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의 한계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6년이면 수십년 봄과 가을이 여름과 겨울속에 흐트러져 세월이 흐른 바이지만 당시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역시나 어제 먹은 점심메뉴를 다시 생각해 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려도 50년 세월을 견뎌온 유년의 기억은 참으로 생생하여 방금 마시는 '세븐업'사이다와 같습니다. 어쩜 그리도 기억이 생생할까요?

 

일단 당시에 소를 잡는 것은 '密屠殺(밀도살)'이라 해서 함부로 못하고 추석과 설날을 3-4일 앞두고 한밤중에 산기슭, 인적이 드믄 곳으로 소 한마리를 몰고 가서는 은밀하게 '거사'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는 자루와 포대에 고기와 뼈를 담아 家家戶戶(가가호호) 돌려 명절을 지낸 후에 대금을 거출하였던 것입니다. 배추장수 문서처럼 집집마다 배달한 3근, 5근, 앞다리, 뒷다리 값을 수금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의 머리는 작업에 참여한 젊은이들에게 무료로 배분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또한 4등분, 8등분하여 가마솥에 고아서 국물 먹고 도토리나 청포로 만든 묵처름 흐믈거리는 고기는 베보자기에 둥굴게 말아 어처구니 없는 맷돌로 눌러서 물기를 뺀 후에 얇게 저며서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婚事(혼사)나 喪事(상사)시에는 키우던 돼지를 잡아 식재료로 쓰고 賀客(하객)과 弔問客(조문객)을 대접하였습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청년들은 조문조차 하지 않고 그 집에서 키우는 돼지를 잡습니다.

 

아침에 돼지밥을 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주인 따라 돼지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할머니는 죽을 퍼주면서 '돼지야!!! 나하고 같이 가자"하시면서 세월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청년들이 네다리를 묶어 밖으로 이동시킨 돼지를 잡아 해체하면 오줌보가 나옵니다. 9살 전후의 동네 아이들에게 넘겨진 오줌보는 즉시 남아있는 오줌을 비운 후에 밀짚이나 보리짚으로 대롱을 만들고 실로 살짝 묶은 후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빵빵하게 공기가 들어차면 발 빠르게 실을 잡아당겨 묶고 3-4번 더 옹쳐 매어줍니다. 잡은 돼지의 연식에 따라 바람이 들어간 돼지오줌보의 크기는 다양하겠지만 대략 핸드볼 공 크기로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돼지 오줌보 공이 만들어지면 곧바로 동네 아이들은 네 편 내 편도 없이 축구공을 추격합니다. 도랑에 빠지면 손으로 집어서 평지에 내던지고 다시 몰아쳐 갑니다.

 

혹시 웅덩이에 보리밥 알갱이를 던졌을 때의 송사리 떼 폭동을 보셨는지요. 평소에 차분해 보이던 송사리가 흰 보리알갱이 10여개에 소스라치게 난리를 피우는 것 처럼, 돼지오줌보 축구공을 만난 아이들의 태도는 돌변하곤 합니다. 무조건 달려가 멀리 차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豚(돈)축구공 추격전이 1시간 정도 이어져 아이들이 지칠 무렵에 오줌보 축구공도 운명을 다하여 터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서로 네 탓으로 공이 터졌다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돼지잡기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대형 가마솥에서는 돼지 뼈와 선지가 끓고 있습니다. 씨레기가 둥둥 돌아다니고 고추장과 된장, 대파 등 양념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아이들을 줄 세워 열무와 어린 배추가 듬뿍 들어간 선지국을 퍼줍니다. 재수 좋은 아이의 국에는 떠다니는 내장이 보이기도 하고 더 재수 좋은 아이의 국그륵 바닥에는 터질 듯 탱탱한 순대도 보입니다.

 

돼지를 잡으면 아침에 먹인 돼지죽만 버리고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족발, 머리, 다리, 꼬리 등 모든 것을 음식으로 만드는 마술을 보입니다.

 

사실 이 모습을 우리는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이 그러하고 아프리카에서 수 만년 이어오는 소수민족의 삶에서 우리의 1960년대를 투영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완제품 돈까스를 먹습니다. 돼지의 모습과 돈까스가 같은 돼지고기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돼지에게 밥을 주고 동네 장년들이 돼지를 잡고 그 오줌보로 축구를 하고 돌아오면 선지국과 순대로 배를 채우며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 50년 전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돼지 오줌보를 차고 놀았다는 60대 어른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1960년대 돼지오줌보 축구경기의 정황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습니다.

 

주변의 20대 청소년들이 공감하지 않더라도 운명적으로 만나고 이별한 수많은 가축과 동물과 철새들을 기억하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완제품으로 비닐봉투에서 나오는 돈가스가 아니라 도축되는 과정을 보고 오줌보 축구를 하고 가마솥 선지국을 먹던 추억을 추억하려 합니다. 이 추억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니 말입니다.

 

이런저런 추억을 바탕으로 현대문명에 길들여지고 피자와 양념치킨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김치전, 파전의 맛을 전하고 삼계탕의 부드럽고 깊이있는 맛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피자 한쪽을 들고 행복해 하는 표정이 아름답듯이 삼계탕용 생닭을 들고 가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도록 하는 방법을 우리가 지금 당장 연구해야 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