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지건에 대하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그 옛날 붓으로 기안하고 펜으로 결재하던 시절의 문서를 보면 “수제지건에 대하여”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首題之件(수제지건)이 맞는가 모르겠지만 늘상 공문서를 시작할 때 수제저건이라 쓰고 이를 결재하여 달라는 뜻으로 통용된 말이었단다.

 

 

법원이나 검찰의 용어가 어려워 여러 차례 개선을 도모한 일이 있다. 경찰관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일반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많이 고쳤다. 그래서 행정이나 검경을 통털어 어려운 말들은 지금도 일부 남아있다지만 많이 개선되어 편안해진 편이다.

70년대 용어 중 제일 먼저 접한 것이 ‘庶政刷新(서정쇄신)’이다. 서민을 위한 행정의 쇄신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 용어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서정쇄신은 나쁜 공무원 잡아가고 목 자르는 일쯤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서정쇄신으로 퇴직한 공무원도 많지만 이로해서 벼락 승진한 공무원도 많고 지금쯤 3급에 이른 간부들은 아마도 이때의 공직 숙청 속에서 살아남고 오늘의 영광을 이룩하였다 할 것이다.

다음에는 계절별 사자성어를 열거해 보고자 한다. 늦겨울에 진행되는 토입답압(土入踏壓)은 무엇일까? 논보리, 밭보리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은 나야 씨앗을 맺는데 겨울동안 서리발이 서면서 어린 보리의 뿌리가 덜렁 올라오게 되고 봄까지 그대로 두변 바람이 들고 뿌리가 말라 죽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흙을 뿌리고 사람들이 들어가 밟아주는 것이다. 이를 대체하는 방법으로 조상들은 소나무를 베어 가지를 대충 처낸 후(곁가지가 20센터정도 남게) 뗏목처럼 엮은 후 이를 소로 끌고 다녔다.

돌망태를 올려 무게를 주기도 했고 손자손녀들을 태워 돌망태 무게를 대신하기도 했다. 어린시절 우리들은 이를 ‘끙개’라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보리밭에 이어 논농사에 쓰이는 말로 ‘건답직파’가 있다. 乾畓直播(건답직파)란 봄에 비가 부족해 논에 물을 대지 못하는 경우 마른 논에 곧바로 볍씨를 뿌리는 영농법을 말한다. 천수답이 많았던 당시로서는 쌀농사를 조금이라도 더 지어 식량자급을 달성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소주밀식은 무엇일까? 밀로 담근 소주는 아닐까. 소주밀식의 한자는 잘 모르겠으나 논에 모를 낼 때 못자리의 묘를 4-5개 조금을(소주) 좁게 심으라(密植)는 뜻이다. 그래야만 소출이 많이 난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벼농사가 잘 지어지면 베어서 수확을 해야 하는데 이때 나온 말이 ‘소속입건’이다. 경찰서에 잡혀가는 立件(입건)이 아니라 立乾(입건)이다. 세워서 말리라는 말이다. 소속은 小束(?)일까? 작은 단으로 묶으라는 말이다. 이처럼 작은 단으로 묶어 세워말려야 미질이 좋다고 한다. 젖은 논바닥에 베어 말리면 미질이 나빠지고 특히 쌀알에 실금이 난다고 한다.

 

소속입건이 끝난 볏짚은 생고시용 용이다. 생고시용, 이는 공무원들을 ‘생고생’시킨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였던 바인데 논에 볏단을 곧바로 넣어 퇴비가 되도록 하는 작업이었고 나뭇잎을 뿌리기도 하였던 일로 기억된다.

이외에서 수도담당은 水道(수도)가 아니라 水稻(수도=논벼)이며 밭에 심으면 육도(陸稻) 즉 밭벼다. 여하튼 행정용어가 참으로 어렵지만 그 나름대로 추억과 흥미로움이 잇다.

 

마지막 보너스. 새마을부서에 4개의 계가 있었다. 쓰레기를 치우는데 있어 비로 쓸면 새마을계 소관, 삽으로 퍼 옮기면 개발계 소관, 집게로 집으면 자연보호계 업무였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일은 교육홍보계의 임무였다. 이도 저도 아니면 서무과 서무계의 일이겠지만.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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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