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 글쓰기의 양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40대 나이에는 그냥 키보드를 잡으면 되든 말든 활자의 조합이 이어졌습니다만 얼마 전 부터인가 그냥 백지상태의 화면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도 없고 하늘의 흰 구름도 보이지 않으며 가을 깊은 산속 형형색색 단풍잎도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그것이 이 세상에 함부로 글을 내놓는 것은 송구한 일이라는 자각에서 그리된 것이라면 조금은 다행스럽다 하겠으니 젊은 치매 초기증상이라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얼마전 TV에서 본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중에 머리가 깨기 시작하고 응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을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발전적 상황이라면 반길 일이겠으나 그 반대로 매일 하루를 지내면 수만개의 뇌세포가 사라지고 다시 일부는 보충되지만 늘 부족한 상황이므로 어제 써둔 글에 오늘아침, 감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자기만족의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합니다.

 

2만장 원고지를 만년필로 채웠다는 작가 김홍신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젊은 시절의 경험으로 '인간시장'이라는 책으로 100만권 셀러가 되신 분입니다. 이분 김 작가님이 키보드를 쓰신다면 책은 더 자주 더 많이 아주 두껍게 나올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연필로 쓰는 것보다 키보드가 빠르니 하는 말입니다.

한때는 생각이 키보드를 앞서간듯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손가락이 움직일 수 있는데도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므로 키보드의 손가락들이 하나둘 숫자를 세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빨리 생각만 하면 글로 나갈 수 있는데 생각이 버퍼링이요 고속도로 정체이며 출근길 강남대로처럼 뻐근합니다. 여의도 앞길이 막히는 것으로 보아 국회가 열리나 봅니다.

 

그래서 어떤 스토리를 창조해 내기 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글로 적어보는 전기 작가나 인생 회고록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경험에 조금 더 문장을 첨가하면 작은 창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인간시장이나 외국작가의 성공사례는 그냥 감상하는 것으로 족한 일입니다.

다만 내 작은 생각과 좁은 가슴속에 들어있는 잊혀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경험과 그것을 바탕으로 일궈내는 작은 이야기 마당을 여기저기에 남겨두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요즘 자신에게 바라는 작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 아마도 기억 속에서는 가장 먼 곳 명왕성 자리에 위치한 추억이 하나 있으니 어린 시절 불장난 사건입니다. 당시 5~6세 아이들은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조밀하게 케어하는 시기도 아니므로 그냥 아침 먹으면 나가놀고 놀다가 배고프면 집에 와서 밥 먹고 또 나가서 놀았습니다.

 

1963년 당시 우리 동네에는 또래의 5~6명 아이들은 리더도 없이 총무도 없고 시간표도 따로 있는 것 아닌데 매일매일 다른 놀이를 하면서 놀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따사로운 봄날 오전의 일입니다. 대략 10시경에 아이들은 동네 논 뚝방에서 놀다가 누군가가 시작한 쥐불놀이에 동참합니다. 쥐불이란 이른 봄날에 논두렁과 밭두렁의 마른 풀을 태워서 지난해 가을 풀밭에 숨어든 해충을 없애는 작업을 말합니다.

늦은 가을에 가로수는 인디언 추장처럼 볏짚으로 만든 미니스커트를 몸둥이 중간에 입히는 창피함을 당하는데 이 미니스커트를 '잠복소'라 합니다.

 

바닥에서 살던 해충들이 월동을 하기 위해 나무위로 올라갈 것이므로 나무 허리목에 엉성하게 짚을 매달아 주면 벌레들이 겨울나기에 적합한 장소라 판단하고 그 속에 자리를 잡고 고치를 짓거나 겨우살이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른 봄날에 가로수 허리를 미니스커트처럼 감고 있는 볏짚을 뜯어내어 불태우는 것입니다. 벌레도 함께 태우는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오래전부터 우리민속의 하나로 이어져온 쥐불놀이 또한 해충을 죽이고 잡목을 제거하여 봄농사를 편하게 해주는 효과를 거양하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연례행사입니다. 이 쥐불놀이에서 시작된 불씨를 가지고 우리 동네 5~6세 아이들이 불장난을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씨를 받아 논두렁에 불을 댕기기 시작하여 활활 타오르는 정도에 따라 승패를 가늠하고는 이내 다음 논두렁으로 시합장을 이동하여 서서이 우리집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논뚝까지 불씨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바로 아래 논에는 지난해 논농사에서 나온 부산물인 볏집이 집채만큼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러다가 저 집가리에 불이 옮겨붙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들고있던 막대기로 불을 끄려 합니다.

하지만 봄날 아지랭이처럼 바짝 마른 풀과 지푸라기에 옮겨붙기 시작한 불길은 삽시간에, 정말로 일순간에 거대한 집채덩이에 와락하고 달라붙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슈퍼맨처럼 나타난 아버지가 불을 끄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놀란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뒷동산으로 줄다름질쳐 도망갔습니다. 일단은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피하고 싶었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 사건현장을 바라보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잠시 후에는 흰색 뭉게구름처럼 연기가 올라옵니다.

불이란 초기에는 검은 연기를 내다가 나중에는 흰 구름을 생성합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는데 이를 콘클라베(conclave/열쇠로 잠근다)라 합니다.

 

교황선거 참석 추기경의 2/3이상의 표를 얻어야 교황이 탄생하는데 투표가 끝난 후 검은 연기는 미결, 흰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정말로 아이들의 불장난 결과도 처음에는 검은 연기가 나더니 나중에는 흰 연기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심도 굶은 채 산기슭에서 하루를 기다려 컴컴한 저녁에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어른들은 5~6세 아이들의 불장난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시고 확증하신 사건이고 아이들이 점심에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우리들의 범행임을 집안 식구 모두가 다 아시는 바였습니다.

돌아와 보니 정말로 볏짚 10단이 남지 않았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불을 끄려 노력했지만 불가능하였고 결국 그해에는 지붕을 수선하지 못했습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짚, 가마니, 새끼 등 짚으로 만드는 모든 재료를 외부에서 구매했다고 합니다.

일순간의 불장난이 초래한 엄청난 결과를 바탕으로 이후에는 정말로 불의 무서움을 알고 늘 주의하고 긴장하였습니다. 지금도 가족이 집을 나설 때는 가스불이 잠겼는지, 다른 전열기는 이상 없는가를 점검하곤 합니다. 물불 안 가리고 발생하는 재난을 예방하는 길은 늘 주의하고 신경 쓰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고 꺼진 불도 다시 보아야 합니다만 요즘에는 전열기와 가스 불, 그리고 전기로 쓰는 인덕션을 고양이나 강아지가 켤 수도 있다니 주부들께서는 반드시 전원을 차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내리고 마음을 내리고 자신감을 내리고 모든 것을 내리면 오히려 머리와 가슴이 가벼워지니 키가 커지고 어깨가 펴지고 허리가 꼿꼿해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면서 최근에 그리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머리에 올린 것도 별로 없고 가슴에 품은 무게감도 별로 적은 듯 생각을 합니다만 그래도 무대에 올라서서 보니 내릴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선은 지난날의 일들을 내렸습니다. 그간의 명함은 앨범 속 비닐 커버에서 숨죽이는 작은 종이 조각이었습니다. 그 앨범 다음페이지의 행사 참석 사진도 역시 지난날의 수학여행 사진처럼 서서히 벌써 색상이 바래고 있습니다. 더 색이 변하기 전에 새 앨범에 담아 더 깊은 장롱 속에 면허증과 함께 넣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을 내려 보았습니다. 이제 민간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의 직위가 뭐 대단한 것 아닌데도 무슨 규제와 제약이 참으로 많아서 걸어도 버스를 타도 전철에 올라도 술잔을 잡아도 늘 불편한 갓끈이었습니다.

절영회 고사에 나오는 투구끈처럼 끊어 버리고 싶은 상황이 여러번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라는 엄청난 에너지에 밀려서 자연적으로 내려놓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불쑥 내려놓아지는 줄을 알았더라면 전에 미리미리 내릴 것을 그랬습니다.

주변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내려놓을 것이 많습니다. 그냥 지난날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전에 처음 만난 30년 전의 그날에서 불쑥 오늘로 시간여행을 한 듯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만난 친구로 지내면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하면 더더욱 친밀함이 돈독해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정도 내려놓기를 생각한 것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파일을 저장합니다. 전에 참 좋다고 자평할 만한 글을 썼는데 인터넷상에서 훅~날아가 버린 일이 있습니다.

정말로 놓친 고기처럼 참 잘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더더욱 아까웠습니다. 이곳 사이버 공간의 빈 여백은 알수 없는 우주공간과도 같습니다. 저장을 하고 입력을 해도 해도 공간이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다음포털 사이트에 돈 100원도 내지 않았는데 이 큰 창고, 정보의 공간을 제공해 주시니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글을 올려도 다음에서는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많은 정보의 하나로 존재할 뿐입니다.

 

### 우리는 늘 자리에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극이나 조선시대의 드라마에서 보면 내당마님이 앉아있는 안방에 사랑방 거주하시는 대감마님이 들어오시면 내당마님의 자리를 내주십니다. 어머니 자리에 아버지가 앉고 어머니는 내려앉아서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래서 대감마님이 자주 들르지는 못하시겠습니다.

행사장에 가보면 늘 행사에 참가하시는 시민, 군민, 도민보다 본부석 자리배치가 고민입니다. 시의장과 도의원, 국회의원과 시장군수의 서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합니다. 그래서 의자를 들고 밀당을 하거나 네임택을 여기에서 저리로 옮기고 뒷줄 중앙에서 앞줄 싸이드로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보좌관, 비서관, 수행공무원들의 고민이 끝이 없습니다. 그냥 도착순으로 앉으시면 참으로 편할 것 같습니다.

도청에서 열린 산하기관장 참석 행사에 가보니 부지사님 맞은편에 규모가 큰 임직원 숫자가 많은 기관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참석자를 소개하는데 좌우, 대각선, 건너편 등 마치 핸드폰 비밀해제 점선처럼 불규칙적입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도 산하기관 서열이 있다고 합니다. 대충 들어다보니 산하기관 순서는 아마도 임직원 숫자인듯 보입니다.

과거 임창열 도지사님께서 중앙정부에 대한 수도권 규제문제를 풀어야 하고, 특히 행정안전부 주최 시도지사 회의시에 경기도지사가 울산광역시장 다음에 자리하는 것에 대한 해소책으로 시도 순서를 인구수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경기도가 먼저 시군순서를 인구순으로 한 바 있습니다. 행정자치부는 지금까지도 광역시도 순서는 특별시, 광역시, 도의 순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는 인구수에 의한 시군 순서를 정기적으로 수정하여 운영하므로 인구가 늘어나는 남양주시는 순서 조정 때마다 한 두칸 올라가고 과거 큰 도시였던 부천, 안양시는 한 두 칸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더 있습니다. 저녁에 회식을 하러 가면 과장님이 가운데 앉으시고 맞은편에 1번 팀장, 왼쪽에 2번, 오른쪽에 3번, 대각선에 4번 팀장이 자리합니다. 그 다음번에는 1차석, 2차석이 서열대로 배치됩니다.

좀 늦는 3차석 자리를 비워두는 치열함도 보입니다. 결국 중간에는 7급 30대가, 양쪽 날개에는 20대 8,9급이 앉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회식장 중앙에서는 50대 5명이 앉아서 삼겹살 굽고 소주잔을 돌리고 있고 그 옆에서는 40대 6명이 당구장 이야기 하고 양 싸이드에서는 30대 8명이 커피가 맛있는 어느 백화점 세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명중 7명이 핸드폰을 보거나 통화하거나 핸드폰을 숟가락 삼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에 포크와 숟가락을 장착해 주면 참으로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회식장 좌석 배치를 위해서 저는 '사다리타기'방식을 활용했습니다. 참석자가 8명이면 8인용 사다리를 타서 결정되는 자리에 앉으시도록 하니 불만도 없고 오히려 재미있다 하십니다.

오늘의 운세가 이 자리이구나 하면서 행복해 하십니다. 하지만 저녁 소주를 시작하면 결국 5잔부터는 제자리도 젓가락도, 자신도 모두를 잃어버립니다.

어느 날 점심에 펄펄 끓는 해장국을 먹으러 갑니다. 종업원이 뜨거운 해장국 4그릇을 가져와서 첫 번 자리에 놓기 위해 출발을 하는 순간 과 서무는 반대편에 자리한 과장님에게 드리라고 합니다. 종업원은 펄펄 뜨거운 해장국 그릇을 들고 가다가 급하게 U-턴을 해서 과장님 자리에 놓아줍니다.

위기일발입니다. 쏫을 뻔 합니다. 꼭 그리해야 하는 것인지요. 뜨거운 해장국을 다른 직원보다 과장님이 10초 빨리 받아서 행복해지고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과장님의 권위가 살아나는 것인지요?

기관장은 늘 바쁘게 행사장에 가십니다. 행사를 마치면 내빈에게 먼저 식사를 대접합니다. 뒤늦게 뜨거운 음식을 받아 식사를 하게 되는 수행원들은 언제 먹고 차량 준비하여 다음 행사장으로 가겠는지요.

반대로 수행원에게 뜨거운 음식 먼저 먹게 하고 기관장님은 나중에 받아 천천히 드시고 나오시면 여유롭게 의전도 차리고 이동할 것 같은데요. 정 바쁘시면 기관장님이 점심을 굶으시면 되는 것을요.

행사장 의전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이 있음을 첨언합니다. 도의원님, 시의원님의 사진이 인쇄된 자료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서대로 행사장에서 소개하면 의정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의원이 16명이지만 행사장에는 3분만이 오실 수 있습니다. 그 세분 의원들은 1~16명중 자신들의 6, 9, 13으로서 스스로의 서열을 아십니다. 사회자는 반드시 그 순서에 맞춰서 소개를 해야 합니다.

의원님을 소개할 때 3명 의원님들은 순서를 알기에 일어서서 손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1번을 소개해야 할 순서에 3번을 2번 소개할 순서에 1번을 소개하면 그 사회자는 실패한 것입니다.

의원님 마음속에 그 행사부서, 담당과장, 사회자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자가 그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공은 결례라는 말과 함께 의전은 의전을 받는 분의 마음에 들어야 성공입니다.

의전의 지름길은 없지만 전체의 흐름을 읽으면서 차분히 순로를 따르고 순리에 맞게 진행하면 정답입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고도 먹을 것이 없다는 주부의 말씀은 의전에서 벗어납니다. 영국의 가정 초대 시에는 스테이크 소스가 참 맛있다는 인사말을 해야 하는데 미국산 A1소스를 찾으면 낭패를 봅니다. 서로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격에 맞는 의전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기도청의 부시장 부군수 회의시 대리 참석한 실장, 국장을 좌석 말미에 배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해당 시군의 부시장이 올 자리에 실장이나 국장이 대신 참석한 것이니 해당 시군의 순서에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이 의전에 맞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청과 군청을 대표해서, 부시장을 대리해서 온 것이니 말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의전이 '착한 의전', '꽉 차고 알찬 행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 가을을 타는 듯 요즘에 목이 타고 손이 저린 듯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모양새 입니다. 시험보기 직전에 좌불안석,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과 같이 마음의 정함이 없는 듯 붕 떠서 돌아다니는 정서의 문제도 있어 보이고 그냥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는데 불편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가을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지인의 교통사고 소식에 화들짝 놀라 가보니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진료과정의 마취 때문인 듯 보입니다만 빨리 잠에서 깨어 주변을 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이 주변에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삶이 급할 때 마지막 보루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을 나와 상가로 들어서니 조금 전 상황은 전혀 아니고 젊은이들의 눈빛이 탱글생글(생글탱글) 합니다. 저녁을 먹기보다는 술을 마시고 안주를 청하기 위해 달리는 발길이 급하고 10명이 넘는 그룹이 원하는 식당을 찾는 소리가 마치 군사들의 열병식과도 같습니다.

가을은 이렇게 젊은이들의 영 파워로 이어지려 합니다. 더구나 이곳은 수원의 중심 삼성 앞 중심상가 입니다. 삼성과 협력사들이 하루 근무를 마치고 10일 연휴의 이틀전야를 만난 것입니다. 초저녁의 술상에 이어 일부는 귀가하고 남은 전사들이 맥주집에서 이 세상 어려운 일들은 우리만 감당하고 있다면서 밤을 깊이 파고 들면서 대화를 이어갈 것입니다.

팔달문 인근을 돌던 택시들이 이곳 중심상가로 모여들면 줄지어 기다리던 젊은이들은 집으로, 다음 4차 주점으로 택시를 타고 내달려 갈 것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얼마의 정열을 받아내야 새벽이 올까요. 아마도 이 밤은 청춘들의 정기를 받아 밤을 불러오고 새벽을 찾아 내는가 봅니다.

가로등이 삭아 회색이 될 때까지, 하늘의 별들이 지처 잠이 들고 초승달 마져 삭아 기울어질 새벽 4시 반 즈음 경에야 젊은이들의 축제는 마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8시부터 시작되는 직장에서의 무한경쟁으로 인생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젊은이들에게 휴식을 제안합니다. 한 달에 하루만은 날을 잡아서 좋은 책을 들고 방콕하면서 하루를 보내자는 제안입니다. 오로지 나 혼자 만의 시간을 나 혼자 즐기면서 새로운 에너지원을 축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청춘뿐 아니라 장년도 노년의 어르신들도 작은 휴식과 여유를 통해 나 자신의 정신적 공간을 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 석모도에 가을 부르는 바람이 분다

새벽 죽림틈새 여치와 쓰르라미가

선잠 깨어나 칭얼대는 아이처럼

쓰르람 찍찍 날개를 비벼 여명 명가

밝음이 태양보다 더 넓은

보름달 아래로 내달리는 가을바람에

가슴 멍울져 텅빈 들판 허수아비 얼굴

그 볼을 스치고 가는 세월의 편린들

잠시 멈춰보지도 않는 철새들의 V자 행렬

이 새벽도 나그네에게는 어깨 질펀한 노동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것 같던

저 작은 문틈새로 가을이 스며들어

섬돌과 숲과 나무사이로

붉은 단풍이 병풍처럼 서있네

 

### 중추절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점심을 먹은 후의 귀가 길입니다. 석모대교를 건너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차가 많이 밀리기에 구경도 하겠다는 생각에 반대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이리저리 방황을 하면서 가을이 무르익은 강화도 본섬의 경치를 玩賞(완상=즐겨 구경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회하여 도착한 곳이 서포리 선착장인데 좌회전해야 하는 사거리에서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직진방향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전혀 모르는 이와 전생에 인연이 없을 듯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나 봅니다.

직진하는 바에는 김포시 방면으로 가면 오히려 교통체증이 덜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데 역시나 네비양이 좌회전을 명하므로 가다보니 이 길이 대략 강화읍 소재지 방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운명의 4인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젊은 부부 2인이 그냥 잠시 제집에서 큰집에 마실 가는듯한 행장이기에 지나쳤는데 50m 거리에 60대와 10대 조손이 걸어가므로 차를 멈추고 어디까지 가시는지 태워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차는 좁은 길에 외통수로 정차했는데 차문을 열어 잡고는 뒤편 젊은 부부를 부릅니다. 아들과 며느리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4명을 차안에 가득 태우고 건넛마을 2km정도 가는 줄 생각하면서 찬찬히 차를 몰았습니다. 전에 들은바 모르는 이를 태웠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온통 다 책임을 져야하고 보험에서는 전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부득이하게 태워야 하는 경우에는 ‘교통사고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 사고가 나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태운다’고 말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세상 참 살기 어렵게 변하고 있습니다. 나그네가 냉수 한 그릇 얻어먹기 어려워서 패트병에 생수를 들고 다니는 나그네와 여행객을 보아도 역시 안타깝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평소에도 느린 차량 운행이 더더욱 소심해지고 차분합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승객들이 뻘쭘할까 생각이 들기에 한분한분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앞좌석에 앉은 어머니가 대변인이십니다.

뒷좌석의 아들은 좋은 말만 하고 그 아내, 즉 앞좌석 아주머니의 며느리는 말을 삼가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모자가 담당하는데 슬쩍 던진 불교 이야기에 동네에 있는 새로 지은 사찰이야기를 장황하게 이어가십니다.

건너편 마을쯤에 내리실 것으로 생각하고 하차지점을 말씀하시라 하니 인천에 사시는데 광역버스를 타려 한다고 하십니다. 그럼 강화터미널까지 모시면 되겠습니다.

순간 김포 버스터미널을 생각했지만 한 번도 가본바 없으므로 전에 한번 어머니 시장 보러 오신 날 들러서 모시고 석모도 집에 들어갔거니와 평소에도 늘 스쳐 지나가는 강화터미널까지 모시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운행거리가 길어졌으니 대화의 꼬리도 늘려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 살아온 이야기, 책을 써본 스토리, 그리고 108배를 통해 얻는 참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의 레벌업 되었습니다. 어제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 앞에서 무려 540번(108배*5) 절을 하였으므로 오늘 네 분의 좋은 인연을 만나 동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주지스님의 설법 수준이겠습니다. 모든 만남과 함께 함을 불가의 인연으로 풀어내는 화법이 세속에서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니 말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이런 말을 하여도 되는 것인가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만 다시 보면 전혀 예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분들과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운명이고 화두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드디어 강화읍 버스터미널에 내려드리고 편안한 여행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작별했습니다. 운전자 바로 뒤에 앉아서 나의 체육복 상의를 깔고 앉아있던 15살 정도, 중학교 3학년으로 짐작되는 똘똘하게 생긴 손자에게 그 쪽문은 위험하니 잠시 기다려 차례로 내리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차문을 닫고 차를 운전하여 김포방면으로 향할 즈음부터 그 15살 중학생을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오늘 나의 차 태워주기가 저 학생의 마음속에 나라를 위한 봉사의 정신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의 이 작은 물결이 15살 중학생의 마음속에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장관의 꿈이 키워지기를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15살 때 동네 아저씨와 택시를 타고 읍내에서 집까지 왔습니다. 동네에 아프신 분이 있어서 병원에 모시기 위해 수원까지 나가서 택시를 대절하여 시골로 가는 큰 돈 들어가는 운행 중이었는데 조금 늦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택시를 탄 동네 아저씨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동네까지의 중간지점에서 우리 동네 최 연장자이신 심응섭 할아버지를 만났고 청년은 기사님의 양해를 얻어 심 할아버지를 태워 동네 집 앞에 내려드렸습니다. 당시 차를 타고 달리면서 내가 훗날에 차를 운전하게 되거나 자가용을 타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을 반드시 태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차를 태워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3년 12월 말 아주 추운 날에 우리부서 송년 회식에서 술 한잔 하고 선배를 집으로 모신다는 것이 오히려 취해서 길을 잃고 허둥대다가 길가에 쓰러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두 사람을 젊은 자가용 청년이 태워서 집까지 배달해(?)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속 이강석의 주민등록증의 주소지로 가서 밤 12시에 5층짜리 연금공단 아파트 주민 아홉집을 모두 깨웠고 시골 선배형이 저와 선배를 4층 방으로 올려 보냈다고 합니다. 3층 사모님이 자가용 차번호를 기억했다가 잊었다고 하십니다. 주취, 만취된 두 사람을 배달한 청년에게 이 사람이 정신 차리면 예를 갖춰야 하니 연락처를 달라 했지만 그냥 ‘辭讓(사양)’하셨다고 합니다.

이후에 동두천시청 근무시에 길바닥에 누워 자는 피투성이 청년을 씻겨서 살펴보니 어제저녁 무전취식으로 인해 폭행을 당한 듯 피를 흘린 상태로 밤새 길에서 자고 아침에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 또한 나에게 지난날의 은혜를 대신 갚으라는 이른바 ‘내리 사랑’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차비를 주어 보냈습니다.

한달 후 의정부 경찰서에서 전화를 걸어와 가보니 이 청년이 또다시 무전취식이라 보증금을 내고 인후보증을 서주어 빼낸 후에 차비를 주어 집으로 보낸바 더 이상 연락은 없습니다. 두 번이면 조금은 깊은 인연을 마감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양주시 남면에 거주하는 목부 아저씨를 구해서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가는 길에 목이 말라 생수를 사러 가자 자신은 “환타! 환타!”하면서 음료수를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동행한 사무장이 크게 웃었고 이후에도 만나면 그날을 회상하며 또 한번 함께 미소짓고 있습니다.

어느 날 민원실에 들어온 예비군 복장의 아저씨가 ‘우리 동네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동사무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질책을 하시므로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는가 물으니 라면 한 상자를 달라 하십니다. 가게에 동행하여 라면 1박스를 집어 들게 하고 값을 계산하고 돌아서니 이미 사라졌더라구요.

이리저리하여 40년 공직에서 일하며 몇 가지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 중추절에 보문사 마애불 앞에서 540배 절을 한 효과로 네 분의 보살을 만났고 10여 km를 달려 강화읍 버스터미널에 내려드렸던 바 이분들이 바로 ‘藥師如來佛(약사여래불=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준다는 부처)’로서 중생의 세상에 오셔서 잠시 불심을 점검하고 전파하심이 아닐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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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