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군청 공무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면사무소 직원이 군청에 가면 개인의 이름이 없어진다. 군청 직원들이 읍면 사무소 직원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이름을 알아도 이들에 대한 호칭은 소속 읍면사무소 명이다.

“어이 전곡!!! (연천군 전곡면 직원)”

“이봐 죽일!!! (안성군 죽일면 직원)”

 

 

그래도 자신이 전곡읍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고 죽일면(지금은 일죽- 안성이 시로 승격하였으니 달라졌을 것이지만) 직원인 것을 알아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이들 읍·면직원들이 군청에 회의가 있거나 보고서를 지참하고 가려면 군청 근처에 버스가 들어설 무렵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내무과 복도 앞에서는 잠시 옷 매무새를 살펴야 한다.

 

수험생이 자주 소변을 보는 것처럼 군청에 올라간 신참 읍·면공무원은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한 후에야 군청 내무과 문을 열고 들어선다.

군청 내무과에는 행정계, 통계계, 복지계 등이 있었는데 당시 군청 행정의 중심부서는 바로 행정계다. 그 행정계에는 6급 계장과 7급 차석급이 2명, 8급이 2~3명, 9급과 기능직 등이 있는데 모두 9명은 될 것이다. 행정계장 자리 옆에는 소파와 큰 책상이 있는데 이 자리는 바로 ‘내무과장’이 일하는 곳이다.

 

사실 군청에서 내무과장과 행정계장은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던 과거 고을의 원님과도 같은 권위와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군정의 모든 분야를 총괄하는 곳으로 행정총괄은 물론 인사, 동향, 군수님 출장 등 대부분을 이곳에서 총괄했다.

더구나 부군수 제도는 존치와 폐지를 거듭하였던바 부군수가 없던 시절 내무과장은 군정의 제2인자였다. 지금은 작은 군청에도 기획감사실이 있어 4급 간부가 군수와 부군수를 지원하지만 당시에는 내무과장이 이른바 “짱”이었다.

 

그래서 정해진 임기없이 군수에 의해 임명되던 별정직 5급의 면장은 내무과장의 “밥”이었다. 군수보다 내무과장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장수면장”의 비결이었다.

이와 같이 공무원 사회에서는 밀림의 왕자 “사자”와도 같고 사자보다 빠르고 쎄다는 “호랑이”같은 공무원들이 일하는 내무과를 들어가는 읍면 공무원은 마치 동물원 사육사가 맹수 우리에 던지는 옷 벗겨진 통닭과도 같은 심정이다.

 

차라리 통닭은 죽었으니 느낌이 없을 것이지만 살아서 들어가는 이들이 (심하게 표현하면) 살아서 돌아갈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 쫌 심하였음을 인정하지만 당시 내 마음을 그랬답니다.)

더구나 이처럼 강력한 힘을 지원하는 행정계 직원들이 읍·면사무소에 점검을 오가나 깊은 밤에 숙직감사를 올라치면 그 당시 읍면 공무원의 말로 “산천초목이 떨었다” 이었다. 읍면사무소에 숙직감사를 와서 근무자가 없으면 “직인함”을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었음)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전화를 걸어 읍면 총무계장이나 부면장을 군청으로 호출하고 야단치고... 그러면 전날 밤 숙직한 공무원은 말 그대로 “죽음”일뿐.

그렇다고 공직에서 밀려나지는 않았다. 잘해보자는 일이고 열심히 일하면서 군청의 권위를 느끼고 절대 도전하자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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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