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실 스크랩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90년 행정장비는 큐닉스 워드프로세서, 테잎을 넣은 방송녹화기, 무거운 배터리가 따라다니는 동영상 카메라, 정사진기, 그리고 사무실에는 30cm플라스틱 자와 촘촘히 허리 부러트려 새날로 쓰는 커터칼과 딱풀이 전부였습니다.

 

 

문화공보담당관실에서 공보관실로 바뀌었고 4계에서 2계가 되었으며 국비 과장님 문화공보담당관은 총무과장으로 가시고 총무과장이 지방서기관으로 승진하여 공보관으로 오셨습니다.

5급부터 8급까지 우리는 아침일찍 출근하여 방송 모니터 내용을 정리하고 신문기사 도정관련 자료와 일부 정치기사를 칼로 오려서 복사지에 붙였습니다.

 

8명정도가 이 작업에 참여하여 7시반부터 8시반 사이에 마무리하여 비서실에 보내야 합니다. 도지사님이 아침에 출장을 가시는 날에는 스크랩 자료제출에 대하여 더더욱 독촉을 받습니다. 1990년 당시의 신문방송 스크랩은 전날저녁 9시부터 시작됩니다.

KBS와 MBC가 9시에 뉴스를 하고 SBS는 8시에 방송합니다. 요즘에는 MBC도 8시뉴스로 당겼으므로 9시 뉴스는 KBS이고 8시에서 9시 사이에 종편방송 일부채널에서 뉴스를 합니다. 좋은 시간을 잡기 위한 방송국마다의 편성전략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밤 9시에 저녁식사를 하거나 삼겹살에 소주한잔, 두잔을 하는 경우에는 식당에서 KBS를 봅니다.

아내는 집에서 MBC를 봅니다. 그래서 밤 10시에 뉴스나온 내용을 메모합니다. 수도권뉴스는 '날씨와 생활' 직전에 제목 중심으로 간단하게 스치듯 지나갑니다. 뉴스내용을 적고 있는데 다음 뉴스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꺼리가 없으면 날씨에 서호 저수지가 나왔다, 에버랜드에서 날씨를 알렸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KBS기자가 진흥청뉴스를 스크랩에서 빼먹었다고 서류를 찍고 어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아침뉴스중 도정소식이 나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곧바로 아내와 통화를 해서 무슨 보도가 나왔는가 확인합니다.

어제저녁에 나온 내용이 아침에 한번 더 뉴스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서 아침 6시에 나온 뉴스가 7시에 이어서 보도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뉴스를 정리하고 중앙지, 지방지 순으로 신문스크랩을 오려붙인 후 10부를 복사하여 원본은 도지사실에 드리고 복사본은 부지사님 등 간부실에 보냅니다.

 

이처럼 집에서 TV모니터하고 아침에 뉴스보고 정리한 자료를 매일아침 도정뉴스 스크랩으로 작성하는데 기여한 공으로 아내는 공보실 1박2일 여주 강변 단합대회에 초대되었습니다.

당시 윤홍기계장님이 그간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공무원만의 연수행사에 가족 1명을 초청한 것입니다. 공보실 스크랩의 절반은 이강석의 와이프가 채운다는 말씀으로 그간의 공적을 평가해 주셨습니다.

 

요즘 공보실에서 스크랩을 하는가 궁금합니다. 2003년경에는 인터넷에서 신문기사 스크랩을 하는 어플이 나왔고 TV보도내용은 인터넷에 올라있으니 이를 내려받아 정리하면 됩니다. 스크랩보다 발빠르게 모바일을 통해 기사를 보고 있으니 이제 신문 스크랩의 속보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1990년에는 모든 신문이 과마다, 간부실마다 배달되지 않으므로 도정 스크랩을 통해 오늘의 보도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으므로 공보관실에서 스크랩한 10부의 자료가 100부 200부 다시 복사되어 여러 공무원 간부들에게 보고되고 유관기관까지 전파되었습니다.

 

1990년에서 2018년이면 30년이 안된 세월인데 이제는 모든 정보가 모바일로 소통되고 있고 계급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활용하고 스스로 정보를 창출하여 전파하기도 합니다.

과거 상급자들은 자신의 급수에 맞는 정보를 선점함으로써 조직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수평적 자세로 후배들과 교감하고 소통해야 살아남습니다.

 

철부지란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겨울에 반바지를 입거나 여름에 털옷을 입으면 '철부지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철부지 같은 것이 아니라 철부지입니다.

계절을 몰라 여름에 두터운 옷을 입고 땀을 흘리는 것이나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에 멈춰있는 철부지가 더이상 공직에서 발전하지 못한다는 점을 오늘아침에 머리속 가득히 담아 봅니다.

 

[언론에 대한 생각]

신문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사진입니다. 행사장의 모습을 신문 한면을 다 할애해주어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작은 사진 한장이 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경노잔치를 했다고 글로 길게 큰 활자로 보도하는 것보다 어르신을 업고 행사장을 돌고 도는 아들과 며느리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100배 높은 홍보효과를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결혼식장에서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이듯이 행정홍보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된 사진입니다.

더구나 방송 기자에게 좋은 홍보아이템을 주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은 자료화면이 있는가, 카메라가 촬영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글로 제아무리 좋은 기사를 작성하여도 이를 설명할 화면구성이 어려우면 방송기자는 오지 않습니다. 물고기로 말하면 입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좋은 기사라면 그 컨셉이 신문인지 방송인지, 방송도 뉴스인지 다큐인지 예능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악어와 악어새라는 말을 씁니다. 공무원과 기자는 상보 보완의 관계라는 말을 합니다. 공무원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가 공보이지만 막상 들어와서 일해보면 가장 편안한 곳이 이곳입니다.

잘되면 우리가 잘한 것이고 보도가 잘 안나가면 아이템이 빈약하였거나 관계부서의 응원이자 서포팅이 부족했다고 평점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