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과 신문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1원에 2장씩 파는 도화지를 준비했다. 4학년 국어시간에는 200개의 칸이 빼곡한 원고지에 연필로 글짓기를 하였는데 빈칸을 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시간에는 요즘 공무원 결재판을 펼친 크기의 넓고 흰 종이위에 4B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물에 섞어 색을 내서는 초록, 빨강, 회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매학기 새로 받는 교과서의 하얀 단면과 까끌거리는 표지의 감촉을 기억한다.

 

조선시대 한지는 닥나무 껍질이 원료다. 나무를 다발로 묶어 가마솥에 세우고 불을 때어 껍질이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로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 말린 후 다시 물에 불려 하얀 내피부분을 가려내고 양잿물을 섞어 3시간 이상 삶아 압축기로 물을 짜낸다.

 

여기에 닥풀 뿌리를 으깨어 짜낸 끈적끈적한 물을 넣고 잘 혼합하여 고루 풀리게 한 다음에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뜬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파피루스 풀은 현재 수단령의 나일강 상류에만 있으나 고대에는 이집트에 무성했다고 전해진다. 그 줄기는 그물, 매트, 상자, 샌들, 배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으며 한데 묶어서 건축용 기둥으로도 쓰였다. 당시에는 파피루스, 즉 종이를 왕가에서 제조했다. 귀하고 소중하며 꼭 필요한 종이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종이가 만들어진 것은 문자와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다. 작은 글씨로 장문을 기록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종이에만 글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당부의 편지인 하피첩은 귀양간 남편에게 보낸 아내의 치마천이었다. 그래서 황호택 고문은 다산이 고향인 남양주 마재마을 한강의 붉은 노을과 부인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라 추측해 주신다.

 

1977년 공무원 초임으로 면사무소에 가니 가리방과 등사기 옆에 마분지가 있었다. 馬糞(마분)을 풀어서 그속의 풀을 김처럼 걸러내어 만든 종이다. 정말 김처럼 구멍이 뚫리고 티글이 들어간 거친 종이다.

 

1979년에는 갱지라 해서 마분지와 도화지 중간급의 누렁이색 종이로 공문서를 만들었다. 1984년경에 흰색 복사지를 문서작성에 활용했다.

 

지금의 A4보다 작아서 반절하면 관제엽서 크기가 나왔다. 이 작은 종이위에 타자로 도지사님 보고서를 만들었다. 1992년 예산과에서는 복사지보다 얇고 촉감이 좋은 갱지에 1년 예산안을 작성하여 결재를 받았다. 높으신 분들의 손맛을 좋게하기 위해 ‘안성맞춤’처럼 ‘종이맞춤’을 했었다.

 

요즘에는 종이신문을 보면서 그 가치를 가늠해보곤 한다. 오늘 신문이 10,000이라면 어제 신문은 100이다. 한 달 지난 신문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싸거나 파와 부추를 돌돌 말아 냉장하는데 쓰임새가 있다.

 

지난해 신문은 초벌도배에 좋다. 더러는 초벌로 살아가는 어느 집 방벽에서 기사를 통해 과거의 좋은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선배 중 한 분의 일화가 재미있다. 어린 아이들이 창호지 문을 손가락으로 찔러서 외풍이 들어오므로 아내가 신문지를 잘라서 붙였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방에서 쉬는 중 창호지문에 붙은 신문지의 글을 읽어보니 대학교의 공고문이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지 않았는데 다음날인 월요일이 추가 복학 신청 마감일이었다. 공현택 선배는 말썽꾸러기 아들과 아내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가 되었다.

 

종이의 가치가 있고 종이위에 인쇄된 정보의 가격이 있다. 그래서 100년전에 나온 신문을 온전하게 보전해두면 해가 갈수록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종이도 소중하고 종이 위의 글은 더 귀하다.

 

한지에 한시를 쓰면 족자가 되고 동양화와 난을 치면 병풍이 된다. 아침 이슬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사슴이 마시면 녹용이 된다는 말을 해야할까.

 

우리가 매일 만나는 종이 한 장이 100년 후에는 문화재가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으로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보고 인쇄된 종이신문을 바인더에 보관해 본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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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