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도청 출신 조금 선배들은 6급에서 사무관 직무대리를 받고 동두천시청에 와서 과장 보직을 받고 공부를 해서 사무관 시험을 보았습니다.

주관식 사무관은 논술을 본 분들이고 객관식 사무관은 5지선다형 시험을 통과해서 사무관에 임용된 분들입니다. 하지만 1996년, 1997년에는 6급에서 5급 보직을 받고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에서 6주간 교육을 받으면 사무관에 승진했습니다.

 

 

그러니 1997년부터 동두천시청에 발령받고 온 사무관들은 오는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으므로 시 공무원들과 시민들은 전임자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셨습니다.

더구나 3명이 한 숙소에 기거하면서 매일 만나 시정에 대해 토론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근무했습니다. 그 숙소는 폐지된 배수지 탱크 옆의 청경 근무초소였습니다. 방3개를 어렵게 원룸처럼 꾸미고 살았습니다.

 

가끔은 시청 간부를 초청하여 삼겹살을 구워먹었습니다. 재료를 구매하여 직접 구워 먹으면 더 맛있고 적은 금액으로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윤영우 부시장님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시고 택시를 잡아타고 관사로 가시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세명의 사무관은 생연1동장, 생연4동장, 상수도사업소장입니다. 체육주간을 맞이하여 회비와 일부 부서장의 자부담을 보태서 가족 체육대회를 열었습니다.

 

배수지 위에는 잔디구장이 있으므로 피구, 줄넘기 등 간단한 체육행사를 하는데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경주도 했습니다. 시청 간부들도 관심있게 보았을 것입니다.

1998년 여름이 거의 지나가는 8월5일 밤과 6일 새벽 사이에 신천이 범람하는 엄청난 수해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날부터 30일 정도를 동장실에서 잠을 자면서 복구에 임했습니다.

 

집에서 옷을 가져와 갈아입으면서 지원에 나섯습니다. 수해복구는 군 장병들이 다 했습니다. 신천을 넘어온 급류 맨앞에 나뭇가지, 풀 등이 골목길 끝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머리좋은 수달이 지은 집처럼 나뭇가지는 쉽게 뽑히지 않았습니다.

뻘흙이 집안으로 공장으로 사무실까지 들어왔습니다. 낮은 곳에 보관한 그릇 사이사이에도 검은 흙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휴가중이었습니다. 지역 유지 어르신이 상황이 심각하다며 알려주셨습니다.

 

동사사무소 동료 공무원들은 비상상황이라서 동장이 휴가중인 것도 몰랐습니다. 차를 몰아 97km를 달려왔습니다. 양주-동두천 경계 신천가에서 경찰이 통행을 막았지만 옆길로 달려 동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동사무소 도착 20분 후에 신천이 범람했다면서 당시 사회과장이던 김정일 선배가 동사무소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인감대장, 직인, 주민등록표 등 중요문서의 이상유무를 챙겼고 재난시 해야 할 일에 대한 매뉴얼을 검토하던 상황인데 물이 넘쳐버린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모래자루로 막고 온몸으로 버텼지만 둑방을 넘은 물이 온통 생연4동 등 동두천시 저지대를 밀고 들어왔습니다.

수해복구를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려울때 진정성이 통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주민들은 처음에 수원에서 온 동장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반바지를 입고 수해현장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잘한다 잘한다 했습니다.

 

사실 동장발령 반대를 하신 분들도 나중에는 응원군이 되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동두천시 수해복구를 위해 애써주신 군부대 장병, 경기도청 공무원, 민간 봉사단체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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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