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되는 과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사 올 당시 공무원들도 이삿짐을 꾸려 수원으로 내려왔다. 우선 간부급 공무원들은 수원시내 허허벌판이었던 지금의 고등동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젊은 직원들의 이사터는 최근에 새로 전철역이 생겨난 수원비행장 주변의 작은 평수의 양옥집이었다. 이곳으로 신혼 살림살이를 옮겼다.

 

 

수원비행장 주변으로 이사온 젊은 직원들은 그후 근무지가 바뀌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는지 이분들의 삶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등동으로 이사 온 간부들은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거주했다. 우선은 도청과 가깝고 시간과 세월이 흐를수록 땅값도 오르고 따라서 집값도 뛰었으며 주변에 커다란 상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슷한 연령과 계급의 도청 간부들이 고등동에 장기 거주하게 되면서 사모님들 간에는 선의의 경쟁도 있었다. 남편의 도청 계급이 중요해졌던 것이다.

도청이나 시군청에도 녹지회니 해서 간부공무원 부인들 모임이 있는데 그 서열이 남편을 따라가는 것으로 인해 불협화음이 있다고 해서 최근에는 모임이 거의 없애버렸다고 한다.

여하튼 고등동 사모님들은 남편의 출세에 늘 신경을 쓰게 되었고 요직으로 옮긴 남편의 보직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늘 자랑을 하게 되었다.

 

어느 사모님 말씀.

“우리 애 아빠는 이번에 군수되는 과장이 되었대요.”

이 말씀은 아마도 당시 군수발령을 예약받았다 할 수 있는 자리에 보임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지방과장, 총무과장, 기획관 등이 가장 먼저 군수자리에 발령되었기 때문이다.

새마을과장과 세정과장도 높은 서열이었고 양정업무가 힘을 받을 당시에는 양정과장이 군수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과장이 모두 군수가 되지는 못했다. 지금은 지방행정의 꽃이라는 구청장 자리이지만 당시에는 군수자리에 가지 못할 군번(?)의 과장들이 못내 아쉬워하며 구청장으로 갔다. 그래서 어떤 과장은 구청장 보임후 청내 인사도 없이 도청을 떠나기도 했다.

여하튼 요즘 사모님들은 자신의 남편이 부군수나 작은 시의 부시장으로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히려 아이들 교육이나 이중 살림을 해야 하는 부담으로 힘들어 하는 것은 아닐는지.

 

<조금 보태기> 시장·군수, 국장되신 분들의 자제중에 명문대 진학률이 낮고 과장으로 퇴임하거나 계장하다 부군수로 가서 퇴직하신 분들의 자제 중에는 명문대 출신이 많다고 하니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바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