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 이강석의 세상만사 (6)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88] 쓰레기 봉투

 

신문을 통해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무게를 줄여서 배출하는 시민이나 이를 처리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있어서 무게의 편리함을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봉투에 쓰레기가 담기고 묶여서 배출되는 과정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수원시청 홈피에 게시된 소각용 종량제 봉투가격(2017년 기준)은 5ℓ150원, 10ℓ300원, 20ℓ600원, 50ℓ1,500원, 100ℓ3,000원이다. ℓ당 30원이다.

 

통상 가정용 봉투는 5ℓ인데 생활쓰레기를 가득 채워 버리면서 150원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이 용역계약을 한 업체가 수집해서 소각장이나 매립장으로 운송하여 처리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에 비교한다면 지극히 저렴한 부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가 제시한 쓰레기봉투 묶음 부분을 지키는 분들이 적은 것 같다. 시내를 지나다 보면 가로수 뿌리 옆에 누워있는 종량제 봉투는 의도하는 크기의 1.5배, 누에고치 형상이다.

 

쓰레기를 매듭 이상으로 올리고 다른 비닐을 덮은 후에 누렁 테잎으로 둘둘 말아 붙인 영화의 한 장면을 자주 본다. 아마도 봉투에 가득 채워야 한다는 절약 정신이 만들어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고민이 있다.

1인가족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5ℓ봉투가 다 차기까지 7일, 10일이 걸린다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즉시 배출해야 할 쓰레기를 봉투가 아깝다고 다 찰 때까지 기다린다면 본인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위생상 위해를 줄 수 있겠다.

 

그래서 가끔 가사를 돕는다고 정리를 할 때 쓰레기봉투를 꾹 누르지 않는다. 자주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매듭을 묶을 때 나비 리본을 하지 않는다. 추가로 가져온 쓰레기를 넣기 위해 풀어보려 시도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 코로나19 방역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민에게 구상권 행사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원인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150원짜리 봉투가 아깝다고 집안에 장기간 쓰레기를 방치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이웃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다.

 

집착하는 절약정신으로 인해 건강이 상하고 수십배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289] 방문과 배웅

 

사무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에서 3가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손님의 나이가 적은 분, 동년배, 윗사람으로 구분하고 배웅할 때 기준을 세웠다.

 

손아래 젊은 손님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보내드렸고 나이 비슷한 손님은 현관에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연세가 높으신 분은 차량 앞에서 운전하시는 오른쪽에 서서 창문으로 인사하고 돌아왔다.

손님을 배웅할 때 새로운 손님이 오셔도 사무실에 들어가시도록 하고 가시는 손님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호텔의 서비스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예약, 프론트 체크인, 숙소안내, 룸서비스 등 일련의 절차가 이어지는데 이때 서비스의 질은 순서대로 곱해진다고 했다.

 

방 배정 30점×룸의 청결상태 10점×냉난방 20점×종업원의 친절도 10점 등이다. 하지만 1박 후 다음날 오전에 출차를 하는데 서비스가 0점이라면 전체점수는 0이다.

 

이전에 얻은 30×10×20×10=60,000점×0점=0점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 강의는 공직 6급 시절에 회의시간마다 자신의 강의실력을 뽐내시던 원장님 말씀이다.

 

당시에는 ‘자화자찬’이라 비판했는데 편하게 일찍 회의를 끝낸 다른 원장님의 말씀은 기억나는 대목이 거의 없는 것이 신기하고, 그래서 이분 원장님께 송구하고 감사하다.

 

그러니 몸에 좋은 약과 음식이 쓰다는 말이나 甘呑苦吐(감탄고토)를 경계하는 훈계가 매한가지 좋은 말씀이다.

 

가끔 관공서에 가면 아는 간부들의 방에 찾아간다. 몇 곳을 순회하는 경우 녹차가 든 종이컵을 들고 다닌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에서 또다시 내주는 차를 정중히 사양하는 방법이다.

 

사실 사무실에 손님이 오면 젊은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며 신경을 쓴다. 그래서 미리 차를 사양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큰 소리로 ‘녹차 주세요’라고 말한다.

 

어느 차로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소하게 되고 차를 주시는데 대한 감사의 표현도 될 수 있다. 사무실에서 방문객을 맞을 때와 사무실을 방문하는 요즘의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현관에 나가서 배웅하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자화자찬을 보낸다.

 

 

 

[290] 명강사 명강의

 

60분 강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50분이고 2시간 강의라는 하면 100분이다. 50분 강의도 45분에 마치면 교육생들이 박수를 보낸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연수에서 강사가 5분 일찍 마치면 즐거워하고 2시간짜리 강사가 결강하면 더 큰 박장대소를 하신단다.

 

초등생 조회에서 “에, 그리고, 마지막으로”를 반복하면서 훈시말씀을 하시던 분이지만 정작 본인의 연수에서는 장시간 강의를 힘들어 하신단다.

 

50분 강의를 45분에 마치는 강사가 멋진 것이고 따라가기 버겁도록 빠른 전개가 오히려 수강생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다. 명강의란 핵심을 제시하고 약속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라 기대한다.

 

조금 일찍 마치면 더 좋은 일이지만 중요하다면서 3분만 끌어도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명강의 요소는 재미, 집중, 잔상, 절제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나오는 이야기는 점심시간을 할애해도 수강생들은 집중에 집중을 더 한다. 객관식 시험은 우리나라 교육평가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에 어떤 강사가 월요일 첫 강의에서 1시에 점심 먹는 첫날 교육생을 상대로 1시5분까지 강의를 했다. 총 6시간 강의 중 첫 번 2시간이니 이날 못한 강의는 다음번에 하면 될 것인데 초보 강사이다 보니 당일의 목표를 오늘 꼭 채우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통상 11시50분에 점심을 먹던 이들에게 교육생이 많다고 12시 점심, 13시 점심반으로 나뉘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니 12시 40분에 마쳐야 적정한 일인데 1시5분까지 웅성거리는 학생들을 잡고 강의를 이어갔으니 불평이 많았다.

 

회의나 강의나 훈시나 길어야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수첩은 작아야 항상 소지할 수 있다.

 

경쟁사 직원 메모장보다 4배 큰 메모수첩을 배포하고 네배의 생산성을 바라는 CEO는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회의나 토론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곧바로 업무에 착수하였다면 조금전 회의가 성공적인 것이겠지만, 수첩을 이리저리 넘겨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실패한 회의라 할 것이다. 강의도 회의도 짧고 명쾌해야 성공적이다.

 

 

[291] 백건우와 윤정희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백건우와 슈만" 연주회에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홀수 자리는 비워두고 짝수 의자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있다. "객석 띄어앉기 캠페인/ 여기에 착석해 주세요. 경기아트센터." 재미있는 안내문이다. 20분 일찍 도착해서 연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행복하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자 2015년경 당시 문화의전당 사장님이 직접 외국에 가서 검수해 들여왔다는 3억원짜리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넓은 무대를 압도한다.

 

이제는 ‘아트센터’로 개칭되어 멋을 더한 경기도의 대표적인 공연장이 된 이 무대는 전에 몇 분의 도지사 취임식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취임식 행사를 할 때는 프랑카드와 화환, 무대설치 등 꾸밈이 많아 정치적이더니, 슈만을 연주하는 백건우 선생의 오늘 무대는 단출하면서 담백한 모습이다. 차분함과 여유로움 속에 기대감이 한가득이다. 피아노 연주 무대에 장식은 필요없다.

 

전반 연주를 마친 백건우 선생은 피아노 앞에서 1분 이상 침묵했다. 관객들은 그 시간을 숨을 참고 같이했고 그가 일어서는 작은 움직임에 가슴으로 마음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2부가 끝나고 또다시 긴 침묵을 우리 관객들은 연주자와 함께했다. 어린이의 정경이라는 파트에서 음악 門外漢(문외한)의 귀에 익은 연주가 들렸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7번에 적힌 ’트로이메라(꿈)‘다.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그의 아내 영화배우 윤정희씨가 10여년 전 시작된 알츠하이머 증상이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오늘 연주한 곡을 작곡한 슈만과 부인 클라라의 사연이 백건우와 윤정희의 삶은 희한하게도 교차한다고 언론이 비교했다.

 

백건우 선생은 1946년 광복 다음 해에 태어났으니 올해 74세다. 아내인 영화배우 윤정희 선생은 연상으로 76세. 기사를 검색해 보니 오늘 슈만의 작품을 2시간 반 동안 연주하기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슈만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오늘 연주회는 그냥 올라온 무대가 아니었다. 1년을 준비하여 2시간 열정의 연주였다. 백건우 선생의 가슴 울리는 연주에 감사드린다. 아내 윤정희 국민배우님의 쾌유를 기원한다.

 

 

[292] 1호선 전철

 

수도권 전철은 국민의 오래된 친구다. 오늘도 수많은 수도권의 젊은이들이 입석 중심의 전철을 타고 출근하고 피곤한 몸을 차가운 철제 손잡이에 기대어 퇴근을 한다.

 

동수원의 매탄권선역에서 승차하여 청량리 역까지 33개 정거장을 거쳐 가면서 아름다운 상상을 해 보았다. 입석으로 15정거장을 가고 있는데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연세드신 분이 일어선다. 오늘은 행운의 날이구나 하면서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18개 정거장을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을 챙기며 달렸다. 그리고 청량리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그 어르신이 바로 앞에 가신다.

 

이분이 나를 위해 절반 이상의 구간 자리를 양보하신 것인가? 아니면 자리가 불편하여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 가신걸까? AI가 진화해서 상대의 머릿속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예 이마를 모니터 삼아 하차역을 표기하도록 하는 첨단기술이 나오면 좋겠다. 두 정거장 지나 내릴 분 앞에 서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니.

 

돌아오는 길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하철 1호선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역시 졸다가 책을 읽다가 스마트폰을 챙기다보니 보따리 3개를 밀고 들어온 손님이 바로 앞에 서 있다. 실화다.

 

무거운 듯 보이는 가방까지 메고 있다. 오전의 상상을 현실에 접목했다. 짐이 많으니 앉으시라 양보했다. 양보받은 짐 많은 손님은 바로 옆에 손님에게 자리를 다시 권했지만 이 분도 짐이 많은 이가 앉으라 하니 가방을 풀고 앉아주었다.

 

그리고 옆자리가 비어 5분만에 다시 앉았다. 평생에 전철에서 자리 양보를 받은 것이 처음이란다. 크게 배웠단다. 고마운 말씀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세상사는 이야기다.

 

검색결과 경기도와 서울·인천을 연결하는 수도권전철 1호선에는 총 8개 구간이고 200.6km다.

 

북쪽 끝 소요산역~청량리역의 경원선(42.9㎞), 청량리역~서울역 서울지하철1호선 (7.8㎞), 구로역~인천역(27.0㎞), 서울역~구로역~두정역 경부선(93.6㎞), 두정역~천안역 천안직결선(3.0㎞), 천안역~신창역 장항선(19.4㎞), 병점역~서동탄역 병점기지선(2.2㎞), 금천구청역~광명역 경부고속선(4.7㎞)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