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별장에서의 오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용인 별장 오찬

비가 내리는 오후에 일행은 용인의 평온한 산마을의 어느 별장급 살림집의 뒷마당에 초대되었습니다. 3시에 도착하니 포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마법의 양탄자 아래에 목조 식탁이 자리하고 그 옆에는 미항공우주국 나사에서 빌려온 듯한 지구본 모양을 한 검은 바비큐 장치가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습니다.

 

이 집은 귀향, 귀농, 귀촌이라는 표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이 혼란스러워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방황한 끝에 도착하니 주인장이 작은 우산을 들고 일행을 기다립니다.

 

 

차 한 대를 주차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아래 작을 풀섭 공간에는 주인의 차가 떡하니 자리할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의 배치부터가 도심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잠시 환담을 나누고나니 주인장이 장갑을 끼고 바비큐 요리작업을 합니다. 어제 시장에서 사온 돼지생고기에 서양식 양념을 얹어서 수 시간 약한 열기에 쪄낸 요리입니다. 방송에서나 봄직한 요리의 자태를 직관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봄날의 오후이지만 비가 내리니 서늘합니다. 주인께서 점퍼를 내주어 입으니 등이 따스합니다. 등 따스고 배부르면 최고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인간이 이처럼 연약한 것인지 쎈서의 예민함이 컴퓨터를 능가하는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준비해온 와인형 술 한잔을 들어 건배를 하고 점심도 저녁도 아닌 오후의 식탁위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술이란 1인1병은 힘들지만 4인4병은 쉽습니다. 8인8병은 물입니다.

 

주법과 수학의 법칙은 일치하지 못합니다. 예열되어 부드럽게 출발하는 6기통 엔진처럼 오늘 4륜의 술꾼들은 작정을 하고 술을 마십니다.

만둣국의 국물은 자금성 주방장 실력이고 돈스파이크가 음악보다 요리에 나서는 이유를 알게 합니다. 부드러운 식감, 깊이있는 바비큐는 술을 부르고 한잔 마시고 나면 야채와 곁들이는 바비큐의 불향이 행복을 불러줍니다.

 

술을 배운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 자찬했습니다. 부부대화에서 아내를 만난 부모님을 만나 태어난 것 다음으로 행운이라 말해야 합니다. 지인들과 대화중에 부부의 만남 사례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업무와 관련해서 일을 하다가 호감이 즐어나 결혼한 부부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미팅에서 만난 고등학생이 결혼한 사례가 있고 대학교 1학년때 책에 커피를 업지른 학생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그 책을 손수건과 휴지로 닦아주고 떠난 학생을 3개월후에 다시 만나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 친구 덕으로 오늘까지 함께하고 있답니다.

 

누구는 부부가 전생의 원수지간이 만나서 이생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는 과정이라면서 부부는 본래부터 싸우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가 우리 사회생활에서 거래처나 외부인사에게는 높은 톤으로 말하고 부부는 참으로 일부러인 듯 퉁명스럽게 말한다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는 같은 곳을 향해 나가고 한방향을 보며 살아가면서 성격, 식성, 나중에는 얼굴이 닮아가는 인연이라고도 합니다.

 

일행중에 기타연주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고 주인장도 기타연주를 애호하는 바이므로 잠시 고급 수제기타가 등장했습니다. 팝송으로 시작된 연주 배틀은 이은하의 봄비와 최백호의 가을에 떠나지 말고 차라리 하안 겨울에 떠나라는 노래로 이어집니다.

음악쪽에서 조차 재능이 없는 바이므로 최백호의 노래는 어머니를 먼 나라로 떠나보낸 아들 최백호의 심경이라 말하니 그런 깊은 의미가 있음을 이제 알았다며 응수해 주십니다.

 

술자리는 절정에 이르니 소주와 맥주 빈 병이 늘어나고 채소와 바비큐가 추가됩니다. 쌈을 놓고 고기를 올리고 파채를 곁들인 후에 콩나물을 올린 후 된장을 찍어서 먹는 비법을 주인장이 소개해 줍니다. 이후 여러번 같은 쌈 레시피로 먹은 바 그 맛에 실패가 없습니다.

추가된 닭구이는 고추장을 소스로 먹으니 그 풍미가 깊습니다. 1敲手(고수)2名唱(명창)이라던가요. 음식에도 어우러짐이 있고 상극지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비큐는 어느 야채와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콩나물을 적정하게 삶아서 문드러지지 않고 바삭거리지도 않는 아삭함의 극치를 완성해낸 작품성 반찬입니다. 식탁위의 모든 고기와 야채와 술잔이 강해지다가 약해지는 봄비의 초여름을 향한 연주의 향연속으로 흘러가더니 두분의 기타연주로 완성된 것입니다.

연주를 못하니 봄비라는 노래와 연주를 듣고 드라마 봄비를 이야기합니다. 김자옥, 이정길, 박근형 주연의 봄비는 시골에 살 때 흑백TV로 본 최초의 일일 연속극입니다.

 

당시에는 토요극장과 일요명화를 통해서 서구의 영화를 많이 보았고 그런 경치와 스토리를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생충, 미나리 등 여러편의 영화가 세계시장을 누비고 그 중심에 우뚝서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식사의 압권, 백미, 탑은 숙주가 올려진 국수입니다. 육수의 깊은 맛이 맛있는 바비큐맛을 데려갔습니다. 어느새 입안에는 새로운 음식을 먹겠다는 준비를 마칩니다. 숙주의 아삭임은 콩나물의 맛과는 다른데 그 수준이 쌍벽입니다. 같은 부엌, 동일한 주방의 인덕션 열기로 콩나물도 맛있고 숙주도 맛갈나게 할 수가 있는 것일까.

 

대리운전이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것은 소화를 시키고 음식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가야 하나요.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하는 야생의 세계가 오늘은 부럽습니다. 연료를 채우고 식탁에서 식고 있는 고기를 얹어서 열기와 불향을 더한 후에 야채에 싸서 더 먹고 싶은 마음입니다. 거기에 콩나물의 깔끔한 맛과 숙주나물의 아삭임 소리를 첨가하면 맛의 행복이 건너편 산 정상을 맴돌 것 같습니다.

 

봄날의 행복한 식탁 이야기였습니다. 살면서 잠시 시간을 내서 여유로운 산 중턱의 뒤편 잔디밭이 넓은 집 마당에서 바비큐와 야채와 술과 국수, 그리고 만둣국을 먹는 행복은 평생의 기억속에 채색될 것입니다.

치매가 와도 뇌리속에 고르게 스며들어서 어느 나이를 먹어도 오늘의 식사정경과 미각과 식감은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준비하고 진행해주신 부부 두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