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기의 미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절하기의 미덕

홍보강의에서 기자와의 식사는 평생의 자동차 보험과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면서 사고가 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기자와의 식사에서 나쁜 보도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게도 언론인과 식사하고나면 우리 부서가 언론에 불리한 상황에 노출될 때에 작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평생의 직장생활에서 한 두번은 언론의 도움을 받거나 언론의 비판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이를 적정하게 조율하고 비판의 수위를 낮추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언론을 통해서 좋은 기사를 내보내서 고객들의 칭찬을 들 을 수 있고 매출에 도움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떤 잘못된 사건이 기사로 나갈 때 기사의 水位 (수위) 조절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1989년경 태풍이 심해서 비상상황으로 일찍 출근하는 길에 수원세무서의 현판이 바람에 날아간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낸 세금 나를 위해 쓰인다"라는 내용의 홍보판으로 생각되는데 후반부의 절반이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낸 세금 바람에 날아갔네"라는 사진기사로 쓰임새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국민일보 기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니 처음에는 좋은 아이템(item)이라면서 반색을 하였지만 이내 사진촬영 나가기를 포기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현장에 카메라 들고 가기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몇 일전에 세무서장님이 준비하신 기자단 오찬에 참석하였던 일을 상기하면서 작지만 될법한 기사를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30년도 넘은 일이지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공무원이든 공기관이든 사기업의 홍보실이든 평소에 기자들과 소통하고 교류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무서 홍보판이 바람에 날아간 것이지 세금이 날아간 것은 아닌데 하필 "내가 낸 세금..."은 남아있고 뒷부분이 날아갔습니다.

당시 공보실 2년차 만 30세 7급 공무원의 생각에는 날아간 자리에 "태풍에 날아갔네"라고 사진 설명 기사를 올리면 살짝 미소짓는 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던 바입니다.

 

사실 30대 7급 공무원으로서 상상력이 탱글거리던 시절 이었지요. 기자님도 한 살 위인가 그러니 비슷하게 기자정신이 충만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혹시 2018년이었다면 스마트폰을 들고 달려갔을 것이지만 아나로그 카메라 시절이라 그 절차와 비용과 수고가 귀찮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 제 손에 핸드폰이 있었다면 여러 컷 찍어서 기자실에 풀로 돌렸을 것이고 최소 3~4곳 지방지에 사진 기사로 나왔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에피소드입니다.

그래서 홍보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을 기준으로 기사를 창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안을 뒤집고 사각으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살피고 분석하고 쪼개는 과정을 마음속, 머릿속에서 반복할 때 기사가 독자의 공감을 받는 기사가 탄생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같은 자료라도 보는 기자에 따라서 다양한 분석을 하고 타이틀을 잡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보도자료를 자연 보호헌장처럼 전문을 만들어 제공하기 보다는 간략한 표지 1매에 풍성한 첨부자료로 제공하기를 제안합니다.

보도자료는 식당의 식재료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식당 사장님이 재료를 구매하여 다듬고 썰어서 제공하면 주방에서는 자장면과 짬뽕만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밀가루, 양파, 배추, 고기 등 원재료를 제공하면 주방장은 우동, 짬짜면, 탕수육, 완자탕 등 창조적인 요리를 조리해 낼 것입니다.

언론에 홍보하는 보도자료 역시 그래서 원단 재료를 제공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홍보에 지름길이 없고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어 보이지만 우리 사회는 신문, 방송을 통해서 소통하고 여론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살아갑니다.

요즘 정치권은 더더욱 더 언론에 민감하고 언론에 나가기 위해 때로는 자신을 과감히 희생하기도 합니다. 손해보는 것 같지만 존재감은 키우는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경기도청 공보실에 근무할때 어떤 상사는 禁斷現象 (금단 현상)을 겪는다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도정에 홍보관련 사건사고가 나지 않으므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금단현상이란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일 때 발생하는 신경성 부적응증이라 푸는데 홍보실, 공보실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이 약해지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일하면서 우리가 추진하는 업무를 어떻게 무슨 방식으로 홍보하고 국민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홍보맨이라면 작은 것을 크게 키워서 홍보하고 알리고 큰 사건을 줄여서 일상의 시행착오 정도로 줄인 기사로 막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