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를 살린 며느리의 지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시아버지를 살린 며느리의 지혜  

30대에는 직장에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오늘 할 일이 줄을 서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일하면 또 다시 다음 일이 기다리는 것이니 이는 마치 시골에서 하천을 파고들면 물이 고이고 양수기로 퍼서 논으로 보내면 다시 물이 차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동화같은 이야기에 하늘의 달을 따주면 병이 낫겠다 해서 금으로 달모양의 목걸이를 만들어주니 정말로 씻은 듯이 쾌차한 공주가 그날 밤 다시 달이 뜨면 목걸이의 달이 가짜임을 알고 또다시 병이 날까 염려하는 임금이 있습니다.

 

 

이에 신하가 공주에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합니다. 아이의 乳齒(유치)가 빠지자 새로운 이가 생겨납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니 상류에서 새로운 물이 흘러와 채워줍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니 다른 별이 생겨납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저녁에 지지만 다음날 아침에 또다시 떠오릅니다. 사과나무에서 과일을 따면 다음해에 다시 꽃이피고 잎이 난후에 열매가 열립니다.

 

공주는 일상적인 자연현상에 대한 신하의 설명에 공감을 합니다. 그러자 신하가 슬쩍 질문으로 유도합니다.

“어제 따서 공주님 목에 걸어드린 달은 어떠할까요?”

“다시 새로운 달이 떠오르겠지요.”

대화의 흐름과 분위기에 맞춰서 상상력이 뛰어난 공부가 답했습니다. 그런 상상력을 가진 공주이니 하늘의 달을 따달라 했던 것입니다.

 

공주가 하늘의 달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발그레한 모습이 아름다워서 조금 더 가까이 보고, 몸에 간직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결국 임금님과 신하의 걱정은 지구가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杞憂(기우)였습니다. 杞憂(기우)란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거나 그 걱정을 말합니다.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처음부터 하늘의 달을 따다가 목에 걸어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공주의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하였는가를 고민했어야 합니다. 하늘의 달을 따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임을 나이어린 공주의 시선에서 찾았어야 합니다.

고정관념으로 한번 따면 사라진다는 생각은 아마도 벼슬아치란 그 직에서 파직되면 더 이상 權勢(권세)를 부리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豫斷(예단)해 버린 것 같습니다. 순수한 공주의 마음을 사악한 관리들의 생각으로 이해하기에는 서정과 여유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어리고 젊은이의 奇特(기특)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삼년고개와 부연 이야기입니다. 삼년고개는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삼년을 사는 것으로 해석한 며느리 이야기입니다.

시아버지가 장에 가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삼년고개에서 넘어지고 말지요. 신경을 쓰면 쓸수록 실수를 합니다. 신경쓰지 않고 걸어왔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인데 삼년고개에서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시아버지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앓아누웠습니다. 하루 이틀 몸져 누운 시아버지를 걱정하여 어린 며느리가 문안을 드립니다.

“아버님, 많이 아프세요. 아프신 이유를 말씀하세요.”

“네가 알 것 없다. 네가 알아서 무슨 수가 있겠느냐?”

“그래도 이유를 알아야 약을 쓰지요.”

며느리가 연거푸 질문을 해대자 시아버지는 귀찮아서 답합니다. 내가 저 삼년고개에서 넘어졌단다. 이제 나는 삼년밖에 살지 못하겠구나.

“아버님 3년 고개에서 한번 넘어지면 3년을 사는 것이니 더 많이 넘어지시면 더 많이 사시겠군요.”

생각해 보니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맞는 말인 듯 여겨집니다. 노인은 당장에 달려가서 고개정상에서 아래까지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풍문에 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은 이 고개에서 6만번을 굴렀다고 합니다.

 

동방삭이 3,000년을 살았다고 하니 아마도 1,000번 정도가 삼년고개의 效驗(효험)을 본 것인가 생각합니다. 보약도 과하면 해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동방삭은 ‘내가 삼천년을 살았지만 검은 숯으로 흰 숯을 만든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호기를 부린 결과 저승사자의 손에 잡히고 말았답니다.

그의 天命(천명)은 30十年(십년)이었는데 옥황상제님의 인명부에 붓으로 점하나를 슬쩍 내리치니 三千(삼천)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남이 되는 세상사라는 대중가 가사가 있습니다. 붓으로 그은 획 하나가 2,970년을 연장하는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100배 남기는 장사를 한 셈이군요.

요즘 땅투기로 국회의원 여러 명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신의 직장이라는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재판을 통해 벌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남겨먹는 투기는 사라지지 않으려나 봅니다.

 

다음으로 附椽(부연)이야기입니다. 婦椽(부연)이라고도 합니다. 며느리의 지혜로 큰 성공을 거둔 대목장, 목수의 이야기입니다.

나라에서 100년 동안 모으고 관리해온 목재를 모두 꺼내놓고 궁궐을 짓는 歷史(역사)적인 役事(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목장으로 선임된 인물로서는 가문의 영광입니다. 대를 이어 목수로 일해왔지만 당대에서 임금님의 명을 받들게 된 것입니다.

신바람이 난 대목장은 궁궐을 짓는 현장에 나가서 우선 목재를 재단하였습니다. 수 천개의 석가래 나무를 자르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실수로 그 길이를 잘못 정하는 바람에 모든 목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대목수는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싸매고 몸져 누웠습니다.

이에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걱정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몸져누운 이유를 자세히 밝히지 않으니 그냥 말도 못 꺼내고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내 며느리가 물을 가져다 드리며 물었습니다.

 

“궁궐을 지으셔야 할 아버님이 누워 계신 이유가 있습니까?”

“네가 알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작업을 중단하신 이유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질문은 스므고개처럼 이어졌고 결국 답변하다 지친 시아버지가 自初至終(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이에 어린 며느리의 답변은 명쾌합니다.

“아버님, 잘린 부분을 석가래에 이으시면 되겠습니다.”

“이으면 된다고?”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은 대목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평생을 나무를 깎고 맞추고 기둥과 대들보를 연결하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인데, 짧으면 석가래를 이으면 되겠구나.

 

벌떡 일어난 대목장은 현장으로 달려가서 잘려나간 목재를 직사각형으로 깎아서 둥근 석가래에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시 이틀 쉬고 온 대목장이 된 것입니다.

궁궐 공사는 재개되었고 터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린 후에 석가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잘라낸 석가래 길이만큼 지붕을 만들고 부족한 만큼은 네모로 다듬은 목재를 덛대어 추녀 끝으로 내밀었습니다.

기와를 얹고 용두래를 완성하고 내려와 보니 추녀끝이 2개의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추녀 끝으로 내민 기왓장이 만든 편안한 곡선과 석가래에 덧댄 목재의 수려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왕께서 준공 직전에 방문하여 살펴보니 이전까지의 단촐한 추녀가 아름답고 예술적인 작품으로 변모한 것을 발견하였고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목수는 임금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고,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의견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함은 물론 더 큰 성과를 거양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도 부잣집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는 반드시 부연을 달게 됩니다. 명찰에 가면 역시 대웅전의 웅장함이 눈에 들어오는데 丹靑(단청)까지 가미된 부연이 그 수려함을 자랑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한옥의 아름다운 추녀를 附椽(부연)이라 불렀고 막내며느리의 지혜가 가미되었다 하여 婦椽(부연)으로 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설 중에 ‘부연하여 설명하면’이라 해서 해설을 의미합니다.

편지 말미에 추가하는 글을 PS(postscript)라 하며 한자로 題字(제자)하면 追信(추신)이라 할 것입니다. 追加書信(추가서신), 독서 후기 등으로 풀어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앞길이 막혔을 때 돌아갈까, 돌파할까, 포기하나 다양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젊은이의 말을 귀 담아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자신의 판단이 모든 것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마음 자세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를 판단함에 있어서 자신의 고집이나 그간의 固定觀念(고정관념)에만 따를 것이 아니고 그 이전, 그 이후, 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갈 길이 있음을 명심해서 결정하자는 의견을 드립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