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린이처럼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상가에서 아파트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흰색 바닥 바로 옆에 네모난 신용카드가 떨어져 있습니다. 허리를 굽혀서 들여다보니 면허증입니다. 8차로 중앙에 떨어진 면허증이 아직 멀쩡한 것으로 보아 조금 전 지나간 사람이 흘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 가는 길로 가다가 흘린 것인지 반대방향에서 지나가던 길인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습득지점으로 보아 삼성연구소 방면으로 걸어가는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론합니다.

면허증에 지문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양쪽 면을 손가락 2개를 이용하여 집어들고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 주변에 우체통이 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없습니다. 아는 우체통은 아파트의 우리 집 반대편에 있습니다. 우체통을 살린다고 몇 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 이용한 우체통이라서 위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잠기는 순간에 차라리 파출소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체통 업무는 민간이 관리하고 경찰은 공공의 국가기능을 수행합니다. 경찰은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습득물 주인을 연락하기 위한 정보열람은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조금 멀지만 파출소를 향해 걸었습니다.

초등학생때 물건이나 돈을 습득하면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주인을 알 수 없으면 경찰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배웠습니다. 파출소, 소방서라 해서 기관이 유사해도 명칭이 달라서 자존심 싸움을 했다고도 들었습니다. 보도와 자전거길의 중간을 걸었습니다. 새로산 신발속에 에어쿠션이 느껴집니다.

 

사당에서 7001번을 타면 집앞에 내리고 7000번을 타면 법원사거리에서 시내버스로 환승하면 집에 옵니다. 그래서 탄 7000번 버스가 영통방면으로 가는중에 광교호수공원으로 연결되는 원천천앞에 정류소가 있다는 버스안 안내판을 보고 조금 더 앉아서 졸았습니다.

그리고 원천천 바로 앞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한번 건넌 후 평화로운 원천천의 산책로를 거쳐서 삼성연구소를 지나 중상에서 매탄위브로 건너가는 횡단보도에서 면허증을 습득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걷기 기록은 7,000보정도이니 이 면허증을 들고 파출소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10,000보를 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걷겠다고 건강 챙기고 체중관리, 뱃살아 들어가라 하기로하고 원천천변을 걸어온 바이니 조금 더 걷는 것도 좋은 일이고 안전한 파출소에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면허증을 신고해 주는 것은 어른으로서도 착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주고 있었습니다.

면허증을 살펴보니 영통구의 아파트 주소이고 1992년생입니다. 2021년2월에 면허를 받았으니 이제 6개월된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면허증일까요. 운전은 잘 하는지, 그냥 면허만 받은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오후 3시30분경에 횡단보도에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떨군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지금쯤 폰주머니에서 면허증이 사라진 것을 알고 얼마나 안타까워할까요.

 

사실 면허증이 없어도 경찰에 면허가 등재되어 있으면 큰 문제는 없지요. 30년 넘게 운전을 하였지만 면허증을 경찰에 제시한 경우는 두 번 뿐입니다. 몇 번은 주민증 대용으로 써먹은 일은 있지요. 하지만 젊은이가 어렵게 받아낸 면허증을 분실하였으니 그 상실감이 크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마음은 경찰파출소에서 즉시 연락을 해서 당일에 이 청년이 아버지 차를 얻어타고 와서 자동차 바퀴에 압살될뻔한 자신의 면허증을 되찾아 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습득하여 경찰에 전한 면허증은 비록 대로의 모래바다에서 주웠지만 그 상태는 양호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자동차 바퀴의 압박을 받은 바 없어 보였습니다. 그대로 다시 핸드폰 지갑에 넣거나 안전하게 자신의 승용차 물품 박스에 넣어두었기를 바랍니다.

 

이런 착한일을 하고 기분좋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마에 땀이나도록 면허증 신고후 가벼워진 몸으로 집 근처에 다다를 즈음에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 보는 번호이지만 직업상 일단은 친절하게 받습니다. 적극행정 강의를 해달라는 주문입니다. 기획사에서 정부기관의 의뢰를 받았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적극행정 강의를 하였다는 기사를 발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순간 면허증을 경찰에 접수한 착한 일에 대한 부처님의 가피가 내려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간의 강의성과를 막힘없이 설명하고 1시간, 2시간 원하는대로 준비할 수 있음을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일단은 정부기관에 강의내용을 제안하는 것이니 확정은 아니라 합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사람이 당선을 기대하듯이 일단 추천은 되었고 제안서를 낸다면 반드시 출강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고 보니 낮에 장학회 감사에 취임할 서류를 보낸다는 전갈을 받아서 흔쾌히 승락했습니다. 선배가 추천한 자리인데 명예직으로서 장학사업에 동참한다는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경기도를 총괄하는 일을 하는 사업이니 보람도 그만큼 크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정부기관 적극행정 강의에 대한 강의카드와 인적사항이 적힌 이력서를 카톡과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메일을 보니 경기도기관에서 평가위원 예비후보로 등록하라는 편지가 도착해 있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마도 면허증을 줍는 그 시각쯤에 보낸 것 같습니다.

 

메일함을 지금 확인해 보니 16:24분에 보냈습니다. 앞에 쓴 글을 확인해 보니 15:30분경에 면허증을 주웠다고, 拾得(습득)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면허증을 파출소에 신고하겠다고 마음먹고 걷기 시작한 후 59분 만에 평가위원에 추천된 것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7:1의 경쟁을 뚫고 나가야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15% 정도의 가능성이지만 선정이 되고 안 되고 보다는 후보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시 선행에 대한 부처님의 가피 내리심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열고 파일 작업을 해서 자료를 보내고 정리하고 확인하느라 바쁜 중에 지인이 연락을 해 와서 격려 덕분에 사무처장에 임명되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는 시청에 공무원을 만나도록 주선해 달랍니다. 다른 지인을 통해서 소개받은 간부에게 전화하니 통화중입니다. 나중에 문자가 왔는데 직장교육을 듣는 시간이었답니다. 이미 청렴교육은 다녀온 기관인데 지금은 성차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답니다.

이분과 문자로 소통하여 다음날 지인이 추천한 인사가 면담을 하도록 성사되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가족에게 먼저 식사하도록 하고 업무를 진행하였습니다.

공직에서나 퇴직해서 오늘 오후만큼 바쁜 날이 있었나 생각했습니다. 좋은 일이 연이어 나타나는 행운의 날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로 부처님께서 응답을 하신 것일까 생각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