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사람에게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질긴 경우에는 저승에서도 만나고 웬만하면 평생에 한두번은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만남의 기회를 다시금 생각하였습니다.

 

어제 저녁에 행사에서 만나뵌 분은 사마천이 쓴 중국의 사기를 연구하는 교수님으로서 2012년 지방행정연수원 장기교육에서 2시간 강의로 만나 뵌 이후 6년만에 식사자리, 행사장에서 다시 뵈었습니다.

 

 

뵙자마자 지방행정연수원 2012년 사마천의 사기 강의를 들었다 말씀드리니 참으로 반가워하십니다. 바로 옆에는 이 강의 8시간을 들으신 사마천의 사기를 사랑하는 모임의 후원회장님이 자리하셨습니다. 보람차고 반가운 인연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강의내용을 여기에 잠시 옮겨 둡니다.

 

사기의 인간학 / 중국 사마천학회 金瑛洙

 

사마천을 2시간에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한번 읽어볼 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시간에는 사성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BC145년에 사마천이 탄생했고 55세에 史記를 완성했다. BC90년부터 2,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는 없다. 그동안 사마천을 정신적 멘토로 삼아 공부했다.

 

1992년 이후 반세기 내에 중국이 한국의 생사여탈권을 쥘 것이니 이에 대한 대처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 중국이 외교, 역사, 문화, 경제에서 크게 장악하고 있다. 오늘은 문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사는 25개 역사서가 있어 이를 25사라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史記이고 한서, 후한서 등 25종이 중국의 공식 역사서로 자리하고 있다.

 

사마천은 40세이후 개인의 역경을 겪은 후 역사서를 쓰기 시작한다. 사마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역사현장을 볼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준다. 사기는 뛰어나다. 중국의 다른 역사책들은 사기의 도움을 받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사마천의 사기의 기술체제를 본받은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99%가 역사를 위한 책이다. 다른 역사 책이 1% 왕과 일부를 위한 것이었다. 사기는 절대적인 역사서이다. 많은 인물, 가슴 아픈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학 교과서인 것이다.

 

사마천 이전에 역사서는 없었다. 그는 역사학의 조물주라고 양계초가 말했다. 사마천의 고향마을에 가니 法王行宮이라는 대문이 보인다. 사마천의 17대손 이름은 同영영이다. 2100년이면 70대손은 되어야 하는데 17대손이다. 후손들은 사마천이 처형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사기를 완성하고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처형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후손들이 감시를 피하여 성을 바꾸었는데 司+l = 同씨로 하고 馬 →馮 풍씨로 개명하였고 17대손인 이유는 죄인 집안이라 명나라때 가서야 죄에서 풀려 족보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宮形枉法 - 法王行宮 = 사마천을 궁형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枉 = 나무가 뒤틀림/ 왜곡시킴 = 잘못됨. 그리고 지명을 徐村이라 했다. 徐 = 二+余, 즉 2개 성 만이 남아있음이다. 同씨와 馮만이 남아서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중국의 화법, 협상에는 반드시 故事成語(고사성어)가 들어간다. 25%이상이 사기에서 나온다. 사기에는 600개의 사자성어가 있고 1,200개의 고사성어가 있다. 사기에 스토리와 가치개념이 있고 사기 1,200개 고사성어의 부가가치는 무궁하다. 인간의 가치개념이 들어있다.

 

破趙會食 = 조나라를 치고 와서 회식을 하자. 배수의 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힘든 일을 끝 맞치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회식을 하자고 한다. 이 회식이라는 것이 처음 나온 것이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 하기 전 병사들에게 뒤로 물러 날 수 없게 퇴로를 차단하여 놓고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즐겁게 마시고 놀자고 말했다.

 

기업홍보의 핵심은 인문학, 스토리텔링이다. 기업인 98%가 인문학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단다. 미국 최고의 대학은 시카코대학인데 착한기업 경영인을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단다.

 

시카코 대학은 학생들에게 105권의 고전을 읽도록 하여 창의력과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단다. 노벨상 수상자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대학이다. 삼국지 10번 보기 보다 사기 1번을 읽는 것이 좋은 일이다.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 = 복숭아와 오얏은 말이 없지만 그 아래로 절로 길이 난다. 과실이 열리면 그 아래에 사람이 다녀서 길이 생겨난다.

 

사마천이 이광희라는 장수를 칭찬한 글이다. 이광희 장수는 부하들보다 나중에 물을 마시고 수저를 부하보다 늦게 들며 부하들과 함께 자고 함께 전투를 치룬 덕장이다.

 

誇下之<辰+寸> = 사소한 시비를 참아내야 큰 뜻을 이룩한다는 말이다. 한신이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겪은 현장인 과하교가 중국에 있다. 한신은 건달의 가랑이를 기어가기 전에 건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봄으로써 건달을 무시했다고 한다.

 

漂母飯信(표모반신) - 한신이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에게서 한달간 밥을 얻어먹었는데 나중에 천금으로 그 은혜를 갚았다. 報恩이라는 가치가 들어있다. 빨래하는 아주머니의 묘를 세웠고 묘지의 앞 공간은 지금도 보은의 교육장이 되고 있다.

 

堀墓鞭尸(굴묘편시) 日暮途遠(일모도원) =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늙고 쇠약한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음을 이르는 말이다.

 

史記에 나오는 200명중 120명은 비운의 인물이다. “잠실에 보냈다”는 말은 궁형에 처해졌다는 말을 의미한다. 사마천은 50세에 3년간의 수형인 생활에서 풀려나 史記의 기록을 바꾸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황제를 칭송하는 교향곡이었다면 이후에는 변주가 가능한 ‘롹’음악으로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은유, 비유, 격언, 속담을 활용하여 사기를 집필했다. 526,500字 130권을 모두 다 읽어야 그 내용의 가닥이 잡힌다.

 

이 사람의 평가는 상대편의 이야기속에 숨어있다. 상호 비교하여야 전체의 의미가 나온다. 속담과 격언을 써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사기는 526,500개의 퍼즐이다. 속담, 격언을 써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伍子胥의 집안은 2,600년 된 집안이다. 중국인들은 유명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중국을 알려면 사기를 읽어야 한다. 伍子胥는 중국 춘추시대(BC 770~476) 오(吳)나라의 대부(大夫)다.

 

이름은 원(員), 자서는 그의 자이다. 초(楚)나라의 대부를 지낸 오사(吳奢)의 둘째 아들이다. BC 522년(楚平王 7)에 오자사가 살해되자, 그는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를 거쳐 오나라로 들어갔다.

 

나중에 합려(闔閭)를 도와 오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를 탈취했다. 그뒤 군대를 정비하여 국세가 날로 번성해갔다. 얼마 후 초를 함락시킨 공으로 신(申)땅에 봉해져 신서(申胥)로 불렸다.

 

합려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부차(夫差)에게 월(越)의 화친 요구를 거절하고 제(齊)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진언했다가 왕의 분노를 샀으며, 나중에 자결하라는 왕명을 받고 죽었다.

 

중국을 알려면 사기를 읽어야 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사기의 故事成語를 자주 사용한다. 중국 지도자는 역사, 철학에 대한 소양이 깊다. 10년전부터 중국에서는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역사와 철학시간을 5배 늘렸다.

 

역사 암송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린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이다. 중화사상을 전국에 알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자아카데미가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파워 중 하나가 동북공정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한글을 언문이라 했다.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다가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왕이 9번 머리를 땅에 찧어서 3번 절하고 항복했다.

 

그 이후 이들 지배계층은 친일파가 되었다. 중국을 제대로 알고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소프트파워가 사기에서 나온다. 사기가 중국당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刎頸之交(문경지교) = 관포지교, 조나라 廉頗(염파)와 藺相如(인상여)의 나라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 염파의 뉘우침은 負荊請罪(부형청죄)라 한다. 인상여는 完璧歸趙의 주인공이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조나라의 문왕이 그 보석의 새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대단히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진 소왕은 조 혜문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보석을 진나라의 15개 성과 바꾸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여기서 완벽귀조라는 말이 나오고 瑕疵(하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인상여는 외무부장관급의 벼슬에 오르는데 그동안 많은 전장에서 싸워 국방부장관급을 하는 염파는 인상여의 초고속 승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인상여는 염파를 만나면 미리 피하게 되고 지금도 ‘回車巷(회차항)’기념비가 남아있다. 회차항은 인상여가 염파의 마차를 피한 곳을 말한다.

 

나중에 염파는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인상여에게 와서 죄를 청했다. 오른쪽 어깨를 들어내고 찾아온 것으로 負荊請罪(부형청죄)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것이다.

 

伯牙絶絃(백아절현) = 백아가 산속에서 혼자 거문고를 연주하곤 했다. 어느 날 농사꾼이 그 앞을 지나다가 “高山流水”로구나 했다. 백아가 연주 후에 제목으로 정하려 했던 高山流水를 그 농부 종자기가 먼저 말한 것이다.

 

이후 백아는 연주하고 종자기는 연주를 감상하며 절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백아가 이듬해에 와보니 종자기는 세상을 떠났다. 백아는 이후 거문고 줄을 끊고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이야 말로 진정 소리를 아는(知音)분이군요.”

 

한국의 정치인들은 역사책을 읽지 않는다. 문화적 역량이 국력이 되는 시대이다.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밀어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을 우리는 하루빨리 간파해야 한다.

 

사기는 권력자를 비난했다. 2,100년전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부자 50명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치부방법, 칼갈이 사업으로 부자가 된 사례, 순대곱창, 도굴, 도박으로 부자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돈을 어찌 쓸 것인가?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게 해야 한다고 서술한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염치와 예의를 안다.

 

사마천은 역사 현장을 방문하여 역사를 서술하였고 100년전에 갑골문자가 출토된 바 당시 왕의 계보가 사기의 서술내용과 정확히 일치함으로써 사기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다.

 

§ 史記속의 고사성어 20개

1. 一以當十 일이당십 - 하나로 열을 당해낸다. 일당십, 일당백의 어원

2. 九牛一毛 구우일모-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한 올/ 아주 보잘 것 없음을 비유

3. 萬死一生 만사일생- 만 번 죽었다 한번 살아남. 구사일생의 어원

4. 立錐餘地 입추여지- 송곳을 꽃을 땅/ 입추의 여지도 없다.

5. 四面楚歌 사면초가-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옴. 항우와 유방의 초한쟁패

6. 曲學阿世 곡학아세- 배운 것을 왜곡하여 세상(권력)에 아부함.

7. 四通八達 사통팔달- 사방팔방으로 트임

8. 多多益善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명장 한신의 말

9. 破趙會食 파조회식- 조나라를 깨고 모여서 밥 먹다. 회식이란 단어의 유래(명장 한신)

10. 牝鷄之晨 빈계지신- 암탉이 새벽에 울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의 유래

11. 人心難測 인심난측-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12. 四分五裂 사분오열- 갈기갈기 찢김

13. 殺身成名 살신성명- 몸을 죽여 이름을 이룸. 殺身成仁

14. 百發百中 백발백중- 백 발 쏘면 백 발 다 명중시킴. 명사수

15. 父母國 부모국- 부모의 나라, 모국의 유래

16. 一言半語 일언반어- 한 마디나 반 마디의 짧은 말. 一言半句와 동의어

17. 萬人之敵 만인지적- 모든 사람의적, 만인의 적

18. 甘言好辭 감언호사-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 甘言利說

19. 去就之分 거취지분- 거취의 분명함

20. 因禍爲福 인화위복- 화가 복으로 바뀜. 轉禍爲福

[책소개]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