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오늘 아침에 우체통에 대한 글 하나를 추가하였습니다. 전국 坊坊曲曲(방방곡곡)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근한 우체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빨강 우체통 지키미] 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청색 스탬프가 찍힌 편지를 처음 본 것은 50년 전이다. 옆집 할머니께서 흰 손수건에 곱게 쌓인 ‘군사우편 찍혀있는 고운 편지’를 가져와 읽어 달라 하셨다.

 

철없던 아이는 국어시간에 교과서 읽듯 낭송하였고 할머니는 돌아앉아 살짝 눈물을 닦으시고 편지를 곱게 접어 치마 품에 감추셨다. 꽃 속의 나비처럼 편지를 간직하셨다.

 

할머니의 막내아들이 논산서 힘든 훈련 마치고 두 달만에 보낸 편지다. 글을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아들이 그리워 철없던 초등 2학년 아이의 눈과 목소리를 빌려 군대 간 아들을 만나는 눈물겨운 情景(정경)이다.

 

겨울날 어느 밤에 군대 가서야 철든 아들은 내무반 차디찬 침상에 엎드려 급하게 적었을 것이다. 엄마가 어머니가 되었다. 군대 간 아들이 입대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어머님 전상서’다.

 

요즘쯤인 가을이면 참으로 편지쓰기가 좋다. 요즘 제법 쌀쌀한 날씨에 아버님, 어머님!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신지요. 不肖(불초) 소자는 부모님 염려덕분에 몸성히 훈련 잘 받았습니다.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건강, 불효반성, 돈 조금만. 어머니와 군대 간 아들을 생명처럼 이어준 군사우편을 전하던 빨강 우체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체통 月貰(월세)는 우표 값으로 1,500원이다. 1개월에 편지 1통이 들어오면 철거, 2통이 투입되면 그달은 살아남는다. 참 쉬운 셈법이다. 지난해부터 한 달에 두 번 아내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위딩한 편지를 출력해서 싸인하고 도장을 찍은 후 수 십개의 예쁜 반원으로 들러 쌓인 빛나는 우표를 붙인 후 아파트 1층 입구 우편함을 지나쳐 버스정류장 옆에 서있는 붉은 우체통에 넣는다.

 

3일을 돌고 돌아 집으로 온다. 本第入納(본제입납)이다. [本第入納 =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편지 겉봉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경기도내 우체통은 3,144→2,837→2,764개(2018)로 우체통 73개가 철거되었다. 조금만 정성을 드리면 예쁜 빨간 우체통을 지킬 수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더 붉게 해주는 빨강 우체통을 우리가 지키고 늘려야 한다.

우체통 하나를 한 달간 지키는 월세가 1,500원입니다. 편지 3통이 들어오면 우체통은 늘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3개월 동안 달랑 3통이 들어오면 철거입니다.

 

그래서 아파트에 사시는 주민들이 열심히 가끔 가족에게 안부편지를 정성스럽게 보내자는 의견을 글로 썼습니다. 산골소년과 도시의 머리 딴 소녀를 연결해 주던 그 붉은 우체통을 우리의 작은 정성으로 지켜나가자는 말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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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