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한방울의 의미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잉크 한 방울의 의미

잉크 한 방울이 종이위에 떨어져 번지면 그냥 추상화처럼 보일 것입니다. 순간 종이 한 두장을 버리게 되었구나 안타까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부분을 잘 활용하면 미술 기법 중 하나인 마아블링(Marbling)으로 진전할 수도 있습니다.

 

만년필에서 한두 방울로 종이 위에 떨어지지 않고 차분히 종이위에 글씨를 쓰면 문장이 되고 이를 더 축적하면 책이 되어 발간되어 독자들에게 작가의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가끔은 만년필의 파랑 잉크가 흰색의 Y-셔츠를 물들이거나 양복 안감에 잉크가 스며들기도 합니다. 아내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남편은 크게 야단을 맞습니다.

 

그래서 잉크 한 방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잉크는 물속에 푸른 색, 검정색을 나타내는 소재가 혼합된 액체입니다. 옷에 물감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캔버스(canvas)위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기도 합니다.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 도넛을 만드는 능력자들이 많습니다. 연기를 품어 내서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작은 원을 넣기도 합니다. 공중으로 흐트러지는 것으로만 생각한 연기가 적절한 손길을 만나면 멋진 구름이 되고 양이 되고 새의 형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잉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떨어지면 잉크 한 방울이지만 펜촉에서 적절한 모세관 현상을 받으면 글씨로 종이 위에 나타나게 됩니다. 글씨는 쓰는 이의 생각을 전하는 수단이 됩니다. 다른 명사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매신저가 됩니다.

종이 위에 쓰여진 잉크를 다시 물방울 형태로 되돌리는 기술은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오래전 편지를 펼치지 않고 읽어낸 기사를 보았습니다.

 

300년 동안 밀봉돼 있던 손 편지의 비밀이 풀렸다. 과학자들은 복잡하게 접힌 편지를 펼치지도 않은 채 안에 담긴 내용을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공동 연구진이 가상으로 펼치는 기술을 이용해 1697년 유럽에서 작성된 손편지를 읽는데 성공했다고 씨넷을 비롯한 외신들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성과를 공개했다.

 

연구 대상이 된 편지는 1697년 7월 31일 작성됐다. 편지 작성자는 법률 전문가인 자크 세나크(Jacques Sennacques). 네덜란드 헤이그에 사는 사촌 피에르 르 퍼스에게 또 다른 친척인 다니엘 르 퍼스의 사망통지서 등본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당시 관행대로 이 편지는 복잡하게 접혀 있어 쉽게 개봉하기 힘들었다.

 

편지가 작성된 무렵엔 봉투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낼 때는 남들이 내용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겹으로 접었다. 접은 편지는 실로 꿰매거나 왁스로 밀봉했다.

세나크의 편지 역시 이런 복잡한 ‘편지 잠금(letterlocking)’ 기법으로 밀봉했다. 이렇게 밀봉된 편지는 찢지 않는 한 안에 담긴 내용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찢는 순간 역사적 유물인 편지를 훼손하게 된다.

이번 연구는 이런 고민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MIT 도서관의 토머스 패터슨 후견인인 자나 담브로기오는 “편지 잠금은 수 세기 동안 여러 나라와 사회계층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담브로기오는 ‘네이처’에 발표된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다.

이들은 비밀을 풀기 위해 ‘가상 개봉’ 기법을 사용했다. 편지 개봉 작업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런던 킹스칼리지 연구팀이 함께 참여했다.

 

가상 펼침 기법을 활용해 접힌 편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고선명 3D 스캔을 할 수 있는 특수 X레이 기기를 제작했다. 그런 다음 자동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편지 내용과 복잡한 접기 방식 이미지를 생성했다.

연구팀은 “가상 펼치기는 접혀 있는 서류 더미의 CT 스캔을 분석한 뒤 평면에 내용을 재현하는 컴퓨터 처리 기법이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두루마리나 책을 비롯해 한 두 번 접혀 있는 문서들을 스캔하는 것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성공했다. 하지만 복잡하게 접혀 있는 편지를 성공적으로 읽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독에 성공한 편지는 헤이그 우체국장이던 시몬 드 브리엔이 상자에 보관했던 편지 중 일부다.

‘브리엔 콜렉션’으로 불리던 이 편지는 총 3천148통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577통은 한 차례도 개봉된 적 없다.

 

연구팀은 이 중 몇몇 편지를 가상 펼침 기법으로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밀봉된 많은 편지들의 비밀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수십년전에 불치병에 걸린 부자들이 냉동인간이 되어 지금도 자손들이 관리비를 부담하느라 힘들어 한다는 다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당대 의료기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하지만 후대에 의술이 발전하여 완치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함에 담겨 후대에 전해진 3천148통의 편지들은 여러 번 접혀있으므로 펴는 순간 바스러진다고 합니다. 이를 읽어보기 위해 고도의 IT기술을 적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치병으로 여긴 질병을 후대에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는 기를 하고 냉동인간으로 버티는 분들에게도 새생명의 기회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잉크 한방울이 그냥 물 위에 퍼지면 물속에 희석되어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종이 위에 정갈하게 글씨를 쓴다면 역사적인 작품, 문화가 탄생한다는 점을 가슴깊이 느끼는 바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작은 노력과 날개짓이 속절없이 대부분 사라지겠지만 후대에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새로운 역사속의 작은 사건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학을 동원하여 읽어낸 편지의 내용 중에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가족 중 누군가의 사망진단서를 준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이야기는 편지의 내용이 아니라 펼치면 부스러지는 편지속의 글을 읽어낸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