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나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세월이 흐르고 나면

공직이라는 자리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강화 석모도에 보문사가 있습니다. 신라시대 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했다 전하는 고찰입니다.

특히 석모도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의 마애관음보살은 탁트인 서해를 바라보며 중생들을 살펴주십니다만 마애불까지 가는 길의 계단은 419개입니다. 젊은이가 15분 이상 힘을 내서 걸어야 도착합니다.

 

 

보문사 뒷편 마애불에 올라가는 것을 공직에 비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단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니 한 단씩 차분히 올라갑니다. 누구나 포기하지 않으면 정상에 올라가 마매불을 친견합니다.

개인의 시간차는 있지만 올라간 거리는 같습니다. 공직이 또한 그러합니다. 공직내내 올라간 시간은 같습니다. 60세 정년이라는 종착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고 풀리지 않으면 다음 해로 넘기기 때문입니다. 공직은 사업도 영업도 아닌 관리입니다. 매년 목표를 정하는 것은 기업과 같겠지만 결산은 다릅니다.

공공의 예산은 '조기집행'을 할 정도로 지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공공재원을 집행해서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간은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영업실적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수익,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경영입니다. 그러니 비용을 들이고 수입, 수익, 이윤이 없으면 기업은 투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행정은 수익이 없어도 투자를 합니다.

 

가끔은 3가구 사는 개울 건너는 교량을 과대설계해서 언론의 비판을 듣습니다. 1차로 편도차선의 교량으로 충분한데 나름은 훗날에 인구가 늘 것을 대비하여 왕복 2차로 교량을 건설합니다.

30억원을 들여서 도시계획도로를 포장하지만 군수님, 의장님 참석해서 준공식날 박수치고 나면 주변사람들의 고급 주차장이 됩니다. 도로의 연결성이 낮아서 효율성은 없습니다.

기업에서는 생각조차,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회사경영은 수익이 있어야 투자를 합니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영업을 중단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茶飯事(다반사)입니다. 다반사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라는 뜻으로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차를 마십니다. 숭늉도 일종의 차로 생각합니다. 기업인은 수익을 위한 사업의 타절, 중단을 다반사처럼 이어갑니다. 요즘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합니다.

귀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신분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는 만큼, 윤리적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대기업은 사회공헌팀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활동을 통해서 기업을 홍보합니다.

 

돌이켜보면 공직은 추상을 바탕으로 현실을 만들어가는 아트입니다. 8급 실무자일때에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하겠다던 공직시험 면접에서의 답변을 실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에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부서가 하는 일이 국민, 도민을 위한 일이고 그 조직내에서 잔심부름일지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그 목표에 접근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세월을 지내보니 당시의 판단과 생각이 현실에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정으로 일하다보니 나이들고 자리를 옮기면서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국민을 위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더 큰 길로 나간 선배들이 몇분 있지만 대부분의 동료, 선후배들은 공직이라는 큰 그림보다는 공무원 퇴직자라는 조금 작지만 소중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직의 과정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로 차분히 이어가면 20대에 실무자가 되고 50대에 관리자가 되어 일하다가 어느날 스르르 '부잣집 엄나가듯' 소리없이 떠나갑니다. 맥아더 장군이 노병은 죽지않고 사라저간다고 말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에서 공산당을 모두 몰아내기를 원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을 간과하는 바람에 다시 전선은 남쪽으로 계속 밀리게 되었습니다.

맥아더는 중공에 대한 강경한 노선을 계속 고수하면서 중공과의 확전까지 불사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3차 대전을 우려한 트루먼은 맥아더를 사령관직에서 해임합니다.

미국으로 귀국한 맥아더는 상하원 합동회의 은퇴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그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이 의회연설을 하였다는 것도 미국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국립묘지 자리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도 안타깝습니다.

50년이 지나서도 추락한 공군조종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미국이야말로 국가이고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세계를 이끄는 것도 맞는 일이고 그래서 미국이고 아메리카합중국입니다. 흑인대통령이 재선을 하고 트럼프같은 기업인이 대통령을 하는 나라입니다.

 

공직이라는 계단을 다 밟아보고나니 투쟁이나 치열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직을 반성합니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부침이 있습니다. 4년마다 치열함이 있는데 비해 공직은 그냥 꾸준한 상향곡선입니다.

그 기울기가 낮은 것이 문제입니다만 상승곡선을 타고 올라가는 공직은 그것으로 한계를 봅니다. 정치인과 다르고 경영과도 크게 차이가 납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자신의 지난날의 치열함에 대해 돌이켜보고 앞으로는 어느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안 되는 일은 처절하게 밀고 나가고 그래도 안되면 궤도를 일부 수정해서 호랑이는 아니어도 고양이 그림은 그리겠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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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