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시행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0년대 지방행정은 산업행정이었다. 농사를 짓는 일이 참으로 중요했으므로 행정력은 농사짓기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우선 연초일정부터 이야기하면 겨울철 영농교육이 진행된다. 지난해 초겨울에 파종한 논보리, 밭보리가 파릇하게 자라고 눈 밑에서도 그 푸름을 자랑하고 있는 계절이다.

잠시 옆길로 나가면 겨울철 절개지(도로공사 등을 위해 산 일부를 깎아낸 자리)가 미관을 해친다 하여 높은 분 행사때 임시방편으로 보리싹을 옮겨 심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다음 일은 볍씨 파종이다. 1년 논농사의 시작이며 당시에는 미질보다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재배를 위해 농림부에서부터 맹활약을 하던 터라 읍면동사무소 직원들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볍씨 담그기부터 챙기게 된다. 볍씨 소독약이 들어가기에 가축사료로 전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어서 볍씨를 파종한다. 당시 일반벼를 파종한 모자리를 공무원들이 발로 밟는 아픈 사건도 발생했다. 일단 모내기가 끝나면 몇 가지 일이 더 있다.

 

술독이라고도 하는데 벼 보식을 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어린묘 다발을 논가에 두게 되는데 이를 방치하면 벼병충해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이를 공무원들이 다니면서 농민들을 계도하거나 주요 도로변 논의 경우에는 공무원들이 직접 수거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뭄이라도 드는 해에는 하천에 나가 물을 퍼 못자리를 살려야 한다. 5단 양수를 하면서 타 들어가는 논자리에 물을 뿌린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기억으로 ‘식량은 안보’라는 말이 있다.

 

이어서 벼가 어느정도 자라면 방제를 해야한다. 지도소 직원은 벼병충해 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노랑깃발을 꼽고 행정기관은 방제를 마쳤다며 이를 뽑는 숨박꼭질이 계속된다.

더구나 중앙점검반 차량이 지날 즈음에는 논에 나가 맹물을 뿌리기도 했다. 농약을 이미 뿌렸는데 또 값비싼 약을 또다시 칠 수도 없고, 특히 당시 벼 병충해 방제에 소요되는 유류는 무상으로 나온 것 같다는 기억이 있다.

 

가을이 되면 ‘소속입건’지도를 나가야 한다. 벼를 잘게 묶어 세워 말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추곡수매 독려를 해야 한다. 수매가 마무리되면 어느덧 1년이 지나 12월 월급을 받는다. 9급 초봉이 쌀 2가마였다는 말은 지난번 언젠가 말한 것 같다.

 

요즘에는 피살이 지도도 없고 농약 뿌리러 공무원이 나가지도 않고 가을 논보리 파종을 위해 경운기를 운전하는 공무원도 없는 것 같다. 여하튼 지금 일선 공무원 절기는 농약 맹물 뿌리기 쯤인 것 같지만 요즘에는 중앙의 벼 병충해 방제 지도를 나오는 공무원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농산물은 참으로 중요하다. 외국 농산물이 아무리 저렴해도 우리 농산물을 살리고 확충하고 애용하는 애국시민이 필요한 시대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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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