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 이강석의 세상만사 (5)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84] 걸어서 100리 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국은 1일 생활권이 되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를 다녀오는 것은 1박2일 코스이고 장거리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비포장 도로 먼지속을 달려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그래서 산촌 처녀들은 평생 동안 80리길, 32km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어나 학교 다니고 성장하여 가사를 돕다가 3개월에 한번 지나간다는 보부상, 박물장수를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고, 이들이 중매하여 한 달 후에 신랑이 신부집에 와서 선을 보고 결혼해 평생을 살았다.

 

 

조선시대 27명의 왕릉이 모두 온전하게 이어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왕릉은 도읍지의 4대문 10~80리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궁궐에서 출발한 임금의 참배 행렬이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10리는 4km이지만 당시의 10리는 5.2km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왕릉은 한양 주변의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시 등 수도권의 동남쪽, 서북쪽에 자리했다.

하지만 조선 제4대 세종대왕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의 영릉(寧陵)은 경기도 여주에, 6대왕 단종의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 장조(사도세자)와 정조는 경기도 화성 융건릉에 모셨다.

 

100리 길은 조선시대나 1950년대에는 장거리였다. 하루 이상 걸리는 먼 길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하루에도 10번 이상 100km를 달린다. 고속도로 500km를 달려가서 잠시 쉬고 다시 달린다. 그 고속도로에서 수 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고 추월을 하고 경적을 울린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보름, 한 달전에 출발했지만 요즘 수험생들은 새벽에 길을 나선다. 더러는 전날 올라와 숙소에서 고사장으로 향한다.

 

과거나 현재나 거리는 시간이다. 먼 거리를 움직이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기차, 철도, 비행기 등 첨단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은 ‘천리 길은 KTX 타고’로 바뀌었다.

 

우리의 차량은 늘 급하게 달린다. 집에서 조금 일찍 출발하자. 고속도로에서 차선변경을 줄이자. 추월을 줄이고 경적은 필요할 때만 울리자. 100리길 걷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285] 상좌·중좌·소좌·그리고 기좌

 

1983년2월25일 북한 인민군 이웅평 공군 상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다. 이날 수도권에는 실제상황 싸이렌이 울렸고 가족간 안부 전화가 폭주하였으며 서울 전화가 불통되었다.

 

같은 해 5월7일에 북한군 제13사단 민경수색 대대 신중철 참모장(대위)이 동부전선을 통해 귀순했다. 북한에서 군인들이 귀순하면서 그 계급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대좌(☆☆☆☆), 상좌(☆☆☆), 중좌(☆☆), 소좌(☆).

 

이즈음 서울 한복판에서 내무부 간부공무원이 전경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당시에 중앙부처, 특히 내무부 직원은 경찰을 만나도 ‘나 본부야!’하면 패스했다고 한다.

 

당시 경찰 수장은 치안본부장이라 해서 내무부 산하의 기관이었으니 '본부!'라 말하면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전경은 그런 정치, 정무적인 상황을 알지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검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버티자 전경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결국 내무부 간부는 주민등록증이 아닌 공무원증을 보여주었다.

 

공무원증의 ‘토목기좌 ○○○’라는 직·성명을 살펴보던 전경은 간부에게 물었다.

 

“토목기좌요? 그럼 아저씨는 북한에서 왔어요?”

 

전경은 그동안 이웅평, 신중철 등 북한에서 귀순한 군 간부의 계급을 언론에서 여러 번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공무원 5급은 행정사무관, 보건기좌, 토목기좌, 축산기좌라 했고 4급은 서기관, 토목기정이라 했다.

 

황당한 일을 당한 간부는 내무부에서 각 부서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는 모임에 참석해서 자신의 경험을 항변했다. 이를 검토한 내무부에서는 이후 공무원 직명을 일부 수정했다.

 

지방행정·보건·농림·건축·환경사무관으로 변경하였고 4급은 지방서기관, 지방토목서기관이라 개칭했다.

공무원 호칭에 대한 에피소드가 더 있다. 경기도 북부지역 군청의 군수님이 군부대 사단장과 회의를 위해 위병소를 통과하자 초병은 상황실에 ‘군수참모님 들어가신다!!!’고 보고했다.

 

옹진군은 1994년까지 경기도 소속이었다. 관내 섬을 방문한 군수의 공무원증을 요구한 새내기 초병의 독백이 재미있다.

 

“서기면 서기지 서기관은 또 뭐냐?”

 

당시 군수는 4급 서기관(기정)이었다.

 

 

[286] 적극과 혁신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경찰이 지키고 있다. 사람들이 올라가면 내려가라 한다. 청년 한 사람만이 고개를 넘어갔다. 청년은 고개 정상에서 만난 경찰이 “내려가라!!!” 하자 가던 길을 계속 걸어 내려 갔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경찰이 내려가라 하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 하지만 청년은 계속 걸어서 전진하여 고개를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무원은 물론 국민도 법, 시행령, 지침, 조례에서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임창열 도지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법에 맞지 않으면 법 개정안을 만들라 하고 제도가 없으면 입법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불가규정 조례는 개정안을 내고 의회에 가서 설명했다.

 

되는 것만 보고하면 그전에 지시한 과제에 대해 도지사는 질문했다. 밤중까지 일하면서 고시출신 간부도 절절매고 비고시도 힘들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한국은행권이 총 얼마인가 생각했다. 66,666원이다. 5만원권, 1만원권에서 5원과 1원 동전을 합해 보았다. 좀더 예능으로 가보자. 이 세계가 흔들리면 어디로 갈까? 치과로 간다.

 

어려서 들은 아재게그인데 조금만 갈고 닦으면 혁신의 강의 소재가 될 것 같다. "3년고개"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사는 것이 아니었다. 三年을 산다.

 

그러니 80세 노인이 10번 넘어지면 110세까지 장수하는 고개다. 東方朔(동방삭)은 욕심 많은 노인이었다. 6만번을 굴렀다. 부연, 회전청소기, 얼름그릇에 담긴 팥빙수, 과자꼬깔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 작고 큰 혁신의 결과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개발토지 면적을 여의도 면적에 비교하게 되었다. 여의도 면적은 운중로 제방안쪽 2.9㎢, 한강둔치 포함 4.5㎢, 여의도동 행정구역 8.4㎢등이다.

 

2012년에 국토교통부에서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의 기준은 2.9㎢로 정했다. 경기도에는 여의도가 3,507개가 있다. 서울시 208개, 여주시는 210개다.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면 행정이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 혁신하면 적극행정이 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적극과 혁신은 반드시 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적극적 자세와 혁신적 사고를 기다리는 일들이 즐비하다. 다만 우리의 강판같은 고정관념 간판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287] 서기2021/단기4354/불기2565

 

단기 4354년은 2333+2021으로 계산한다. 어려서 시골집 우물에서 본 단기 4297년은 서기 1964년이고 1965년에 초등학교에 갔다.

 

당시에는 단기와 서기를 혼용하고 있었고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의 숫자가 병용중이었다. 학교에 가면 서기 1965년인데 집에 오면 단기 4298년이다. 대략 2,333년의 시차(!)를 두고 祖孫(조손)이 함께 살았다.

 

그러니 시골 마을에는 단군 할아버지와 예수님이 함께하시고 불교집안에서는 불기달력을 보면서 농사를 짓고 사찰 나들이를 했다.

 

불기는 기원전 544년에 시작된다. 올해 불기 2565년은 544 + 2021이다. 공자님 탄신을 기념하는 석전대제는 2571주년이다.

 

이처럼 연대에 대한 다양한 표기로 인해 아이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할아버지는 단기에 음력으로 농사를 지으시고 아버지와 삼촌, 고모는 서기, 양력으로 일정을 약속하므로 조상님 제삿날도 할아버지는 음력, 아들과 며느리는 양력으로 따지다 보면 날짜가 하루 이틀 혼란이 오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1,2,3,4를 배웠지만 집에서 만나는 할아버지는 一二三四五라 한다. 十이라고도 하고 拾이라고도 표기한다.

 

숫자에 대한 어려움은 20대에도 계속되었다.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의 표기가 중첩되기 때문이다. 회계서류에서 20만원이라는 금액을 표기하려면 二十萬원이 아니라 貳拾萬원이라 한다.

 

이를 두서 금액이라 하고 아라비아 숫자 200,000원을 병기하는데 착오로 두서 금액과 아라비아 숫자가 다른 경우에는 두서 금액, 한글 또는 한자로 쓴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규정도 있다.

 

무게에 대한 혼란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kg, km라 하는데 집에서는 소고기 1근(0.6kg), 감자 1관(3.75kg), 면소재지까지 10里(4km)라고 말한다. 그래서 힘들었다.

 

정부에서도 미터법으로 통일하라 하지만 아직도 농어촌에서는 혼용된다. 올해 2021년은 공자탄신 2571년이고 불기 2565년이다. 두 분의 시간 차는 단 6년이다.

 

올해 2021년은 남양주시에서 태어나시고 그곳에 잠드신 세계적인 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서세 185주년(2021년)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