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생연4동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96년 사무관 승진 교육을 연말에 받은 이유는 전국적으로 별정직 읍면동장이 일반직으로 전환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초까지 읍면동장은 지역의 유지급 인사들이 취임해서 지역사회의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고향동네의 경우에도 지역 어르신 홍 면장님이 10년이상 면장을 하셨고 1977년 가을에 당시 우리 면의 예비군 중대장을 하시던 윤 면장님이 취임하셨습니다.

 

 

대부분 읍면동장은 당의 간부나 지역의 유력인사를 추천받아 군수가 임명하였는데 제도가 바뀌어 6급 공무원이 조기 퇴직하여 별정5급 읍면장 발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일반직(행정, 농림, 토목, 건축, 환경 등) 공무원을 임명하였다가 다시 본청의 과장으로 배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97년초부터 전국적으로 읍면동장이 사무관에 승진하기 위한 교육수요가 크게 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96년 4월3일자로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던바 3월말로 교육대상자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3일 차이로 다음 교육을 기다려서 1996년11월22일에 제4기 초임관리자 과정 교육을 마치고 11월23일에 사무관에 승진하였습니다.

6개월 정도 늦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사무관이라는 직함을 받으니 힘이 났습니다. 조상님 묘역에 신고하고 자랑했습니다.

 

해가 바뀌어 1997년초에 시군 교류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단 사무관에 승진하면 시군에 전출되어 2년정도 근무했습니다. 시군청마다 도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오가는 자리가 있습니다.

경기도청이 소재하고 대부분 공무원의 주소지인 수원시의 과장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오산시, 성남시, 안산시, 화성시 등 수원권 시군에 전출되기를 바라는 바였습니다.

 

일단은 초기에 30km이내에 소재한 시청으로 내정된듯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훗날 부시장으로 근무한 오산시 상황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근 시지역의 자리는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선임들이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기다린 2월초에 사무관 동기로부터 전화가 와서 동두천시청에 배정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파악해 보니 도청자리 하나가 동두천시청에 있는데 그 자리를 지키던 과장이 급하게 다른 시로 전출되면서 도청 사무관이 메워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에는 도청내 인사는 총무과에서, 시군간, 도-시군간 인사는 지방과 행정계에서 담당했습니다. 총무과로부터 시군에 나갈 자원 명단을 받은 행정계에서 시군과 협의하여 자리를 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진행된 5명 인사는 행정계가 시군간 조정을 할 겨를도 없이 도청 총무과에서 간명하게 인사발령했습니다.

당시에 행정계는 시군과 주소지, 근무 희망지등을 종합하여 적정한 선에서 배치를 하였었는데 지방자치 이후 시장군수의 인사권이 강해지면도 도와 협의진행이 잘 안되는 시기였습니다. 민선 시장군수가 강하게 버티면 도에서도 복잡하게 얽힌 인사배치를 풀어내지 못했나 봅니다.

우당탕탕~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지방행정사무관 이강석 동두천시 지방공무원 전출을 명함. 종이 한장에 오가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동안 도청안 2층에서 1층으로, 다시 건너편 2층으로, 멀어야 파장동 인재개발원에 발령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98km떨어진, 9개 시군을 건너야 도달하는 동두천시청에 발령되었습니다.

하지만 발령은 기관장, 도지사님의 명령입니다. 공무원은 명령에 따라야 하고 법령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동두천시도 경기도입니다. 발령을 받고 오전에 청사 각 사무실에 인사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승진없이 수평 발령을 받아도 이틀동안 각 사무실에 인사를 다녔습니다. 발령장에 땀이 묻어 구불어지도록 인사를 다녔습니다. 발령장을 내밀면 받아서 살펴보고 다시 건네주는 것입니다.

특히 승진발령장은 손으로 슥~ 문지르고 돌려주십니다. 자신도 다음번에는 승진하기 위해서 승진의 기를 받는 의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전내내 인사를 받으신 선배 공직자들이 하시는 말씀의 키워드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징계, 경고, 네가 왜?, 동두천은 멀잖아!

그러고 보니 다른 동기는 아주 가깝게 발령이 났습니다. 혼자서 멀리 배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사를 다녀야 할 부서가 남았는데 더이상 가지 않고 오후에 사무실 짐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동두천시로 가서 새롭게 공직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그러고보니 19년 공무원하였고 도청에서 1981년부터 1997년까지 16년 근무했는데 동두천시청 출장을 가본 일이 없습니다. 최대 36개 시군이 있었고 현재는 31시군입니다만 다 가보지 못했습니다.

동료가 함께 가겠다고 해서 승용차에 이불, 밥그릇, 솥단지 등 간단한 짐을 싣고 달리고 달려 동두천시청에 도착했습니다. 수원-용인-성남-구리-하남-남양주-의정부-양주-동두천으로 이어지는 97km를 달렸습니다.

시장님께 인사를 드리니 총무과장님과 의논하신 후 보임을 정하신듯 한데 잠시후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별정직 동장 자리에 보임하시려 했나 봅니다. 10개동이 있었는데 반은 별정직 동장, 나머지 반은 일반직 동장이 근무했습니다. 그 별정직 동장 자리에 배치하면 별정직은 현재 공석인 공보실장에 들어오지 못하니 퇴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검토한바 일반직인 생연4동장을 공보실장으로, 후임에 이강석을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도청의 선배 사무관님이 동두천시청 총무과장과 친밀한 사이였는데 미리 전화를 통해 '이강석은 동장에 잘 맞다'는 의견을 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공보실장에 보임되었다면 훗날 동두천부시장으로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운명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과의 인연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생연4동에서 참으로 좋은 공무원들을 만나고 지금도 존경하며 연락을 주고 받는 어르신들과 함께 2년동안 보람찬 공직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생연4동 어르신들과 1년에 2~3번 만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97에 모친상에 다녀왔습니다. 상주가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렇게 동두천시 생연4동 주민들과는 이제는 중앙동이 되었어도 생연4동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젊고 그래서 의욕이 넘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동두천시 생연4동장으로 열심히 일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