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의 천국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84년경 서무담당자로 근무던 때의 사무실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왼쪽 칸막이안에 과장실, 오른쪽으로 교육계, 개발계, 보호계, 마을계가 있다. 요즘 같은 파티션은 없다.

계별로 4-6대의 전화기가 있는데 번호는 2개다. 2222, 4444번인데 이번호 하나에 2-3대의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다. 이를 ‘뿌라찌’전화라고 했다.

 

 

뿌라찌는 브리지(bridge)가 일본어 발음으로 변형된 이 단어라고 하는데 남의 집 안테나선에서 한 줄 더 따오거나 전기선 중간을 연결해 도전(盜電)하는 등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책꽂이와 몇 개의 화분이 있는데 요즘 사무실과 다른 비품은 바로 대형 재떨이가 계장님 책상과 차석 자리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비운 재떨이에는 티슈를 깔고 살짝 물을 부어 주었다. 아마도 먼지, 즉 담뱃재가 날리는 것을 막으려 했던 지혜인 듯하다.

 

하지만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재떨이는 꽁초와 담뱃재로 채워지는데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공무원들도 그냥 피우는 사람은 피워야 한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민원인이 와서 함께 피우기도 하고 계장님 동료들이 마실와서 함께 피우기도 했다. 정말로 타과에서 계장이 찾아오면 우선 담배를 권했고 맛나게 피웠다. 저쪽에서는 사무관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이쪽에서는 7급 2명이 담배를 물고 눈을 찡그리며 서류를 챙긴다.

 

하루가 지나면 과마다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대형 비닐주머니 가득 종이와 담배와 젖은 티슈가 한데 섞여서 밖으로 나갔다. 사실 당시에는 타자가 주로 사용되던 때라 복사지 이면지는 없었다. 그리고 타자치는 종이가 이면지였다.

전산실에서 나오는 이면지였는데 이것도 그쪽 직원과 안면이 있거나 동작 빠른 공무원들이 얻어다가 발간실에 가서 B5 사이즈로 재단을 해서 사용했다.

 

요즘 서류는 A4가 기본이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20%정도 작은 서류가 통용되었다. 그리고 이 작은 B5를 또다시 반으로 잘라서 ‘쪽지보고서’로 활용했다. 1980년대 도지사님들은 시력이 좋으셨나보다. 그 작은 종이에 타자 친 보고서를 잘 보셨나보다.

해서 좀 시력이 나쁘신 간부를 위해서는 작은 타자를 친 후 다시 B5로 확대복사를 했다. 그러면 글씨가 시원시원하니 잘 보였다. 하지만 이는 참 번거로운 일이었다. 요즘에는 워드프로세서에서 글씨크기 모양 색채 등을 다양하게 조절하지만 당시에는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지사님께 긴급한 보고서를 올릴라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일보다 글씨선수 확보가 우선이었다. 1960년대에는 먹을 갈아 붓으로 썻다고 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도 싸인펜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고서 1장을 다 써가는데 한글자 틀리게 되면 어쩔 것인가. 같은 종이한장을 덧대고 틀린 글자를 오려내면 아래장에 있던 종이의 조각이 나오고 이를 구멍에 맞춘 후 뒷면에다 투명 테잎을 붙이고 다시 글씨를 쓰는 것이다.

이를 발빠르게 대신해 주는 것은 화이트라는 사무용품이다. 메뉴큐어 칠하듯이 틀린 글씨위에 칠하고 3분정도 기다리면 하얗게 말라주니 거기에 글씨를 쓰면 될 일이다.

 

담배 이야기로 마무릴 하고자 한다. 요즘 복도나 건물 밖에서 담배를 맛나게 피우는 공무원들을 볼 수 있다. 20년 안짝의 시대에 책상위에 대형 유리 재떨이를 놓고 피우던 공무원이 있었는가 하면 눈치를 보면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아빠들을 ‘반디불이’라고 한다는데 도청 복도나 추녀 끝에서 연기를 품고 있는 이들은 뭐라고 해야 하나?

 

과거 수원 서문(화서문, 보물 403호)에서 통근버스를 탄 공무원이 담배를 피워물고 병무청 부근에서 버스 뒷자리에 부착된 재떨이에 비벼 끄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담배는 참 그랬다.

아마도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 데는 지하철의 금연이 큰 힘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항공기에는 아직도 재떨이가 있고 납품 받은 후에 항공사에서 이를 밀봉한다니 참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주변에서 담배를 끊은 이들이 늘고 있다. 금연하는 방법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다. 담배를 줄이겠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금연기념으로 담배를 피운다는 것도 틀린 말이다. 그냥 지금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금연하는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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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