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인생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어려서 회갑연에 가면 큰 상에 음식을 한가득 차려 놓고 아들딸 며느리 사위가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주인공 노 부부가 올해 회갑, 환갑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주름진 할아버지와 쪽을 지신 흰머리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측은한 표정으로 술잔을 받아 한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고 다시 두모금 후 술잔을 내려 놓으시기를 반복합니다.

 

 

사위는 이미 취해서 한복바지가 반쯤 흘러내리고 아들은 반취에 더이상 취하면 안된다는 사명감 가득한 손짓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손자손녀들은 좋아라 하고 뛰어다니고 딸은 울며 웃으며 술잔을 드리고 며느리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외국 대통령 그냥 지나가는 행사에 강제 동원된 중학생 태극기 흔들듯이 이리저리 밀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술 한잔 하는 40대 아저씨는 괜시리 소리치며 술이 없네, 안주가 부족하네 하면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습니다.

 

이런 잔치가 좀 사는 집에서는 3일을 이어갑니다. 첫날은 일가친척과 동네사람, 둘째날은 근동 원동의 아는 선비들, 마지막 날에는 동네 사람 중 수고하신 분들을 초청합니다.

 

회갑잔치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아예 빈 도시락을 들고 와서 아침상을 차려먹고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들고 학교에 갑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먹은 아이들은 다시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진 후 회갑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숙제를 합니다.

 

어머니가 미리 일러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동네에 회갑이든 상가이든 결혼식이든 遮日(차일)을 치는 행사가 있으면 늘 그렇게 합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관혼상제에 따른 상부상조의 구체적인 실천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무개집 회갑잔치를 미리 알고 있으니 술은 보름전에 담그고 감주는 이틀전에, 떡은 당일, 다음날, 그리고 셋째날에 적당히 쓸 수 있도록 날짜를 배분합니다. 이 또한 따로 문서로 정한 것이 아닌데 그냥 200년전 8대조 시할머니대부터 우리 동네에서 술, 감주, 떡을 만들어 관혼상제에 전하는 날짜의 순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작은 벌레가 한번은 좌로, 다음은 우로 돌아서 천적으로부터 가장 빠르게 멀리 피하는 본능, 서양말로 상부상조의 DNA가 우리민족의 피속에 흐른다는 말입니다.

 

3일간 이어지는 회갑잔치의 두분 주인공을 다시한번 살펴보면 할아버지는 올해 63세인데 흰 할아버지이고, 실제 회갑노인 할머니가 올해 61세인데 더더욱 흰 할머리란 말입니다.

 

콩밭 매시고 참깨 들깨 베어 말리고 털고, 봄에는 보리타작, 가을에는 논에서 밭에서 일만 하시니 손마디 굵고 얼굴은 주름사이로 숨어버려서 죽은깨조차 보이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런 회갑노인 두분을 위해 40대 아주머니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아이들 도시락을 담아가는 것으로 일당을 받습니다. 사실 일당이라는 것이 없고요,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의 향약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네이버] 鄕約(향약)의 4대 강목> 德業相勸(덕업상권) :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過失相規(과실상규) : 잘못은 서로 규제한다. 禮俗相交(예속상교) : 예의로 서로 사귄다. 患難相恤(환난상휼) :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

 

언제 받으려고 가서 일해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대에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돕는 것이고, 혹시 훗날에 3대쯤 지난 손자며느리가 다른 집 며느리의 일 도움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대에, 올해에 이권이나 이익, 눈앞의 이익스런 일들을 챙기지 아니함이 향약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었지요. 길게보는 惠安(혜안)이 아름다웠지요.

 

이제 현실로 다시한번 돌아와봅니다. 올해가 60세입니다. 세월이 그리도 쉼없이 흐르고 달리더니 결국은 2018년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1967년 전후에 서기 2000년이 되면 1958년생인 내가 42세가 되겠구나 했는데 예상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2000년에 42세로 1999년까지 동두천시청에 근무하였고 그해 초까지 소방재난본부에서 근무하다가 늦봄에 공보실에 와서 다음해 2000년에 홍보기획팀에서 일했습니다. 그 때가 2000년 밀레니엄 42세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18년 세월이 지나니 2018년, 올해가 되었고 회갑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더 할일이 많은 줄 생각했는데 그만 이렇게 나이를 먹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속상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도 나이를 먹었고 아내도 조카들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조카부부가 잘생긴 아들을 데리고 온것을 보니 참으로 귀엽고 보기에 좋았습니다. 나이들면 어린애기가 더더욱 예뻐진다고 하는데 요즘 샘해밍턴 두아들 보는 재미가 솔솔 라라 미레도입니다. 이동국 3남매 재롱도 재미있고 박준형 김지혜 두 딸의 먹방도 즐겁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