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엿#찹쌀엿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조선 정조대왕(1752~1800)의 시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시골에서 농사를 잘 지은 것이 임금님 덕이라는 생각을 한 농부가 수수엿을 만들어 짊어지고 한양으로 올라와 궁궐 앞에 도착했다. 임금님께 감사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은 넓고 문은 굳게 닺혀 있었다. 병사들은 임금님께 엿을 드린다 하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며 들여보내지 않았다. 이틀을 굶고 지쳐 파김치가 된 농부는 성곽 한구석에서 슬피 울었다.

저녁에 민정시찰에 나선 왕은 성곽 한편에서 구슬프게 우는 백성을 발견하였으므로 당연히 살펴보게 되었다. 평범한 양반 복장을 한 임금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대는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예서 울고 있소?”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인데 풍년이 들어서 임금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수수엿을 가져왔는데 전할 길이 없어서 울고 있지요.”

“거참 고마운 일이군요. 그대가 임금에게 이 엿을 올리면 벼슬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인데 고을 원님벼슬을 내리면 받겠소?”

“예, 감사한 일이지요. 고을원님 벼슬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임금님과 농부의 벼슬 이야기는 관찰사, 참판, 판서를 지나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게 되었다.

임금은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럼, 임금이 당신에게 임금자리를 내어주면 임금이 되겠소?”

그 순간 임금님의 눈앞에 큰 별똥별이 번쩍하고 지나갔다. 농부가 임금의 이마를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다.

“예끼 여보슈, 이 나라의 임금은 한 분이신데 어찌 그런 망발을 입에 담으시오!”

 

임금은 한방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이 있었다. 임금은 오직 한분이라는 말이나 그런 되지도 않는 막말을 하는 자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에 임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임금은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임금을 만나서 수수엿을 전할 길을 알려주었다. 저쪽에 호랑이 큰 그림이 있는 대분으로 가면 임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임금은 還宮(환궁)하면서 성문 근무자에게 이런 행색의 백성이 오면 즉시 임금에게 데려오도록 명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 농부는 어제 선비가 일러준 대로 호랑이 그림이 있는 성문에 이르자 一瀉千里(일사천리), 요즘 말로 1472, 원스톱(one-stop)으로 임금 앞에 당도했다. 왕에게 절하고 수수엿을 올렸다.

 

“이처럼 좋은 선물을 주시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요. 그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시오”

춘향전의 한 대목과 같은 정황이다. “춘향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남원 관아에서 춘향에게 암행어사 이몽룡이 호기있게 던진 바로 그 臺詞(대사, 臺辭)가 아니던가.

농민이 고개를 들어 왕을 보는 순간 농민은 사색이 되었다. 임금은 다름 아니라 어제 밤 왕위를 받겠느냐 물었고 그래서 주먹으로 한 방 날려준 그분이 아니시던가.

 

“이제는 죽었구나.”

그 순간 왕은 아래로 내려와 농민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수수엿을 고맙게 받겠으며 어제의 폭행을 용서한다 말했다. 임금은 이 농민에게 고을 사또의 벼슬을 내렸다.

옛날 이야기에는 항상 나오는 다음 댓구가 있다. 수수엿으로 고을 사또가 되었다는 소식은 근동에 널리 퍼졌다. 이에 욕심많은 영감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 평범한 농민이 수수엿으로 사또 벼슬을 얻었다니 나는 참쌀엿으로 관찰사의 자리를 얻어야겠다.

찹쌀로 달콤한 엿을 준비한 노인은 역시나 한양 성곽의 한구석에서 억지로 울고 있었다. 수일전에 농민이 울던 그 자리에 이번에는 선비차림의 영감님이 또 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님이 매일저녁 민정을 살피러 나오시는 것이 아니었다. 수일을 기다려 지쳐갈 무렵에 임금님이 오셨다.

 

임금님과 영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참쌀엿을 드리면 벼슬을 주실 것이다. 원님, 관찰사, 한성판윤, 참판, 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아, 결정적 실수. 선을 넘고 말았다. 임금을 물려주면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래도 임금은 다음 날 아침에 호랑이 그림이 있는 성곽문으로 가보라 안내했다.

 

이후 왕을 수행한 경호실장이 곤장 50대를 치고 찹쌀엿과 함께 영감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과한 욕심이 화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어르신의 膝下(슬하) 말씀에서는 곤장이 아니라 더 큰 형벌을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착한 농부를 생각해 욕심 많은 노인의 처벌을 조금 순화한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