 내용이나 살아가는 공무원의 삶에 대하여 공감하는 기회를 가지라는 말이고 온고이지신은 옛날 공무원의 이야기속에 얻을 것이 있으면 챙겨가라는 뜻으로 던진 말입니다. 교육생들은 어제저녁 목민관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공직관 '목민심서'를 읽은 후에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만들어 배포한 자료 속에 목민심서가 들어있습니다. 그 책속의 후반부 '해관'이라는 공직을 떠나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이 있었음을 이야기하였으니 이제 공직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결례일지 모르겠으나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행정의 업무이고 내용이라면 30년 공직도 마무리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마감도 있음을 오늘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두는 것도 손해는 아닐 것이라 자부하였기에 그리 말한 것입니다.

 

초등시절 1967년경에 서기 2000년이 되면 내 나이 42세이고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곤 하였는데 그 해에는 결혼한지 15년, 아이들은 효원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직을 마감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선배공무원이 되어서 새내기 공직자들 앞에서 지나간 세월의 스토리를 반추하고 있습니다. 秋收冬藏(추수동장), 가을이 되니 거두어 드리고 이제 저장을 하는 겨울을 맞이합니다.

 

### 일본 동경에 가서 저렴한 횟집에서 6명이 3명 씩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데 제 자리에서 테이블 건너편 2인석에 연인인 듯 남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랫동안 만났거나 최근에 나이 들어 급하게 만나 결혼을 진행해야 하는 사이인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절차상 청혼절차가 필요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자가 무엇인가 음식을 주문한 후에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검은 상자를 얼어 목걸이를 꺼냅니다. 남자가 꺼낸 목걸이는 4m밖에서도 줄이 보일 정도로 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든 남자는 쉽게 목걸이를 걸지 못합니다. 남자 손이 미세하게 떨고 있고 목걸이의 작은 구멍에 고리를 걸기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벌벌 떠는 손으로 목걸이를 여자의 목에 걸지 못하고 툭~~~하고 떨어트렸습니다. 아이고~~~아이쿠~~~

아이고!!! 저 목걸이가 바닥에 떨어지면 청혼도 사랑도 다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남자가 당황스러워하는데 여자는 약간 쓴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보통 젊은 남녀라면 목걸이를 찾느라 東奔西走(동분서주) 할 것인데 말입니다. 여자가 더 난리를 칠 것인데 말입니다. 이 남녀는 좀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잠시 후, 썩소스런 표정을 한 여자는 자신의 앞가슴에 손을 넣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긴 줄의 목걸이를 구해 냅니다. 아이고! 다행입니다. 그 목걸이는 여자의 가슴속으로 슬라이딩 한 것입니다. 차가운 금속이 예민한 가슴에 들어왔으니 가장 먼저 그 감을 알았을 여자입니다만 그 느낌은 제가 잘 모르지만 차갑고 따스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나 봅니다.

순간 급한 마음에 저 남자의 손이 가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프로포즈는 물거품이 되어 유리잔이 알바닥에 떨어지듯 박살나는 것은 아닐까 건너편 식탁에서 저 혼자서 큰 걱정을 했답니다.

하지만 여자의 가슴에서 구출해온 목걸이를 다시 받아든 남자는 2차 시도에서도 실패, 실격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역도선수가 마지막 도전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목걸이 구멍 걸기는 여기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손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목걸이를 빼앗듯 당겨 목 앞에서 베테랑 형사가 범인 수갑 채우듯 철커덕 채운 후 슥슥 목 뒤로 돌린 후 목걸이 보석을 목 앞 옷 앞에 내어보였습니다.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을 털고 더 떨면서 180도를 돌아 제 자리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의자위에 놓인 가방을 히프로 한번 밟은 후 의자 뒤로 밀어내고 등을 기대지도 못한 채 여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千辛萬苦(천신만고), 左衝右突(좌충우돌) 끝에 목걸이 걸기에 성공한 초보 연인 남녀는 이내 종업원이 가져온 초밥과 김밥을 먹으며 멋쩍은 눈빛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40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노총각을 면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애잔하지만 다른 예비 신랑들도 집에서 어머니 목, 누나의 목, 아니면 강아지 목이라도 빌려서 목걸이 걸기 사전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여자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은 마음의 고삐를 연결하여 내 주변을 맴돌게 하는 나름의 영토를 확보하는 일이니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