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수첩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요즘 공무원 수첩은 참 많이 세련되었다. 큰 수첩은 내부회의에서 쓰면 되고 작은 수첩은 출장 갈 때 요긴하다. 더구나 뒷장에는 메모지도 있어서 작은 크기로 떼내어 쓸 수도 있어서 참 편하다.

과거 공무원수첩은 좌철로서 거즈를 대고 본드칠을 한 것이어서 가을쯤 가면 너덜거렸다. 그리고 그 큰 덩치를 항상 들고 다녀야 했다. 어떤 공무원은 승용차위에 수첩을 올려놓고 주민과 대화를 나누다가 깜빡 잊고 차를 출발하는 바람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요즘에 큰 수첩을 들고 출장가는 공무원은 적어 보인다. 과거에는 공무원증을 대신하거나 공무원임을 응근히 과시하기 위해 큰 수첩을 들고 다녔지만 요즘에는 작은 수첩을 속 주머니에 넣고 가면 되고 요즘 ‘나 공무원이요’하는 경우도 적은가 보다.

“구내식당서 수첩으로 밥 퍼서 먹나?”

 

하지만 요즘에도 구내식당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거나, 쉬운 이야기로 기관장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면 총무, 서무과 직원들이 그 ‘수첩’을 들고 온다.

물론 식당에서도 받아 적을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메모지를 속주머니에 준비하면 될 일인데, 식당에 수첩을 들고 와서는 수첩 때문에 손이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경우를 目睹(목도)하게 된다.

 

사실 식당에 간 공무원수첩의 불편한 정황은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고 계산대에서 부지런히 물건을 봉투에 담아야 하는 경우 어떤 여성의 손에 들려진 핸드폰과도 같다.

그 여성, 핸드폰을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한 손에 꼭 쥐고는 물건을 다른 손으로 담느라 참 힘들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더 답답하다.

 

다시 수첩이야기다. 연초 2월에서야 공무원 새 수첩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한 15년이나 20년 전쯤에는 수첩이 꼭 새해 1월말이나 2월초에 배급되었다. 당년도 예산으로 수첩제작을 하였기에 입찰하고 계약하고 제작하는데 빨라야 1개월 이내이니 수첩은 늦게 왔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서 받은 수첩을 임시로 쓰다가 새 공무원 수첩을 받으면 그 내용을 옮겨 적었다. 옮겨 붙이면 될 일이건만 시간을 내서 필사하는 것도 공무원적이었다.

 

여하튼 요즘에는 년말에 새해 수첩이 나온다. 15년 전쯤에 어느 존경받아야 할 선배 공무원께서 당년도에 2회분의 수첩예산을 세우고 새해 수첩을 전년도 말에 미리 인쇄하여 배부한 것이다.

그렇게 한번 개선하고 나니 매년 1회분 수첩예산을 가지고 다음연도 수첩을 미리 만들어 보급한다.

 

이제는 1+1 수첩 시대다. 그리고 어느 해 부터인가 ‘새끼수첩’이 나왔다. 큰 수첩은 아까 구내식당 행사 갈 때 가져가면 되고 새끼수첩은 출장 갈 때 참 요긴하다. 일주일, 연간 일정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작은 수첩이 나오면서 간부회의를 가시는 국장님들의 뒷모습이 편안해 졌다. 늘 왼손에 수첩을 들고 30여년을 생활하신 선배 공무원 중에는 왼쪽으로 몸이 기울어진 분도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요즘 간부 공무원들은 속주머니에 수첩을 들고 가신다. 그리고 다른 한편의 속주머니에는 핸드폰이 들어있으니 몸의 균형이 잘 맞는다.

최근에 ‘닫힌 문’만 표시하지 말고 ‘열리는 문’을 표시하자는 의견을 냈다. 열리는 문에는 손모양의 표시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닫힌 문에는 잠긴 열쇠그림을 붙이면 어떨까. 이제는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 비쥬얼이 강조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우리의 행정이 ‘닫힌 문’만 강조하는 통제의 시대에서 벗어나 ‘열리는 문’을 크게 표식하고 알리는 개방의 시대, 소통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소망이다.

마트에서처럼 1+1수첩(큰수첩 + 작은 수첩)이라는 작은 아이디어가 수백만 공무원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척추 건강에 크게 기여한 것을 우리는 되새겨 볼 일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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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