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그리스#터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이집트, 그리스, 터키에서 역사 들여다보기 

#행복한 출발이에요

우리의 기분을 들떠있다. 부부가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여기는 인천공항이다. 우리는 공항 집결예정 시각보다 2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그냥 마음이 급해서다. 오늘따라 공항 가는 고속도로가 시원시원하다. 버스가 잘도 달린다.

공항에 모두 모였다. 11쌍의 부부이니 22명이다. 여행사 사장님의 안내가 이어진다. 첫 4일간은 강행군이란다. 지중해는 비행기가 늦을 수 있고 일정이 흐트러지기 쉽다는 것이다.

여행 짐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꾸렸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점검해 본다. 가장 먼저 관광에 들어갈 이집트에 도착하면 저녁에 한잔 할 일이다.

 

 

o... 이집트의 타이트한 일정이 즐거웠어요

이집트는 식당에서 물 값을 따로 내야 하는 나라다. 돈을 내야 하는 화장실이 있는데 5인 단체 1불이다.

이집트에 도착한 일행은 본부방에 모여 한잔 했다. 공직 30년 여행을 자축하는 건배다. 양주와 소주를 나누며 이번 여행의 첫 밤을 보낸다. 모두 들떠있다.

 

마음속으로 지난 공직 30년을 스크린하고 있을 것이다. KBS의 올드 프로그램 뉴스파노라마처럼 자신의 젊은 나날들이 스크린 영상처럼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여행 후 자신의 공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아내를 생각하고 아이들을 걱정하고 부모님을 그려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인생 참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05:00에 비행기를 탄다. 룩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용감한 가이드는 이곳 이집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나 보다. 참으로 많이 알고 설명도 잘한다.

 

멤논의 거상을 만났다. 정말 큰 석상인데 지진이 나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벌판에 저런 석상이 서있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상이 만들어준 그늘을 베게 삼아 잠자고 있는 그 녀석(강아지)들이야 말로 개팔자다.

합세슈트 장제전을 보았다. 그 입구에는 3,500년 된 향나무의 뿌리가 남아있다. 이곳은 철저한 사막지대인데 노예들이 물을 길어 장미공원을 조성했었단다. 요즘에 그리하면 민원이 발생하고 신문과 방송에 크게 터질 일이다. 소고기 촛불시위가 요새 72시간째 진행 중인 것을 보라.

 

이곳에서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되었단다. 관광객이 많았는데 어느 해에 무슬림의 무차별 사격으로 7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3년간 관광객이 줄어서 이집트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왕들의 무덤은 영생을 원했어요.

이어서 왕들의 무덤을 관광했다. 이곳은 나일강이 범람해도 물을 피할 수 있는 곳이란다. 사암이어서 굴을 파기도 쉽다. 특히 겨울철에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5월말의 햇빛은 머리를 아프게 하고 눈을 찔러대는 반사광이 일행을 괴롭힌다.

 

피라밋을 만들면 도굴의 피해가 있어 이곳 산속 은밀한 곳에 왕들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굴꾼은 물론 과학자들도 허가 낸 도둑처럼 무덤에 들어가고 싶어 하므로 이처럼 어려운 곳에 외부에 나타나지 않게 왕들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람세스3세, 1세, 4세의 무덤이 있다. 투탕카먼은 젊어서 요절한 왕으로 유명하지는 않았기에 도굴을 피했다. 더구나 람세스 6세 등 유명한 왕의 무덤 사이에 끼어있어서 도굴꾼들이 알지 못했을 거란다.

람세스3세의 무덤 벽화를 분석해 보면 배심원제도를 유추할 수 있고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復活(부활)을 기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신전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것 같아요

카르낙 신전을 본다. 크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13만㎢로 위성사진을 통해 보니 전체가 조감된다. 우리가 관광할 수 있는 구역은 전체의 10%정도란다. 거대한 돌기둥이 하늘을 향해 있는데 가로지른 돌이 오랜 세월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정교한 돌기둥의 조각이 대단하고 울퉁불퉁한 돌을 쌓은 후 깎아 내려온 것임을 증거하는 마무리 되지 않은 돌기둥 2개가 저쪽 구성에 남아있다. 아무리 노예가 많아도 잘 안 보이는 구석의 돌을 깎을 인력까지는 없었나 보다. 나폴레옹이 점령했을 당시 자신을 표현한 프랑스어 글귀도 있다고 해 사진을 찍었다.

 

신전관람을 마치니 저녁이 가깝다. 붉은 조명이 신전 기둥을 비춘다. 후문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부부별로 마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는데 시장의 포목점과 과일가게를 지난다. 좁은 그 시장을 거대한 마차가 지나가는데 누구도 불만이 없다.

 

아마도 이 마차길이 먼저 개설되고 시장은 나중에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이 형성될 때 이미 마차가 이 길을 선점하였고 마차가 지나가니 시장이 형성된 것은 아닐런지.

 

#피라미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집트의 아침식사가 풍성하다. 이곳은 골프장안의 호텔인데 주변조경이 평화롭다. 초행길에 호텔 밖에 삼각형의 물체가 보여 피라미드로 생각하고 촬영했으나 아침에 보니 건너편 건물이다. 지붕이 피라미드처럼 각을 이루고 있다.

 

가이드 말을 들어보자. 이집트에서는 장미꽃만 보고 그 가시는 잊어달란다. 이집트에서는 역사와 문화재만 보고 주변의 서비스나 난전 장사꾼들의 불편한 행동은 그냥 지나쳐 달라는 주문이다. 이곳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는다.

 

피라미드는 혹시 천문대였을까? 1만8천년전 이곳은 바다였을 거란다. 피라미드는 50.5도. 동서남북 각도에 맞춰 4천600년 전 또는 1만8천년 전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처음 외부에는 외장용 화강암이 있었단다. 그런데 이 지역에 지진으로 가옥이 파손되자 주민들이 피라미드의 외장용 대리석을 떼어다가 구들과 부뚜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에야 이 피라미드가 문화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니 탓할 일은 아니다. 좁은 공간을 만들어 왕과 왕비의 관을 모신 것이다. 피라미드의 질량은 700만톤이란다.

 

낙타체험 시간이다. 부부가 함께 낙타를 타는데 관절 각도가 참으로 넓은 동물이라는 생각이다. 학교 때 들은 이야기로 낙타는 사막여행 중 인간이 최후의 수단으로 목을 잘라 물주머니를 꺼낸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부부가 낙타를 타고 낙부(말=마부)가 궁둥이를 치면 뒷발부터 일어난 후 앞발을 든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린다. 떨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는데 정말 움찔하는 순간 몸이 앞으로 떨어질 것 같다. 그리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가는데 ‘낙타’할까 두렵다. 말에서 떨어지면 ‘落馬(낙마)’라고 하던가.

 

스핑크스는 코가 없다. 동양의 부처님 코처럼 아들을 낳는데 쓰였다고 한다. 80×20m의 통돌을 조각한 것이다. 다리부분은 지하에 있고 몸통이 지표위에 서있는데 세월속에 다리부분이 모래에 덮이면 이를 파낸다고 한다. 오늘은 아주 깔끔하게 모래를 파냈던지 그 깊이가 약간 공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피라미드의 저 큰 돌덩이를 어떻게 올렸을까? 큰 돌을 나무토막과 함께 매어두고 있다가 나일강이 범람하여 물이 차오르면서 그때 손쉽게 돌을 이동해 쌓았다는 가설이 있다고 한다.

시내를 돌면서 2층과 3층에 철근이 앙상하게 남아있는 건물들이 아주 많다.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을 이제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은 이렇다.

 

이집트 건축법에 공사 중인 건물은 사용할 수 있으되 전기료, 수도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이용하고 있단다. 미완성된 건물에 대해서는 대출금을 회수하지 않고 이자부담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피난교회를 방문했다. 이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주민들이 코리아를 외치며 볼펜을 달란다. 한국의 아이디어인 목걸이 볼펜이 그렇게 인기란다.

 

#투탕카문의 금을 보았어요

1922년 하워드카터가 투탕카문의 묘를 발견하고 발굴했다. TUTANKHAMUN. 묘의 문을 열자 ‘금이다’라고 외쳤단다.

3,500점이 나왔고 1,700점을 전시하고 있다. 람세스 3세 무덤의 ¼정도이지만 고고학계에서는 빛나는 일이다.


파라호의 저주는 저주가 아닐 것이라 말한다.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이 여러명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저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수 천년 된 곰팡이에 감염되어 인부들이 사망한 것이라고 본단다.

투탕카문의 부장품은 현대에도 만들기 어려운 세공품이다. 그리고 금이다.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함께 나왔다는데 이는 부활과 연관을 가지고 있단다. 혹시 이 시간 그의 무덤 부장품을 보고 있는 관광객 모두가 부활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8겹의 관이 전시되고 있다. 큰 괴를 넣어 조립하고 그 안에 다음 크기의 괴와 관을 조립한 것이다. 참으로 많은 수공이 들어갔을 것 같고 당시 왕권이 강대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어서 일행은 배위에서 식사를 했다. 양탄자를 돌리는 청년, 허리와 힙을 흔드는 춤을 추는 무희, 비슷한 동작만 반복하는 두 청년. 배를 타고 가면서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는 일은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흥겨운 시간이었다.

 

#새벽 2시에 기상하여 그리스로 갑니다

그리스라는 국가명은 국민들이 거부하고 핼라스로 표현해야 좋아 한단다. 로마 지배의 흔적이 그리스라는 국가명이란다.

그리스는 남한면적의 1.5배정도이고 아테네 인구는 450만이다. 대리석이 많고 까메오, 올리브가 유명하다. 국가경제의 40%가 관광 수입이다. 해운업의 거상 오나시스가 이곳에 살았다. 재크린도 살았었겠지.

1, 3차 산업은 발달했으나 2차 산업은 텅 비었단다. 결혼은 신부가 준비하고 신랑은 침대 하나만 달랑 들고 장가를 온단다.

 

#에기나 섬에서 살고 싶어요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가 아들의 몸을 저승의 스틱스 강물에 담가 어떠한 무기도 막을 수 있게 했지만 발목 부분이 잠기지 않아 인간의 약점을 이야기하는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각주] 아킬레스(Achilles) :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펠레우스(Peleus)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의 아들. 발뒤꿈치를 제외하고는 불사신(不死身)으로서 걸음이 몹시 빠르며,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하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에게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아킬레스 건이란 명명은 이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기 아킬레스의 발목을 잡고 강물에 담갔다 꺼냄으로써 온몸이 불사신이 되도록 방어막이 형성되었지만 손가락으로 잡았던 발목부분은 강물에 닿지 않았던 것이라는 설명을 고등학생 때 들은 기억이 난다.

제아무리 강력한 힘이 있어보이지만 모든 상황에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라는 의미를 후대에 전하는 전설이다. 인생을 살면서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도 지혜를 가지고 노력하면 해결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에게해는 바다냄새가 나지 않고 끈적이지도 않는다. 구운 문어와 체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다. 점심식사도 맛지다. 돼지 꼬치구이인데 소고기 같다. 야채를 함께 먹는다. 에게해의 바다는 쪽빛이다.

그래서 물고기가 적단다. 정말로 바닥이 보이는 모래위에는 날씬하고 작은 고기가 보인다. 일행 중 몇 명이 바다에 발을 담그면서 시간을 즐기는 사이 분위기가 고조되자 3명이 허리까지 담그고 결국 2명이 수영을 한다. 참 시원하겠다. 에게해에서 옷 입은 채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까?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하염없이 잠이 온다. 시차 적응용일까. 갈 때의 뱃길이 살아 숨 쉬는 생동이라면 오는 길은 멈춤의 시간이랄까.

 

#그리스 해변의 밤은 낭만과 사랑이에요

해변에 있는 자갈 개수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주1병에 소주 여러 병이 우리의 대화를 증폭시킨다. 약간의 오버도 있었다. 일부는 예쁜 돌을 줍고 부부가 해변을 거닐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 잔씩을 권하는데 바닷바람과 해변의 분위기에 술잔을 사양하는 이가 없다. 인간은 분위기를 타는 품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행의 숙소는 해변가에 있다. 호텔 문에서 바닷물까지는 50m정도다. 그리스 해변에도 석양이 있고 하늘에 힘없는 달이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본 그 달과 똑같다. 아크로폴리스.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이솝.

옥타비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40세 이전 흉상만 남기라고 했단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젊게 나왔단다.

그리스 도시의 기본요소는 아크로폴리스, 아고라(시장), 연극장(씨어터), 스타디움(운동장) 등이다. 아고라는 물물교환, 철학, 목소리의 현장이다. 연극장은 희극과 비극을 공연함으로써 시민들의 정서를 함양했다.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로 항아리에서 살았으며 낮에도 등불을 가지고 다녔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만남을 청하였으나 ‘햇빛을 가리지 않게 피해주시오’라고 말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알렉산더 대왕도 죽어서 관에 넣을 때 ‘내 손을 관 밖으로 내놓도록 하라’는 유언을 했다는데 모든 인간은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를 알게 하기 위해서란다.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대왕이 되지 않았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단다.

 

아테네는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 고린도는 상업으로 명성을 날렸고 스파르타는 군사력으로 유명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오이디프스가 스핑크스의 퀴즈를 맞춘다.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가는 동물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스핑크스는 바다에 떨어져 자살하고 오이디프스(Oedipus)는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스스로 눈을 뽑고 돌뿌리에 채이면서 만신창이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역사를 보았어요

2,500년된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시민들이 돈을 모아서 지어졌기에 더더욱 유명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1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의 마크에도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조수미, 정명훈이 공연한 곳이다. 파르테논 신전 입구에 음악당이 있는데 그 음의 조화가 예술이란다. 그 옛날에 음향관리를 잘 했다는 평가다.

 

파르테논 신전을 오르내리는 계단과 길의 대리석은 긴 세월속에 인간의 발자취를 흠뻑 적셔서인지 몹시 미끄럽다. 다리에 힘을 빼거나 정신을 놓았다가는 크게 넘어질 것 같다. 얼마의 인파가 다녀가야 대리석이 이 정도로 매끄러워지고 깊이있게 패일까.

 

설악산 비선대에 가면 긴 세월 폭포물이 흐르면서 그 폭포의 시작지점이 파르테논신전의 입구처럼 패인 것이 보인다. 세월은 긴 시간은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불가에서 이르기를 인간이 사람이 서로 옷깃이 스치는 인연이 몇 겁의 내세가 있다고 한다. 그 1겁의 세월이라는 것이 마니산 차돌 하나가 닳고 닳아 없어지는데 걸리는 세월이라고 한다.

 

마니산에 있는 사방팔방 1자 30㎝인 차돌위로 하늘나라 신선이 인간 세상을 살피기 위해 3년에 한 번 내려올 때 무명버선이 그 돌을 스치고 올라갈 때 비단 두루마기 자락이 닿아서 닳기 시작한단다. 그 차돌이 모두 가루가 되어야 1겁이 지난단다. 그렇다면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1겁이 되기에는 멀었단 말인가?

파르테논 신전의 46개 기둥은 약간씩 안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하늘 위 2,700m에 이르면 한곳에 모이게 되는 가상의 선을 생각할 수 있단다. 배흘림 양식, 엔타서스 기법 등.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3대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는 입만 벌리면 지식이 나왔다. 제자들이 비결을 물으니 ‘내안의 좋은 귀신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네’라고 말했단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들어갔다. 제자들이 간수를 매수하여 감옥에서 도망가도록 했으나 ‘악법도 법이다’라며 그냥 감옥 안에 남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보다는 ‘나는 한 가지 밖에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이라고 말한 것이 더 유명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주창한 4대 행복은 ① 나는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둔 것이 행복하다 ② 아테네에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③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④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식 교육에 치중했다. 악처 크산티페가 돈을 벌어오지 않고 매일 집을 나가서 청년들과 토론만 한다며 그에게 물을 뿌리자 ‘천둥이 치니 이어서 소나기가 온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냥 악처만은 아니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교육법은 모든 교육이 무료이고 대화식이다.

 

소크라테스 감옥에는 3개의 문이 있다. 그 안에서 소크라테스가 머물렀단다. 독배를 마시면서 친구에게 빌린 닭 1마리를 대신 갚아달라는 유언을 했단다.

소크라테스가 걸었을 것 같은 길을 올라가니 약간의 공터가 나오고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알로에 잎새가 유난히 크게 자라고 있는데 저 알로에의 조상을 찾아가면 소크라테스의 옷자락을 만날 수 있을까?

올림픽 스타디움에 왔다. 6만9천명이 수용되는 스타디움이다.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노인의 왕성한 모습과 젊은이의 쭈굴한 동상이 있단다. 누구나 운동을 열심히 하면 늙어서도 정력이 좋고 젊은이도 운동하지 않으면 정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란다.

 

#여기서 잠깐만 쉬고 가겠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를 비교해 보자. 두 나라 모두 돌 문화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집트는 크고 웅장한 문화이고 그리스 아테네 문화는 철학과 예술이 돌과 공간에 함께 어우러진 문화다.

하지만 두 문화 모두의 공통점은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집트 국민은 조상에 대한 긍지, 자부심, 전통이 사라진 것 같다. 그리스는 철학과 교육을 통해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많은 문화재가 그냥 보존만 되어온 것이 아니라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교육과 관광에 활용되고 있다.

그리스는 이스라엘처럼 천년 넘게 외세의 침입을 받은 역사속에서도 종교와 언어를 이어 감으로써 민족과 역사를 지켜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역사와 언어, 문자를 가지고 발전해온 국가로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정치적인 발전, 경제안정과 번영을 위해 이 시대의 한 페이지 역사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공직경험 30년의 노하우와 이번 해외여행 10일의 경험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다시한번 마음의 대리석을 가다듬을 일이다.

 

#터어키 이스탐블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기도시간이다. 기도를 권유하는 스피커소리가 들린다. 몇 번을 들어도 성능 떨어지는 쇠소리다. 터어키 이슬람 신도들은 매일 5번 기도한다. 대한민국에 취업온 이슬람 신도들도 하루 다섯 번 기도한다.

그래서 방석에 나침반을 장착한 방석을 만들면 우리나라에 살고있는 이슬람 사람들의 애장품이 될 것이란다. 방석을 펼치고 이슬람 방향이 어딘가를 확인하고 절을 올리기 때문이다.

카르닥 신전에서 떼어온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서 가져온 구리로 만든 뱀 모양의 조형물도 있다. 그 옆의 돌탑에 도르레를 걸어 차일(遮日)을 치고 귀족들이 마차경주를 관람한 곳인데 이제는 공원이 되어 있다. 이 공원에는 벨헬름2세가 세워준 분수대도 있다.

 

이슬람교는 AD600년에 만들어진 종교다. 여러 종교의 좋은 내용을 따왔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다.

대한민국의 명동에 해당할 거리를 구경했다. 인파가 가득하다. 일요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구 8천만의 나라이니 다니는 인간도 많겠지.

정말로 이 세상에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가 보다. 참으로 인간이 많다. 물건도 많고 인간도 많다. 정말이지 지구는 대단한 생명체인 것이다.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인간이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하는 인생의 배움 기회요 스승이시다.

많은 슐탄이 살다 갔다. 하지만 그들도 빈손으로 갔다. 금과 은 등 보물을 가져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관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빈손임을 알린 것처럼. 그래서 후손들이 왕이 쓰던 물건을 박물관에 가두어 두었다.

박물관은 시간을 가져오고 권력을 되찾아 오고 누구에게나 잠시 동안 왕이 되고 술탄의 역할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 박물관에 보관된 귀중품일수록 당시 얼마나 백성들을 힘들게 하면서 저런 물건을 만들고 묘지를 꾸미고 했는지 곱씹어보게 한다.

 

거대한 건물을 축성하다 이름 없이 죽어간 노예, 자신의 이름조차 새겨보지 못하고 납품된 세공품들을 보면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o... 아이스크림과 종소리를 섞어 먹어요

1불짜리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쫄깃한 아이스크림이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젊은 청년이 쇠몽둥이로 종을 치면서 아이스크림을 담아낸다.

우리나라 색떡처럼 담아주는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뺏었다 돌렸다를 반복하며 재주를 부린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저녁에 TEKIRDAG라는 술을 주문했다. 이 나라 터키의 지명을 딴 술인 듯 보이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소주격으로 맥주에 혼합하여 마셔보았으나 화학약품 같아 입맛에 어울리지 않는다.

향과 질감이 소주 맛에 익숙한 우리의 혀를 제대로 선무하지 못한다. 그래서 국내보다 비싼 10배 값의 소주를 주문하여 건배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 건배다.

사기업에서는 쉽지 않을 30년 근속이 가능한 공직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만 요즘 사회가 지적하듯 철밥통 遮日(차일) 아래에서 안주한 것은 아닌지도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이며 핵심을 두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겠다.

 

또한 공직 30년의 과정속에서 아내의 역할과 애쓴 배우자의 공적에 대해 이번 여행 참석자 모두가 가슴깊이 생각하고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3개국 여행을 一瞥(일별)해 보면 이집트는 무겁고 그리스는 생각하고 터어키는 움직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거석문화는 수천년의 시간을 멈추게 한다. 사막의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낙타는 시간이 정지된 속에서 역사를 되새김하고 있는 듯하다.

신전과 왕들의 계곡에서도 삶 자체보다는 사후 부활을 위해 힘과 공을 들인 모습이 느껴진다. 혹시 오늘 이곳을 여행하는 우리가 1일 부활을 한 것인가요?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 아테네는 교육의 도시, 소크라테스의 감옥이 산중턱 나무숲에서 인간을 교육하고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이 값진 것은 당시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에 세워진 성당도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주춧돌, 벽면, 지붕 등 모두가 성금으로 건립되었단다. 우리도 독립기념관을 국민의 성금으로 지었는데 그 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런지.

터키에서 본 그루즈는 1,000명 이상의 관광객을 태운 알짜배기 관광 수입원이란다. 부산항, 인천항, 평택항, 궁평항에 이들 배가 들어오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말로 외국인들이 대한민국 경기도에 와서 돈을 쓰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실행해야 한다.

 

거대한 문화유적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화성을 하나의 덩어리 문화로, 효 문화로 정치의 문화로 이론을 확충해야 한다. 이른바 스토리탤링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역사드라마 드라마 李祘(이산)이 화성에 새로운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어 다행이다.

[각주] 이산 : 조선 제22대 왕(정조대왕, 1752년생, 재위 1776~1800).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대과(大科)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여 많은 과폐를 없앴다. 정약용과 함께 수원화성을 축성했다.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방송기획사, 제작자가 역사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당국은, 문화재를 관리하는 자자체는 그냥 벽돌 무너지는 것에 시멘트만 바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행궁복원과 앞뜰의 정비사업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고 심재덕 시장님의 문화사랑의 결과라고 본다.

[각주] 심재덕(沈載德, 1939년 1월 15일 ~ 2009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2·23대 수원시장과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호(號)는 상곡(桑谷)이며 미스터 토일렛(Mr.Toilet)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하다.

 

#돌마바오체 궁전은 웅장함이 있어요

돌마바오체 궁전은 카메라 사진 찍는 것도 돈을 받을 만큼 위세가 당당하다. 덧신을 신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로마양식, 이오니아 양식 등 좋은 건축양식이 복합되어 있단다.

1867년에 지어졌으며 금 14톤, 은 40톤이 발라져 있다. 이곳에서 마지막 황태자가 추방당했다. 황태자는 외국을 떠돌다가 택시기사로 살았고 말년에 실명한 채 조국을 잠시 방문했다가 다시 유랑생활을 했단다.

 

터키탕은 옥돌로 지어졌다. 천정 높이 36m, 4.5톤의 샹드리아. 771개의 기둥이다. 가장 멋진 궁전이다. 해안가의 좋은 자리에 위치하면서 외국 사신을 맞아들이는 문이 따로 있고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건물이다.

지하 저수조를 방문했다. 예레바탄사라이 :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지하 저수지인데 물고기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삼국시대쯤이라는데 그 당시에 이처럼 거대하고 섬세한 석조 물탱크를 만들었단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귀임할 시간이다. 공항 가는 길에 잠시 버스를 돌려세우고 바닷가에서 김밥을 먹었다. 운동기구도 있어 몸을 풀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에서는 홍합을 따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옥빛 바다 속에 홍합이 잘도 자라나 보다.

4박5일은 짧다고 할 것이다. 8박 10일이면 적당하다. 솔직히 13박15일이면 입맛도 혼돈이 오고 몸과 마음이 피로에 젖을지도 모른다. 참 정확하게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8박10일을 잡았으리라.

그리고 일행 모두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공무원 부부의 저력을 확인했다. 덥고, 건조하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자외선이 유난히 뜨거운 지중해 일정에 대해, 식사에 대해, 숙소에 대해, 관광코스에 대해 불평불만을 표하지 않으신 저력이 훌륭하다.

 

작은 일이라 할 수 있는 식당에서의 숟가락 위치하나 때문에 그날의 일정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8박10일의 전체일정을 망치는 어떤 여행객들의 사례를 경험했고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좋은 말을 보태고 격려하면서 스스로 즐거워지려 노력하면서 여행일정을 참 잘도 소화했다.

어린시절 자전거를 타고 공직에 들어와 30년이 지나가니 이처럼 큰 비행기를 타고 저 넓은 외국의 깊고 깊은 역사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내들도 즐겁고 기뻐하는 표정이 확실하다.

저녁에 출발하였는데 오후 2시에 도착했다. 시차 6시간이 나서 그러하단다. 내일은 6월5일이니 출근해서 길고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의 이야기를 전하자.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재미있었던 지중해 8박10일의 이야기를 전해주자.

역사를 거꾸로 여행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여행기간은 2008. 5. 26 - 6. 4이었다.  2008. 6. 20에 정리함/ 경기도의회사무처 근무중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