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식 경기도지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7년 봄. 자그마한 체구의 손재식 도지사. 그 유명한 민방위복을 곱게 다려입는 손재식 도지사가 한해 대책 현장 점검에 나섰다. 군청과 면사무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단은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장면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양수작업을 중단했다. 하천의 모래를 파내고 건수가 모이기를 기다려 퍼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중고생을 동원해 양동이로 물을 날라 모자리에 뿌린다. 당시에는 논농사는 곧 ‘안보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총성없는 전쟁이었다.

도지사가 통과할 예정시간이 임박해지자 공무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도청에서 도지사 차가 출발하면 군청으로 알려주고 군청에서는 면사무소로 연락한다.

 

그러면 면사무소에서는 부락당 1대뿐인 이장집 교환전화를 통해 알린다. 면직원은 이장집에서 오토바이로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도지사의 도착시간을 알리는 작전이었다.

임진왜란때 ‘M1소총’ 1정만 있어도 7년전쟁을 일주일 전쟁으로 쉽게 이겼을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당시 삐삐 1개만 있어도 이런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헛소리는 이 정도로 접고, 도지사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는 연락이 오자 5마력 양수기는 힘차게 돌아간다. 당시 5마력 양수기는 2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대일청구권의 하나로 들여온 일제 ‘얌마’양수기와 1970년대 한일의원연맹에서 보내준 5마력 양수기였다.

 

둘 다 5마력인데 대일청구권 양수기는 장정 2명이 들기에 버겁고 그 이후 나온 의원연맹 양수기는 혼자서도 들어 올릴 정도로 가벼웠다. 성능도 가벼운 양수기가 우수했다.

양수기가 퍼 올리는 물줄기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하기 양수기 물 배출구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일지 도지사 승용차(경기1가 1000번)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도지사는 양수기의 물줄기를 보면서 흐믓해 하셨고 군청에서 짚차를 타고 따라온 사진사는 연신 셔텨를 터트린다. 면사무소 공무원들은 애간장이 탄다. 도지사가 빨리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물을 퍼올리는 플라스틱 관을 ‘후드밸브’라고 하는데 물이 줄어들자 후드밸브가 들어나기 시작하는데도 도지사는 면장에게 하루종일 물을 퍼올리면 몇 평이나 모를 낼 수 있는지, 모내기 실적은 몇%인지 등등을 묻고 있었다.

직원들은 빨리 차로 모시도록 면장에게 싸인을 보내고 도청에서 수행한 공무원이 도지사를 차량쪽으로 모시는 순간 결국 하천바닥의 물이 떨어져 도도하기만 하던 양수기의 물줄기는 힘없이 스러져 버렸다. 손재식 도지사가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지금도 궁금한 일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