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2년차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8년은 공무원 2년차로서 몇가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국문과를 나와서 중학교 교사를 하겠다는 꿈이 살아있었지만 현실은 아니었고 그래서 방송대 1학년에 입학하였구 9년동안 다녀서 5년제 학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공무원 2년차에는 산업계의 다양한 업무를 했습니다. 달달달 외웠습니다. 축산, 양정, 상공, 수산, 잠업, 농정, 관정, 그리고 잡다한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월 20일이 되면 월말 기준 보고서 독촉이 옵니다. 특히 축산업무에 월보가 많았습니다. 답리작 사료작물, 서강사료 생산실적을 보고하고 젖소 마릿수, 육우와 한우 통계자료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를 대한민국 정부의 농림수산부 통계로 쓰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 전작 업무도 흔들림이 보였습니다. 수도는 수돗물 나오는 배관이 아니라 벼농사이고 육도는 밭농사입니다. 이는 차석 업무입니다.

 

군청 농산과는 논농사를 위해 존재하고 읍면은 농사짓는 현장 사무실입니다. 가뭄이 오면 안보적 차원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벼를 심어야 했고 노풍은 크게 실패했습니다.

 

산업계장님이 20세 젊은 직원 둘을 데리고 시골마을에 갔습니다. 그리고 모를 내기위해 준비한 못자리 비닐을 확인했습니다. 통일벼 장려를 위한 묵언의 지시가 있었나 봅니다.

 

아직도 이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의 문장 일부를 수정, 삭제합니다. 논농사는 군수님 롱런의 척도가 되었나 봅니다.

 

가을에는 잠업업무로 인해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아니했다고 지속적으로 따저 묻기에 "나 면서기 안 한다"고 업무중에 이탈하여 뒷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평생 반면교사로 삼아서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린벨트 불법건축물 철거하다가 옷이 찟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공직 두번째 해를 보내고 1979년을 맞아 잠시 병역의 의무를 시작하였고 1980년 4월에 의무를 마치고 팔탄면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참으로 오래전 일인데 많은 일들이 기억나는 1978년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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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