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탄에서 병점으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팔탄에서 병점으로 ▩

1980년말에 (1980년10월13일)에 경기도청 전입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팔탄면사무소에 5월10일 복직 발령을 받아 회계담당으로 일하던 중에 총무담당 오영진 서기가 시험을 보라면서 군청 공문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전입시험 응시원서입니다. 경기도청에서 도내 시군 읍면동 공무원을 대상으로 9급 전입시험을 보라는 것입니다.

당시 생각으로 경기도청이 300명쯤 근무하는 군청 정도의 기관으로 생각했었고, 다만 우리 집 비봉면 자안리에서 수원으로 가는 시내버스 노선중 수원세무서 앞에 하차하여 조금만 걸어가면 팔달산 도청 건물에 도착하니 출퇴근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전입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과목을 미리 알려주는 바도 없었고 알아볼 길도 없으니 그냥 볼펜하나 들고 시험날 도청에 갔습니다.

요즘에야 시험내용을 미리 인터넷을 통해 검색 가능하겠지만 달랑 전입시험 응시표에 화성군 팔탄면 지방행정서기보 이강석이 응시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여 우편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경기도청 고시계 앞으로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인사계에서 전입시험을 주관합니다. 그리고 훗날 만나게될 심재인 선배가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1980년 10월에 9급으로 전입시험에 합격하였지만 10개월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80년 서울의 봄입니다. 1979년 10월26일에 박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났고 1980년은 군부가 정부를 장악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하여 경기도 행정조직도 크게 변화가 오고 개편이 되면서 인원이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니 전입시험자를 당장 발령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8월1일에 화성군청에서 이강석을 지방행정서기 8급으로 승진 발령합니다. 공직에 들어와 처음으로 승진을 하였고 군청에서 보내온 발령장을 면장실에서 면장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여하튼 승진은 기분 좋은 일이고 자부심도 키워주는 참 좋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그날은 새벽 출근하여 동네 부락에 나가 퇴비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장님께서 동동주를 주시므로 새벽 해장으로 두 잔정도 마시고 작업을 마치고 오전 9시에 회의실 장의자에서 잠시 단잠을 자는데 선배 한분이 와서 깨웠습니다.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팔탄면에서 이강석의 고향 비봉면으로 발령나는 줄 알았습니다.

 

경기도청으로 발령이 났다는 것입니다. 군청 행정계로 전화를 하라합니다. 전화를 드리니 냉큼 행정계장님을 바꿔줍니다. 전같으면 면사무소 8급직원이 군청 행정계장과 직접 통화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8급 승진한지 10일만에 도청에서 9급으로 발령된 것입니다. 전입시험자는 도와 협의해야 하는데 군청에서 아차 실수로 그냥 승진발령을 한 것입니다.

 

결국 1981년 8월 1일자 승진은 동일자 취소되고 도청에서 9급 지방행정서기보로 발령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청이 아니고 경기도농민교육원입니다. 화성군 태안읍에 있습니다. 기산리 315번지 농촌진흥원 옆에 나란히 서있는 건물이 경기도농민교육원이고 여기에서 3년1개월을 근무합니다.

1982년2월1일이 되어 8급에 승진합니다. 1984년9월19일에 서기 이강석은 새마을지도과에 발령을 받습니다. 이제서야 경기도청 본청에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