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조개탄#난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담임 선생님에게 달려가 급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교실 난로 연통이 빠졌습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겨울날에 난로를 피웠는데 연통이 빠졌습니다. 아이들은 본 것이 있어서 불이 금방 피어니지 않으면 연통이 막혔다고 생각하고 마구 두드렸습니다.

 

둥근 철판 연통은 늘 찌그러져 화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두드리다가 연통 이음새가 빠져나간 것입니다.

 

정말로 아이들이니 서로의 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연통의 굵은 연기와 불기둥이 교실 천정의 베니어판을 달구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천정에 구멍이 나면서 큰 불이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서로의 잘못을 탓하며 언쟁을 계속합니다.

 

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교무실로 뛰어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자 옆에 계신 소사아저씨가 더 빨리 우리반 교실을 향해 뛰어갑니다. 그리고 응급 복구를 하였습니다.

 

연통을 다시 연결하자 그동안 교실에 퍼지던 연기는 연통안에서 아이들보다 더 크게 떠들고 싸우면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타고있는 솔방울과 조개탄이 좁은 난로 안에서 서로 몸이 충돌하며 싸우고 밀치면서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꼬깃꼬깃 10원짜리 종이돈을 필통에 넣었다가 꺼내듯이 연기가 밖으로 배출됩니다. 좁은 통로를 거쳐 굽은 연통을 지나 창밖으로 길게 뽑아낸 통 안에서 청년, 아저씨 풍년초 담배 피우듯이 밀려 나가서는 아주 멋지게 흰 머리를 털면서 하늘로 날아갑니다.

 

그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흡사 시골의 누나들이 개울에서 길고 검은 머리를 감은 후에 수건으로 뒤집어 쓴 후에 고래를 번쩍 드는 형상입니다.

 

사실 저 연통에 들어간 솔방울은 지난 연말에 학생들이 산에 올라서 따왔습니다. 매학년 말에 비닐자루 2개분량을 솔방울을 학교에 내야 합니다.

 

 

창고에서 기다리던 소사 아저씨는 솔방울을 받은 후 교감 선생님의 인감도장이 찍힌 우표만한 物標(물표)를 줍니다. 이것을 담임 선생님께 드리면 반학생 60명의 명단이 학번대로 인쇄된 좁고 긴 종이의 첫 째 칸에 붉은 도장을 찍습니다. 솔방울을 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어느 날에 대형 트럭이 학교에 들어옵니다. 벽지 국민학교에 차량이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더러 마차가 지나가고 삼륜차(바퀴3개)가 쌀포대를 싣고 지나가는 것시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이 같은 당시의 교통상황에서 바퀴 4개가 아니라 8개이거나 12개쯤으로 보이는 큰 트럭이 조개탄을 가득 싣고 들어온 것입니다. 무연탄을 초기단계로 가공한 것인데 그 모양이 조개형태이므로 조개탄이라 불렀습니다.

 

이 조개탄에 불을 피우는 이른바 '불쏘시개' 가 솔방울입니다. 솔방울은 송진을 가지고 있어서 화력이 좋습니다. 난로 안에 신문지를 넣은 후 불을 붙이고 적당한 순간에 솔방울 한 바가지를 넣습니다.

 

잘 타오르도록 뚜껑을 닫은 후에 솔방울 타오르는 화력의 중간쯤에 조개탄 20개 정도를 넣습니다. 타고있는 솔방울이 아직은 지지하고 있기에 그위에 걸쳐진 조개탄에 불이 붙게 됩니다.

 

처음에는 노랑색 연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조개탄 속에는 황 성분이 들어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설명으로 평생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集團知性(집단지성) 이랄까요.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그렇게 이해합니다.

 

우리가 당근을 뽑아서 먹을 때 쉽게 깨물지 않는 것은 당근이 단단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크림을 혀로 먹는 것은 부드럽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지성의 힘, 경험을 바탕으로 불이 붙었다 싶으면 추가로 조개탄을 투하합니다. 2단계 연탄을 투하하기 위해 난로의 뚜껑을 열면 솔방울은 흔적없이 사라졌고 바닥에 반쯤 불이 붙은 조개탄이 서로 엉켜있고 그 틈새로 붉은 빛이 보입니다. 잘 된 것입니다.

 

이제 검은 조개탄을 추가로 넣어주면 다시 그 틈새틈새로 열기와 화기를 보내면서 서서히 달아오르는 난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8시에 학교가서 1시간 동안 머리통 큰 아이들이 난로를 피웠습니다. 착한 아이는 솔방울을 가져오고 더 착한 애는 무거운 조개탄을 날랐습니다.

 

그리고 IQ좀 있는 아이가 신문종이에 불을 붙이고 가져온 솔방울을 투하하는 시점을 결정하고 이후 솔방울 불이 활활 타오를 때 조개탄 넣는 시점과 양을 정합니다.

 

조개탄 난로의 성패는 타이밍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신문지를 넣는 것도 기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신문 페이지를 떼어내고 살짝 구겨서 넣어야 불이 잘 붙습니다.

 

아욱국을 끓이기 전에 문질러 대는 것이나 茶(차)를 덕는다 해서 뜨거운 솥에 넣고 장갑낀 손으로 문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냉면 사리를 끓여내어 찬물에 식히면서 열심히 비벼주는 것도 면발에 생동감을 더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난로피우기에 실패하면 추운 교실에서 난로속 열기가 식을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정도 식으면 매쾌한 냄새를 견디며 타다 남은 신문지, 솔방울 쪼가리, 눅눅한 조개탄이 범벅된 덩어리를 양동이에 담아내서 재분류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신문에 불 붙이고 솔방울 넣고 조개탄을 넣는 과정을 되풀이 합니다.

 

1966년 말 겨울 아침시간에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50년전 모습을 오늘아침에 생생하게 기억해냈습니다. 박정임 담임 선생님은 당시 40세 정도였습니다.

 

1926년생으로 추정하면 92세이십니다. 초등학생이 회갑을 지나고 있으니 당시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담임 선생님들은 80이상 90세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늘 그 당시의 연세로 기억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1960년대 초등생들의 겨울 난로 이야기를 전하고 체험하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이 또한 인생의 공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넷, 모바일, 게임, 사이버공간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신문지에 불붙이고 그 불로 솔방울 불을 만든 후 조개탄에 불붙이는 실습의 장을 만드는 것도 시간을 반추하는 삶의 교육현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