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고향마을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고향마을에 태어나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뜰 즈음 보이는 것은 산과 논밭, 하늘이 전부였다. 온통 초가집이다. 아랫마을 1층 건물위에 원두막 만한 건물을 올렸다 해서 구경을 갔다.

세상에 집이 2층이라니. 집은 단층이고 아궁이와 방고래와 굴뚝이 있어야 했다. 낙엽과 나무를 넣고 성냥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르기 불기운은 방고래를 덥히고 남은 연기는 윗목까지 돌고 돌아 굴뚝이 뻐근하게 빠져나와 하늘로 퍼졌다.

 

동산에서 놀던 아이들은 연기색이 흰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바뀔 즈음 무쇠솥의 밥이 뜸 들고 있음을 안다. 배꼽시계, 해시계, ‘연기시계’로 족했다. 가끔 오정 싸이렝을 들을 수 있다.

1975년경 시골동네는 ‘그린벨트’가 되었다. 땅 값이 오르지 않고 마을 진입로가 외통수인 것만 빼면 공기, 물, 신록, 여유, 삶의 만족도가 높다.

 

50년 전 동네가 그대로인데 몇 집은 개축을 해서 초가에서 기와가 되었고 더러는 2층 슬라브에 붉은 벽돌이 멋지다. 집터는 그 자리를 지킨다. 집터에 업이라는 동물이 재산과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어려서 40대이던 어르신들이 90세다. 고향에서나 타향에서나 공평하게 50년이 흘렀다. 2020-50=1970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문 2개짜리 차장이 차비를 받던 버스가 들어왔다. 어제 밤 막차가 아침 첫 버스가 된다.

고향마을이 좋은 것은 추억을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대 전후에 뛰어 다니던 들판, 길기만 했던 외나무다리가 이렇게 좁았었나.

 

철근 콘크리트 다리 위를 걸어보았다. 이 길을 학생들이 걸어가지 않는단다. 노랑색 버스가 동네에 와서 다 채우지 못한 1~6학년생 3~4명을 태워 아랫마을을 거쳐서 초등학교에 내려준단다.

 

어른들도 승합차 타고 12km를 달려 복지관을 출퇴근한단다.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고향마을에서 어른은 나이 들고 아이들은 재잘거리지 않는다. 나무는 풍성하고 녹음이 가득한데 젊은이가 없다.

이 아름다운 산자락에 20층 아파트 100채가 들어서는 것은 일장춘몽, 南柯一夢(남가일몽)일까.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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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