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와 자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의자와 자리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 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어 비워 둔 의자는 없더라~ 가수 김용만 선생의 노래 ‘회전의자’ 머리 가사입니다. 1966년에 나온 곡이니 오랜 세월 인구에 膾炙된 유행가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승용차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고 해서 점점 커졋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자는 과시와 자랑의 상징이었습니다. 회사의 사장이 되면 큰 소파를 사들이고 하루종일 놓여있을뿐 별로 앉지도 않는 검은색의 큰 의자를 세워둡니다.

 

읍면동사무소 회의실에는 좁은 회의실에 비해 과하게 큰 의자가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청에 가면 초콜릿 색의 둔탁한 나무 의자가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청에는 1980년대까지 이른바 VIP용 의자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대형 주머니에 머리를 동여맨 초콜릿 형태로 포장된 의자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이 도청에 초도순시를 오면 2시간 정도 쓰고는 다시 창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지방에서 개최되는 대통령 행사장에서 경기도의 어공간부(어쩌다 공무원)들이 도지사 의자 배치를 놓고 청와대 의전팀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원안대로 도지사 자리는 정해졌고 행사가 열리자 도지사님은 이전의 사정은 모른 채 그 자리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보았습니다.

 

경기도는 물론 경기도내 31시군의 모든 행사장에서 의자는 행사를 진행하는 모든 공무원, 관계자들의 고민이고 걱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운동장 트랙에 50개 의자를 한 줄로 세우고 싶습니다.

좁은 공설운동장 무대와 강당의 단상에 수십개의 의자를 10열×5줄로 배치하는 일은 맞추기 어려운 퍼즐(puzzle)조각이고 팔각 27개 8면체 큐브(cube)와도 같습니다.

 

 

수 십 년전에 노동부장관이 흰 구름같이 크고 넓은 소파에 앉아서 방송 인터뷰를 했습니다. 젊은 마음에도 노동부장관인데 방송에 이처럼 크고 화려한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하는 것을 비서실에서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른 부처도 아닌 노동부장관이라면 근로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의자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했습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부족한 예산을 짜내어 계장님의 이른바 사무관 의자를 구매하면 기존의 의자는 차석이 물려받았습니다. 차석은 다음 서열의 후배에게 의자를 주었지요.

그래서 자주 의자를 바꾸면 같은 계의 3~4명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의자에 앉으니 의자끼리 충돌하는 불편을 감내하면서 근무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막상 사무관이 되니 작고 날씬한 의자를 받았습니다. 검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신문을 읽던 모습은 사라지고 승진전보다 더 바쁘게 일하는 사무관들만 보였습니다. 그렇게 행정기관 안에서도 의자의 변화는 이어졌습니다.

며칠 전에 문재인 대통령님이 취임 4년을 맞아서 특별연설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청와대 회의실의 대통령 의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4개의 다리에 손잡이 없는 등받이만 있는 의자입니다. 정말로 동사무소에서도 빌릴 수 있는 의자입니다. 대통령의 의자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 발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정부행사, 지방자치단체의 단상에는 발언대만 있을 뿐 의자가 사라졌습니다. 도지사, 시장군수, 의원 모두가 일반 참석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식순에 따라 단상에 올라가 연설하고 내려옵니다. 시민, 국민의 의자와 기관장의 자리가 평범하고 의자의 제조사도 같습니다.

 

이제는 의자가 더 이상 신분을 과시하는 미국사회의 승용차 키가 아닙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행복해 합니다. 도민들이 즐거워합니다. 시민들이 지방자치의 참맛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의자배치로 어려워 하는 공무원의 ‘壇上의 고민’만 해결하면 될 일입니다. 그 해결책은 지방의원의 몫인가 생각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