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입증지 액면가 5원 투기사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도청 새마을지도과에서 1년7개월을 근무하고 공직생활 9년이 흐른 1986년 4월 30일에 7급에 승진하였습니다. 당시 호봉제가 고시 사무관에게 유리하게 개편되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0년차 근무지만 7급 5호봉을 받았습니다. 8급때에는 아마 7호봉 정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공무원 근무 연식과 호봉이 같았었는데 이 즈음에 압착, 압축을 해서 5급 언저리에서 호봉당 단가차이를 늘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공직 9년에 7급 지방행정주사보에 승진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구나 같은 내무국 안에 있는 세정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2층에 있던 새마을과에서 1층으로 이동하는 것이니 출퇴근은 2분정도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늘 8급 서무로서 이 부서 저 조직에 불려가서 당시의 생각으로는 얼토당토 아닌 쌩뚱맞은 심부름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업무를 가지고 열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정과는 당시 경기도청 60여개 과중에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부서입니다. 나머지 59개과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시군에 보내주고 직접 공사를 하기도 합니다.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니 책임이 커졌습니다. 매사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이 일을 내가 하여야 하는가, 다른 부서에 넘길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다른 부서에서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부 결재를 받아 사업비를 집행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특히 5개 큰 조직에 대한 매월 운영비를 직접 송금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경기도가 은행에서 빌려온 자금의 이자를 갚고 때로는 원금을 상환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 규모가 수백억원입니다.

어느날에 채무상환 하라고 내무부에서 특별교부세가 내려와서 3일만에 어렵게 처리한 바가 있습니다. 계장님과 의견이 달라서 혼선을 겪기도 했습니다.

 

당시 예산계장님은 협조싸인을 해 달라는 요구에 “당신 서기보야 서기야” 하면서 가슴에 단 공무원증을 제쳐 보시고 7급 주사보임을 확인하고는 아무말 없이 싸인해 주셨습니다.

훗날 예산담당관으로 상사가 되셨고 동두천시청 동장으로 발령되었을 때 부시장을 하셨으며 이제는 지방행정동우회 선임 이사이신 장석인 선배님 이야기입니다.

매월말에 반드시 해야하는 일은 5기관에 한달치 생활비를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복리후생비는 매월1일에 지급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5기관은 농촌진흥원, 보건환경연구원, 도로관리사업소, 지방공무원교육원, 북부출장소입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료 공무원은 대략 400명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현업직 직원들입니다. 그래서 자금계획서를 빨리 내라하여 매월 28~30일에 자금을 보내려 노력했고 그렇게 지급했습니다.

복리후생비를 월 1일에 받아 유치원 보내고 분유 사고 냉장고에 부식을 채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월 1일과 20일을 학수고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5기관에 근무한 동료들로부터 적기에 자금을 보내주어서 많은 이들에게 면이 섯다고 고마워하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한번은 기관중 한곳이 자금내역서를 팩스로 보낸다하고 지연이 되었으므로 총액만을 받아서 결재를 올렸습니다. 그날 우리 계장님께서 점심 식사하시면서 조금 불편한 일이 있으셨나봅니다.

결재서류 표지에는 5기관, 첨부된 자금신청서는 4기관뿐이라면서 지적을 하십니다. 그래서 곧 도착할 것이고 오늘 결재해 주시면 내일 1일에 400명 넘는 직원들이 복리후생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계장님께서 기특하다 하시면서 흔쾌(?)히 결재해 주셨습니다. 글로는 이렇게 적었지만 당시의 결재분위기는 마치 계장님이 큰 은전(!!!)을 내리시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제 업무중에는 수입증지를 관리하는 일도 있습니다. 수입증지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수료를 받기 위해 우표처럼 만든 유가증권 입니다. 주민등록등본을 받으면 100원 정도의 금액이 들어간 증지가 인쇄됩니다.

인허가를 받는 경우에도 경기도수입증지 조례가 정한 금액의 증지를 인가서나 허가장에 첨부합니다. 그런데 5원짜리 증지가 25,000원어치 남았는데 팔리지를 않고 매일매일 수불부에서 이월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도금고인 제일은행에 문의하였더니 대형 철제금고 바닥에서 수년째, 아주 여러 해 이월된듯 먼지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대략 1980년경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1986년에도 이월되고 있었고 당시 보통의 인허가에는 300원, 기초적인 증명 수수로가 50원이상인 것으로 추정하면 1980년경으로 봅니다. 우표처럼 인쇄연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찍어내는 한국조폐창에서 이 증지를 인쇄한 것입니다.

이 증지를 전량 구매하였습니다. 매일매일 5원짜리 수불부 정리하는 칸 하나를 없앤 것입니다. 5원짜리 증지를 수년간 보관하다 2010년경에 공보관실 홍보기획팀장으로 근무할 당시에 경기도청 총무과에서 행정박물관용 자료를 모은다는 공고를 보고 전지 1매 5원짜리 100장, 500원어치를 출품했고 시상금으로 상품권 12만원을 받았습니다. 240배 투기를 한 것입니다. 지금도 수입증지 전지를 앨범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세정과에 근무하면서 조성범 지적계장님과 이화수 평가계 선배님 등 3명이 매일아침에 사무실 청소를 하고 구내식당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면서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명감, 종교의식처럼 아침마다 넓은 사무실 전체를 청소하고 차마시고 돌아오면 한분 두분 출근을 하십니다. 부지런한 새를 당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한 공무원을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사는 근면성실인데 이중에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입니다.

이후에도 공직생활을 하면서 늘 일찍 나갔습니다. 행사장에도 일찍 가고 사무실에도 서둘러 가고 약속장소에도 즈금 일찍 갔습니다. 도지사님중에 지금 만나는 손님이 소중해서 다음 손님을 10분 기다리게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비서실에 가서 하루 일정중 하나를 빼시든가 늘 5분일찍 당겨서 행사, 면담을 진행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지금도 변함없는 신념입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하면 시민들을 만나게 되고 행사장 동선을 파악할 수 있으며 행사를 이해하고 참석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의원, 시의원중 참석자를 정확히 멋지게 소개하여 점수를 얻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마음으로 서둘러 출근하고 일찌감치 행사장으로 가야 합니다.

10년차 공무원은 세정과에서 맞이합니다. 1987년 5월이면 공직 10년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병역기간 14개월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마을과 서무담당, 세정과 세외수입 담당을 하면서 만난 선배들에 대한 참 좋은 추억은 지금도 늘 가슴속에 뭉쿨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용규 과장님, 김승배 계장님, 박윤양 계장님, 이상욱 계장님, 육종윤 계장님, 조성범 계장님, 고택영 계장님, 조남주 계장님이 기억납니다.

정지영 계장님, 김재원 계장님, 송성호 계장님, 곽상현 계장님, 이현수 계장님도 그립습니다. 모두가 1987년 세정과에서 경기도 발전을 위해 열심히 세무업무에 진력하신 선배님들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