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와 노트북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초등학생 때는 그림일기를 그리고 단어 한두개를 그림 사이에 써넣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노트에 연필로 일기를 적었다.

그날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는 일기는 선생님의 숙제이기도 하니 열심히 적어보았다. 사실은 그런 습관이 글짓기의 역량을 보충해 준 것 같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다보니 문장을 만드는 머릿속 생각이 넓어지고 대략 문장을 끊고 마감해야 할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잉크에 펜촉을 찍어서 글씨를 썼다. 뾰족한 금속의 필기감은 연필과는 달랐다. 펜촉으로 열심히 글씨를 쓰면 더 아름답고 멋진 글씨를 기록할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위로하니 수재 惡筆(악필)이다. 공부좀 하고 머리가 좋으면 글씨를 못 쓴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예쁜 얼굴을 주는 대신에 거친 목소리로 말하도록 만들어진다고 주변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래서 펑펑 우는 여자아이를 달래보니 우는 이유가 美人薄命(미인박명)이란다.

 

중국의 미녀 楊貴妃(양귀비)는 속병이 있었다 한다. 속이 쓰려서 얼굴에 인상을 쓰는데 그 모습에 당태종이 반했다는 것.

여인은 속이 아프다는데 그 모습이 예쁘다는 말이다. 그러니 미인박명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어라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니 여인이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수재악필도 변명을 해주고 싶다. 알아보면 될 글씨인데 잘 쓰고 못 쓰고에 차이를 두지말자.

정말로 인쇄된 글씨처럼 글을 쓰는 선배가 있었지만 수재악필의 반대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직에서 원하는 만큼 승짅하지 못했다. 솔직히 공직은 승진으로 평가받는다.

 

글씨만으로 군수가 되고 시장에 오르던 1960~1970년대라면 몰라도 타자기가 보급되고 워드프로세서가 일반화된 1990년 이후에는 역시 소통과 융합과 양보가 성공의 源泉(원천)이 되었다.

누구 앞에서 소신을 이야기할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이야 4년내내 선거운동을 하는 모양새이지만 평범한 범부에게는 가족과 술친구 이외에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정견을 말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도전을 한다. 누군가가 만든 제도권 안에서 소견이든 소신이든 생각과 주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강원도에서, 수원에서 정견을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제도권에 가서 7층 회의실에서 나름의 소견을 말했다.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은 스스로 도전정신을 발휘했을때 가능해진다.

 

가슴에 명찰을 달고 속주머니에는 응시표를 품고 나가는 일이다. 대략적 질문이야 예상을 하지만 구체적인 질문이 나오면 답해야 한다. 자신있는 질문이 나와도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답하고 주장을 펼친다. 마무리는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으실 것인데 이분들의 지혜를 모으고 빌려서 원하시는 분야의 사업을 발전시켜나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할 일은 모두 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이 담당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요구와 니드(need)를 잘 관리하고 혼합하고 융합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자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다 말하고 차분히 옛길을 걸어서 걸어서 오다가 중간지점에서 잠시 지인을 만난 후에 버스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잠들고 싶었다. 가능성이 낮지만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사를 모르는 바가 아니니 그냥 푹 잠을 자고 싶었다.

복분자에 소주가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지만 12,000보를 걸었고 긴장이 풀리자 스스로 잠이 온다. 그래 푹 자고 내일 또다시 양평의 서류를 준비하고 오산의 강의를 대비하자.

 

그러고 보니 춘천시청에서 전화가 와서 강의를 잡았다. 이제는 수첩을 가지고 외출해야 하겠다. 밖에서 일정을 잡을 일이 더러 생기고 있다. 조짐이 좋다.

열심히 뛰어서 적극행정 강의를 넘어 홍보강의 규제개혁 강의의 전문가 풀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으러 가자. 즐겁고 바쁘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이런 이야기를 노트에는 소상하게 적지만 노트북에서는 대략만 쓴다. 상세한 이야기를 타자하면 다른 분들이 알아챈다. 가족이야 다 아는 바이지만 주변분들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노트북의 특성에 맞게 추상적으로 적어두고 훗날에 어떤 좋은 일이 있으면 그때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말한다.

기자들이 기사를 보면서 "행간의 의미"를 새겨달라는 말, 이해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말도 이런 의미를 담는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