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만년필, 볼펜, 싸인펜. 잉크를 넣으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 해서 萬年筆(만년필)이라 이름 지었을 것이다.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글을 쓰다고 잉크를 담아서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한 발명가로서는 만년을 쓸 수 있다는 과대포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싸인펜이 나왔다. 검정, 빨강, 파랑 등 7색 펜인데 빨강과 검정이 많이 쓰였다. 검정색은 결재를 하거나 지시사항을 적을 때 쓰였다.

이름 석자를 흘려쓰기로 붙여서 쓰면 싸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다. 정작 결재라인에 승진하니 마우스 크릭으로 결재방식이 바뀌었다.

부하는 상사의 휘갈기는 결재소리에서 힘을 얻는다고 하는데 마우스 결재는 소리나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국장까지 온라인으로 결재가 끝났다.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문인들이 서재에서 쓰는 붓(筆) ·먹(墨)·종이(紙)·벼루(硯)의 네 가지 도구를 말하는데 이제는 싸인펜 하나가 붓, 먹, 벼루의 역할을 통합해서 행한다.

가볍고 작은 싸인펜에 종이만 있으면 시를 짓고 편지를 쓸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괴나리봇짐 속에는 반드시 문방사우가 있었을 것인데 아무리 작아도 돌을 깎아 만든 벼루이고 먹도 제법 무게가 나갔을 것이다.

 

그 불편함을 만년필 하나, 싸인펜 한 개가 대체한다니 대단한 인류의 발명품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필기구를 가볍게 여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랍 칸마다 볼펜, 싸인펜, 연필이 모인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다른 필기구를 쓰게 된다. 작은 수첩속에 들어가는 필기구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지인이 주신 ‘사서강의’라는 책에 줄을 그으면서 정독하고 있다. 검은 볼펜으로 핵심을 짚어가며 ‘검은펜’으로 독서를 하니 볼펜 잉크가 떨어졌다.

 

중학생때 받은 황인각 선생님의 편지에서 ‘푸르던 신록은, 볼펜처럼 힘이 없어지고’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볼펜이 다 닳아서 다른 펜으로 편지를 마무리해서 보내주셨다. 편지를 읽으면서 왜 나뭇잎이 볼펜처럼 힘이 없어졌나 짧은 고민을 했었다.

 

책상위 필통에서 꺼내어 언제라도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필기구를 보면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고충을 상상해 본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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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