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깬 남편 야단치는 아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초등학교때 담임 선생님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대청소를 하라 하셨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열심히 청소를 하였고 선생님의 청소검사 해달라 말씀드릴 학생을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냥 당시에는 선생님이 어려웠다. 그래서 교무실에 가는 것은 도살장 가는 소처럼 생각했다. 왜 그랬는가 모르겠다. 선생님 가정방문날에는 사는 집, 부모님 보이기 싫다며 온동네 아이들이 산으로 도망을 쳤다.

청소검사를 하러 오신 선생님은 학생수가 반쯤 남은 것을 보고 배고픈 아이들 앞에서 일장 훈시를 하셨다. 훗날 교장선생님이 되셔서는 더 긴 조회의 말씀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된 내용은 "오늘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간 학생들은 나쁘다"는 말씀이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청소 않하고 요령있게 도망친 학생들은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었고 청소하고 검사받은 아이들은 월급장이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청소하고 배고프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이 훗날 사업에 성공할 학생대신 야단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청소 안하고 도망간 아이들은 나쁜 학생이다.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도망간 학생은 그 자리에 없었고, 시골 벽촌마을에 전근와서 벽지근무 수당과 가점을 받으신 선생님은 토요일에 본가에 가셨다가 월요일 새벽에 버스타고 읍내에 내려서 6km를 걸어서 학교에 출근하시기 때문에 지난번 토요일의 청소안하고 도망간 아이들을 야단처야 한다는 사명을 망각하시곤 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더더욱 열심히 토요일 청소를 안하고 도망을 쳤고 점차 그편에 편승하는 아이들이 늘어났지만 선생님은 늘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다가 2학기 말을 맞이하여 다른 반으로 가셨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청소 땡땡이 선수들은 이같은 자세로 기회를 잡아서 사회에 나가 사업가로 성공하고 부자로 잘 살고 있다.

 

범생이들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서 그렇게 산다. 다만 이같은 일을 기억하는 범생이인 것이 다행이다. 청소안하고 도망가고 그런 자세로 사업해서 성공한 친구들은 이제 다 잊어버린 일이고 그런 것도 추억인가 생각할 것이다. 아예 기억조차 없는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3년동안 이모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 1,000일이 넘는 세월동안 학교로 걸어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은 몇가지만 기억난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민 생각난다. 교문앞이 질어서 운동화가 흙에 빠졌던 기억이나 가봉인지 봉고인지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시찰하기 위해 운 앞으로 지나갈 때 검은 차량 행렬을 구경하는데 어느 신사가 앞을 막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외곽 경호원이거나 이지역 경찰관이었을 것으로 나중에 추정해 보았다.

 

청소하고 도망간 아이들 대신 야단을 맞은 것과 같은 일은 설거지에서도 발생한다. 60대 남편중에는 설서지를 안 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내혼자 부엌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릇을 깨는 경우가 있다. 미끄러운 세제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식탁에는 참으로 다양한 그릇이 있다는 것을 설거지를 하면서 알게 된다.

 

君子不器(군자불기)라는 말은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고 상황에 즉응하는 것을 말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식탁의 그릇은 정해진 모양이 있고 용도가 정해져 있다. 쉽게 밥그릇, 국그릇이 있고 간장 종재기가 있으며 냉면그릇도 등장한다. 나물은 접시에 담아야 하고 계란후라이는 둥근 접시에 올려준다.

 

더구나 사기, 자기, 유리그릇이 있고 녹슬지 않는다는 '스텐레스'그릇을 약칭 스텐공기라 부른다. 크고 작은 그릇을 씻다보면 미끄러져서 유리그릇이 깨진다. 사기그릇도 싱크대에서 바다에 떨어지면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한번 그릇이 깨지면 그 처리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마음도 찜찜하다. 그래서 차라리 설거지 안 하고 설거지조차 돕지 않는 남편이 나을까도 생각한다.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청소 안 하고 도망간 아이들은 제치고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대신 야단을 맞는 것이나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깬 남편이 아내에게 야단맞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차라리 청소 안하고 일찍 도망간 아이들과 설거지를 안하는 남편이 훨신 편안한 일일까 생각해 본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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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