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세월이 흐르는 소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시간과 세월이 흐르는 소리

고등학생때 선배가 백일장에서 ‘소리’라는 소재로 큰 상을 받았습니다. 며칠동안 소리에 대한 시를 여러 번 쓰고 다듬었다고 합니다. 최근까지 시간과 세월을 소재로 쓴 글이 있습니다.

세월이 긴 것인지 시간이 더 오랜 것인가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만, 일감 시간은 하루중의 일인듯 느껴지고 세월은 최소 1년이상이 축적된 것인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월이든 시간이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의 단위임에 다름은 없는 것입니다. 긴 시간이라고도 하고 유구한 세월속에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과정의 표현을 시간이라고도 하고 세월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과 세월의 틈새에 서 있는 우리의 인생의 의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우선은 어린시절인 1965년 전후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새롭고 기쁘고 아름다웠습니다. 봄날에는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동네 풀밭에서 하루종일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았고 혼자서 노는 날도 있었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세월이라는 것이 끼어들어서 4명의 친구들을 갈라놓았고 시간이라는 틈새 역시 더는 친구들을 만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대로 그 시절 그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어하는데 시간과 세월이 거리를 만들고 벽을 쌓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가니 직장에 다니고 군대를 가고 다시 돌아와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초등학교 6년 친구들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1965년부터 6년간은 매일 학교에서 만나고 동네에서 함께 놀았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2명으로 갈라지고 고등학교가 다르니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지인의 결혼식에 열심히 참석합니다. 그 곳에서 시간과 세월을 거슬러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을 만나고 동네 어르신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서 통장송금이 늘었습니다.

전에는 예식장 하객이 기본으로 200명이 오니 양측을 합하면 400명, 이전 결혼 부부와 우리측, 그리고 다음 결혼식 순서를 기다리는 하객들이 뒤섞이면 1,000명이 그 5층 예식장 건물을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49명까지만 허락받았으므로 그 인원은 25%로 줄었고 어쩌다 결혼식에 가면 발열체크줄, 입장줄, 화과자 받는 줄을 서야 합니다.

좀 사는 사장님 자제분 결혼식에서 본 봉투내는 줄은 사라졌습니다. 그 봉투낼때 왜 꼭 방명록을 써야 할까요. 그냥 봉투만 내도 오신 것을 확인해 주실 것인데 말입니다.

 

어린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은 시간과 세월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고 시간과 세월이 가져다 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사람을 만나고 함께하다가 이별하고 別離(별리)를 경험하고 부모가 떠나고 친구를 영안실에서 인사하는 과정을 거쳐서 어느 날 자신도 그렇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과정이고 생노병사의 절차인데 그 네 글자 사이에 시간과 세월이라는 공간적 계산에 의한 기간이 들어옵니다.

초등학교 6년간의 시간, 중학교 3년간의 세월, 그리고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보낸 기간 동안에 우리는 늘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은사님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은 젊은 시절에 만난 사람과는 다른 사회적인 관계성을 갖는 이들을 접하게 합니다. 그래서 과연 살면서 자주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은 일인지 한곳에 장기간 머무는 것이 유익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20년 넘게 한집에서 살지만 아파트의 특성으로 인해 앞집, 윗집, 아랫집 사람을 상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웃집 아파트에 초대받아서 차 한잔을 한 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농촌마을이나 전원주택에 산다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오가면서 친숙할 것인데 아파트는 그냥 기계적인 삶의 공간입니다.

정말로 아파트에서는 시간과 세월이 흘러도 내 집 그 공간이 있을 뿐입니다. 20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이지만 우리가 아는 그 면적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건너편 20층 아파트는 하나의 장식용 예술품처럼 우리의 앞을 막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파트의 벽을 모두 헐어버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벽채를 털어내고 유리로 재시공하면 건너편 아파트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집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과 세월을 느껴보고 자신을 반성하고 비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멘트 벽으로 숨막히게 단절된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몸과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긴 세월이 흘러도 개선되지 못합니다.

 

미래에 과학이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엘리베이터식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아파트가 층을 바꾸고 방향을 변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을 살면 1층 아파트가 20층으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다르고 마주하는 옆집이 바뀌는 그런 아파트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1층에 살던 초등학생이 6학년이 되니 6층에 산다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청년이 되면 20층에 살고 다시 1층으로 올 즈음에 결혼을 하겠지요. 결혼한 부부의 아이는 1살에 1층, 5살에는 5층에 살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과 시선의 차이를 자신의 지식과 자산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파트 뿐 아니라 직장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꾸준히 승진하는 회사가 있고 직장이 있습니다만 국회의원은 늘 그 모습입니다.

 

초선, 재선, 오선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할에 있어서 본회의장을 보면 모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수가 늘수록 말의 강도와 탁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번 당선되면 지역주민의 잔소리가 늘고 민원요구의 내용이 깊어지고 규모는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도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지만 지역주민의 잔소리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도 커지는 것입니다.

 

결국 소리는 시간과 세월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매체인가 생각합니다. 고요한 공간에 소리가 없다면 허무한 일입니다. 단조로운 시간과 세월의 틈을 메워주는 소리가 있어야 하고 큰 소리든 잔소리든 듣고 다른 귀로 흘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부사이이고 세상 살아가는 이치인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