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지 못한 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공직에서 5급 공무원, 사무관이 된 후 시군 교류에서 조금 먼 동두천시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동두천시청 생연4동에 근무하면서 생태와 두부를 사다가 찌개를 끓이고 밥통의 밥을 퍼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3개 기관 공무원과 가족초청 체육행사를 하면서 드럼통 연탄에 삼겹살을 구워서 먹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산 중턱 초소막사를 방으로 꾸미고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지냈지만 이곳을 절처럼 생각하고 도를 닦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인생의 모든일들이 지나가면 추억이 되고 미래는 꿈이 되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생각한 일들이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 되고 그것을 모아서 추억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운명 지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고 그 속에 쌓이고 모인 금싸라기 같은 추억을 모아 여기에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모아보니 더 큰 꿈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꿈을 꾸는 청년이 되어 여기에 적어 봅니다.

 

아이들을 위한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이 있고 헬스클럽, 빙상장, 수영장이 있으므로 초보자들이 가서 배우고 익혀 음악가가 되고 스포츠맨이 되는데 공무원을 25년 해도 막상 동장이라는 자리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미리 배우는 학원이 없습니다.

 

오로지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 위한 공장의 생산라인 같은 학원이 있을 뿐입니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가도 점심상을 차려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친정 나들이 가시는 경우 아침은 김밥, 점심은 컵라면, 저녁은 피자를 주문합니다.

 

그나마 아침은 엄마가 준비해 줍니다만 점심부터는 슬로푸드를 먹겠다고 합니다. 점심에 유부초밥을 준비한다 해도 반대입니다. MSG에 익숙한 아이들은 늘 상업용 식탁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1960년대 아이들은 말 그대로 糟糠之妻(조강지처)의 아들과 딸입니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 온 아내가 조강지처이니 그 아이들도 '조강자식'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살아있는 오리의 목을 도마에 올린 뒤 단두대처럼 목을 내리친 후 뿜어져 나오는 피를 바가지에 담아낸 후 오리털을 걸러 마셨습니다.

 

너는 빈혈이라 피가 모자라니 오리피를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오리를 뜨거운 물로 털을 뽑고 배를 갈랐습니다. 오리와 닭은 비슷하니 내장은 버리지만 간과 심장과 모래 주머니는 잘 간수합니다.

 

흔히 닭똥집이라 하시는데 사실은 모래주머니로서 보랏빛, 선홍빛이 섞인 주머니에 절반정도 칼집을 내고 뒤집어 조금 전에 먹은 모이와 모래, 유리조각을 털어낸 후 안쪽의 고무처럼 질긴 노랑껍질을 어렵사리 벗겨내면 이내 또 다른 선홍빛 안감이 나옵니다.

 

닭과 함께 큰 솥에 황기, 인삼, 양파등과 함께 삶아내면 삼계탕이 됩니다. 두 다리와 모래주머니는 할아버지 드리고 손자들은 닭갈비를 부여잡고 와구와구 먹습니다. 두툼한 가슴살 아래에 뼈 사이에 살코기가 숨어있습니다.

 

늘어지는 것이 많아서 먹을 것이 제법 있을 듯 하지만 먹자니 별로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조조장군의 암구호에 '鷄肋(계륵)'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부하가 과하게 앞서나가 전쟁터에서 철군하는 짐을 꾸리다가 크게 야단을 맞은 사건입니다.

 

지방행정은 아니지만 '술조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아마도 세무서의 위탁을 받은 용역사로 추정합니다. 시골마다 술도가라 해서 양조장이 있는데 술 판매고가 영 부진하면 이는 필시 동네 마을마다 密酒(밀주)가 성행하다는 시그널입니다. 밀주란 집에서 쌀, 수수 등 곡물을 발효해서 술로 만든 것입니다.

 

잠시 밀주제조 과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가끔 식탁에서 밥물이 적어서인지 설거나 됨직한 밥을 일러 '꼬두밥'이라고 하고 '술밥'이라고도 합니다. 술을 담그기 위해서는 우선 밥물을 적게 하여 단단한 밥알을 만들어 냅니다. 채반에 펼쳐 식힌 후에 누룩을 뿌립니다.

 

누룩이란 통밀을 대충 갈아서 물 반죽한 후 쑥과 함께 묶어 음습한 곳에 두면 3-4일 안에 푸른 곰팡이가 피어오릅니다. 이를 누룩곰팡이라 하는데 겉에도 피고 속에도 곰팡이 균이 퍼지면서 누룩이라는 효소가 생성됩니다.

 

이 누룩덩어리를 대충 갈아서 꼬두밥과 함께 비벼주면 포자가 밥알갱이에 달라붙게 됩니다. 항아리 속에 창호지 불을 붙여 독을 소독 한 후에 누룩가루가 달라붙은 밥을 넣고 적정량의 물을 보충한 후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아이처럼 이불을 덮어 3일간 발효를 합니다.

 

적정 온도에서 누룩곰팡이는 쌀알의 녹말성분을 알콜로 바꿔준다고 합니다. 쌀알속 녹말 성분과 막걸리의 성분은 산소, 수소, 탄소 등의 결합체인데 물이 H2O로 간명한데 막걸리속 알콜 분자식은 조금 복잡하다 합니다.

 

에탄올이라 합니다만 그 산소와 수소와 탄소의 결합순서, 원자의 갯수에 따라 성분이 크게 달라진다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제사, 명절, 할아버지 생신날 등을 위해 미리 밀주를 담가 두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해 어느 날 학교 앞으로 내달리는 트럭 적재함에 올라 탄 청년 7-8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술조사'가 왔다고 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급하게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 집에 누룩과 밀주가 있는 것을 알기에 미리 알려드리려 달려왔지만 이미 발빠른 트럭이 다녀간 후입니다.

 

장롱아래 숨겼던 누룩이 들통났고 청년들이 증거물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다른 집은 아예 창고 속에 숨긴 술통이 발각되어 확인서를 징구했답니다.

 

이제 온통 징역을 가게 되었다며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청 검사도 아닌 행정직 7급쯤 되는 인근지역 출신 "계장'님에 의해 다 해결되었습니다.

 

누룩을 가져갔고 술통을 깨버렸으니 농사일에 쓸 술은 받아와야 합니다. 대형 주전자와 양동이를 들고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를 사왔습니다.

 

할아버지 생신잔치에도 양조장의 막걸리 통 10여개를 배달시켰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상부상조 중에 막걸리 상조가 있습니다. 한집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발효하기 어려우므로 동네에서 20집 정도가 할아버지 생신날에 익도록 날짜를 맞춰서 술을 담그는 것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어쩌면 세무서 용역 술조사 청년들도 동네 유지급 어르신의 생신날을 대충 파악하고 일주일 전쯤에 우리 동네에 드리닥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가 힘이고 아는 것이 파워입니다. 막걸리 매출이 줄었다는 것은 밀주가 성행한다는 빅데이터의 초기단계 정보망이었던 것입니다.

 

산림간수는 소나무 벌채를 단속하는 자리입니다. 저녁쯤에 동네에 와서 굴뚝의 연기를 보면 어느 집에서 청솔가지를 아궁이에 지피는가를 연기 색으로 감별하고 그 집에 가서 취조를 시작합니다.

 

결국 청솔가지를 잘라온 아버지들은 두손을 싹싹 빌고 급하게 닭을 잡아 저녁대접을 하고 방면됩니다. 지금 보면 이 분들 역시 군청 산림과 용역 직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네의 어른들은 이분들의 사법권에 절절 매는 것입니다. 법집행은 송곳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대 행정도 송곳행정입니다.

 

이처럼 60년전 1970년 우리의 행정은 사법과 행정이 공존했습니다. 그래서 공직은 곧 권력이고 법이었습니다.

 

오죽하면 1977년도에 제가 초임으로 근무한 시골 면사무소 어느 동네의 할머니들은 나이어린 공무원을 '담당서기님'이라 불렀습니다.

 

밀주단속, 불법 소나무 채취단속, 그리고 그 이전의 시대에는 징용과 징병의 권력을 한 손에 쥔 '담당서기'였다는 말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