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초임 서기보시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5급으로 들어와서 23년만에 5급이 되었다는 조크가 있었습니다. 1977년 당시에는 5급 공무원이라도 들어가라 했습니다.

 

5급을(9급), 5급갑(8급), 4급을(7급), 4급갑(6급=주사), 3급을(5급=사무관), 3급갑(4급=서기관), 2급을(부이사관=3급)로 비교됩니다. 그래서 9급 공무원에 들어왔습니다.

 

초기에는 대학교 국문과 재수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에 집중하게 되고 피동적으로 끌려가면서 스스로의 주관 없이 시간과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그해 2월에 응시를 했고 1977년 2월17일에 경기도인사위원장 직인이 박힌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당시 응시지역은 화성군이고 도내 시군 전체의 공무원 채용을 경기도가 총괄 대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해 1977년 5월에 5급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11월23일에 다시 5급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비봉면사무소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일을 가르치지 않고 너도 지금 나만큼 공무원에 대해 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냥 일의 앞뒤 설명없이 진행하라 합니다.

 

물어볼 선배가 사무실에 없습니다. 모두가 현장에 나갔고 부면장님이 전화기를 잡고 사무실을 지키면서 군청의 지시를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출장나가라 하십니다. 출장갔다 일찍 오면 왜 일하다 말고 돌아왔는가 따지십니다.

 

사무실이 일터가 아니고 논밭이 현장입니다. 흰색 Y-셔츠 입고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보는 줄 알았더니 머슴중 상머슴입니다. 차라리 어려서 본 상머슴은 양반입니다.

 

상머슴은 하루 일하고 저녁에는 퇴근했다가 새벽에 깔끔하게 옷입고 와서 일을 시작하고 다시 저녁식사후에 집으로 퇴근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공직생활이 39년8개월을 기록합니다. 77년에서 2017년까지 40년간 이어진 공직생활속에서 자신도 성장하고 공무원 자리도 높아졌습니다.

 

9급에서 5급이 되고 다시 서기관, 부이사관이 되더니 결국에는 벼락같은 사건이 발생하여 경기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이 됩니다. 당시 행정2부지사이신 김희겸 부지사가 박수영 행정1부지사, 이기우 정무부지사와 의논한 결과 이강석을 실장에 보임하기로 남경필 도지사께 추천합니다.

 

파격적인 인사에 경기도청이 놀라고 오산시청이 환호했습니다. 관사를 정리하자고 아내에게 토요일 쉬는 날에 함께 오산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요즘에도 부부여행을 다니는 홍승표 선배가 “축하한다”는 전화를 한 것입니다. 아내는 북부청에 있다가 다시 북부로 가는 것이 무슨 축하할 일인가 묻습니다.

 

그제서야 어제오후부터 아침까지 숨겨온 2급 실장자리 발령을 밝혀줍니다. 아내는 크게 기뻐하며 남편의 손을 잡아줍니다. 이렇게 좋아할 일이면 진즉에 이야기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관사를 정리하다가 많이 힘든 시각에 전격 이야기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보에 빠른 홍 선배가 전화를 하는 바람에 아내와의 이벤트는 차안에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을 분이 몇분 안되기에 마음껏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9급으로 들어와서 2급에 이르고 남양주부시장으로 근무한 후에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경기도의 공기관장이니 1급공무원 급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이강석의 공직은 드라마틱하게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열정을 보였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두고자 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 책을 정독하신 분이라면 아마도 매 직급, 매해에 나름의 정열과 적극성으로 일했음을 감지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열정의 세월이었습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개선하고 혁신하고 지금보다는 다르게 보다 나은 방안을 찾아보자고 노력했습니다.

 

오산부시장으로 일하면서 매주 책상위 물품위치를 바꾸는 것을 보신 여사님이 옆방의 팀장에게 말했답니다.

“부시장님은 매일 매일 책상위의 물품 위치가 바뀐다.”

 

맞습니다. 연필하나, 전화기, 마우스 패드조차 늘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위치를 찾아서 부단하게 변화, 혁신을 도모했다고 자부합니다.

 

그것이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인가 생각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고 세월이 지난 60대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노트북에 맞지 않는 손가락을 살리기 위해 기다란 키보드를 들고다니는 열정으로 오늘 김희겸 소장님의 수원발전연구소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매만지고 있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