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 사건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공무원 초기인 1978년경이면 정부의 추곡수매가 전략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입니다. 즉 정부가 벼를 수매한 후 양곡가격 안정을 위해 성수기에 방아를 찧어서 출하를 하는 이중곡가제가 실시되던 때였습니다.

 

요즘 2014년 현재에는 오히려 추곡수매를 더 받아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정에 있습니다. 양정과는 이제 아주 작은 계로 축소되었고 많은 부분 민간에 위임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당시에 아마도 양곡특별회계에 자금이 부족하였나 봅니다. 외상수매라는 제도가 생겨나서 군청에 불려가서 회의를 하고 수매를 시작하였는데 지나친 개인적 생각으로 일에 큰 시행착오가 발생하였습니다.

 

정부당국은 10월에 받은 벼(추곡수매) 20가마 중 10가마는 현금, 나머지 10가마는 외상으로 처리하였는데 이 외상의 정확한 시점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독자적 판단한 저는 10월수매분중 외상은 11월에 현금을 지급하고, 11월 외상수매분은 12월에 현금을 준다고 하고 수매를 하고 이른바 백지수표를 발행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군청에서는 10월, 11월, 12월 수매중 외상분은 무조건 다음해 1월에 현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군청 방침이 아니라 정부의 기준이었나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합당하지가 않습니다. 농민을 초등생 이하로 생각한 정책으로 보입니다. 무조건 수매를 권장해서 20가마를 내면 반은 현금, 나머지 반은 다음해 1월까지 기다려 현금을 받게 하나면 누가 공무원 말 듣고 일찍 수매를 하겠습니까.

 

한두달 돈 일찍 받는 것이 그리 급한 일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10월에 수매를 내놓으신 농민들에게는 반은 현금을 지금하고 나머지 반은 다음달에 지급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17개 읍면이 화성군에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곳이 3곳이 있으니, 합리적인 생각으로 처리한 3곳과 군청의 지침대로 한 14곳이 있어 저는 3:14로 의문의 1패를 기록하기는 하였지만 지금도 농민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읍면의 14명 공무원들은 지침에 정한대로 처리함으로써 정확성을 유지하였습니다. 결국 저의 개인적 판단으로 다음달 지급하기로 한 농민들의 민원이 쇄도하자 군청에서는 아마 도청에 부탁하였는지 특별자금을 보내주어서 일주일 안에 그 수매대금을 지급하여 저는 그 당시에 '농민을 위한 에러히트'를 치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에 사족을 더 다는 이유는 최근 동사무소 종합감사에서 관리자들이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예방 할 수 있는 잘잘한 지적사항이 보여서입니다.

 

더구나 신규 공무원에게 계약사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감사지적은 물론 더 큰 민원을 야기하고 시행착오가 예상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업무는 신규자에게 담당하도록 하고 복잡하거나 재량적 판단을 요하는 분야는 선임이 담당하면서 동장, 팀장(6급)과 7급 고참이 늘 챙겨주도록 하는 컨설팅 행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추곡수매는 농민이 원하는만큼 정부가 수매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1978년 이후 수년간 추곡수매 촉구 독려를 다인 경험으로 비춰보면 정책도 바뀌고 입장도 변화된 것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 모든 행정을 추진함에 있어 易地思之(역지사지)의 심정으로 左顧右眄(좌고우면)하도록 하겠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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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